[강진의 성씨]한양조씨(漢陽趙氏)
[강진의 성씨]한양조씨(漢陽趙氏)
  • 김철 기자
  • 승인 2005.06.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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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조씨의 시조는 고려때 조순대부 첨의중서사를 지낸 조지수를 시조로 한다. 이후 조선이 개국하자 한양으로 이주해 세족이 크게 늘어나게 된다. 지수의 아들 휘는 쌍성총관부(함경남도 이북을 통치하던 기관)총관으로 지역을 100여년간 통치했다. 휘의 아들 양기는 일본정벌에 참여했고 합단의 난을 평정해 원나라 세조로부터 금비단과 옥혁대를 하사받았다.

조지수의 4대손인 돈에 이르러 한양조씨는 더욱 번창하게 된다. 돈은 홍건족을 대파한 일등공신으로 공부상서 (정3품벼슬), 예의판서등 요직에 오르게 되고 후에 용성군이란 시호를 내리게 된다. 돈은 4명의 아들을 두었고 이들이 모두 높은 벼슬에 올라 가문을 빛내게 된다.

첫째아들 인벽은 홍건족을 물리치고 수차례에 걸쳐 왜구를 토벌하는데 앞장섰다. 정화공주와 결혼해 이성계와 매부가 된 인벽은 후에 양렬공이란 시호를 받게 된다. 이것은 후손들이 양렬공파의 파조에 해당되게 된다.

인경과 인규도 각각 검찬성고파와 검한성공파의 파조가 된다. 막내아들 인옥은 이조판서를 거처 개국1등공신에 오르게 되고 시호를 충정공을 받아 충정공파의 파조가 된다. 관내에 생활하고 있는 한양조씨의 대부분은 충정공파의 후손이 차지한다.

인옥의 아들은 뢰는 예조판서등을 지녔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삼년간 시묘살이를 하는 효성을 나타내 절효공이라는 시호를 받게된다.

뢰의 셋째아들 효생은 단종의 화를 면하기 위해 전남 나주로 이주했고 손자 백운이 옴천면 황곡마을이 이주하면서 강진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백운의 5세손인 조팽년은 한양조씨에서 빼놓을수 없는 인물이다. 생원시에서 수석을 차지한 팽년은 임진왜란때 왕의 피난길을 직접 호위하는등 주요요직에서 근무했다. 팽년은 노년에 벼슬을 마다하고 고향에서 학문에 정진하면서 후학양성에 힘쓰게 된다.

팽년은 또 암행어사로 후손들에게 알려진 인물이다. 이순신 장군이 중상모략으로 남해에서 백의종군하고 있을때 임금이 직접 팽년을 불러들였다. 팽년에게 암행어사의 신분으로 이순신의 상황을 보고하도록 한 것이다. 이에 팽년은 전장에서 활약하는 이순신의 상황을 사실대로 왕에게 알렸고 이후 이순신은 다시 복직하게 된다.

팽년은 다섯명의 아들을 두었다. 첫째 동희의 후손들은 옴천면에 집단 세거했고 둘째 동양의 후손들은 옴천면 좌척마을, 영암지역에 후손들이 살고 있다. 셋째 동흔은 영암군 학송, 강진 작천등에 후손들이 생활하며 넷째 동요의 후손들은 나주시 세지면에 살고 있다. 다섯째 동후의 후손들은 보성, 작천면, 완도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이후 후손중에는 효성과 학문으로 알려진 규운이 있다. 규운은 어린나리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마져 세상을 떠나자 자식된 도리를 못했다며 6년간의 시묘살이를 하는 효성으로 널리 알려졌다. 또 일찍이 동강선생에게 글을 배우면서 학문에도 높은 경지에 올라 고위직의 자녀들을 가르쳤던 태학관 교관으로 임명됐다.

옴천면 영산리 계산마을 입구에는 주봉서원이 위치해 있다. 조팽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612년 옴천면 좌척마을에 사당을 짓고 후손들이 뜻을 기렸다. 하지만 서원 철폐령으로 1868년 모습을 감췄으나 유림들의 발의로 지난 65년 다시 터전을 마련하게 됐다.

주봉서원에서는 매년 음력 3월 15일 지역유림들이 찾아와 조팽년과 조규운의 업적을 기리며 제사를 지내고 있다.

후손들은 옴천면 동막마을에 마련된 선조들을 모시고 매년 음력 10월 15일 시제를 모시고 있다. 한양조씨의 후손들은 대대로 내려오는 선조들의 유물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특히 유물의 대부분은 많은 업적은 남겼던 조팽년의 유품이 차지한다. 현재 후손들에게는 조팽년이 이순신장군을 만나기 위해 지녔던 5두 마패. 뱃길을 알기위해 지녔던 반원모양의 나침반. 임금으로 하사받은 교지등 수많은 국보급 유품들이 전해지고 있다.

한양조씨 출신으로는 작천면장을 지냈던 조병옥씨, 강진경찰서에 근무했던 조윤형씨, 신전면 군의원을 지냈던 조권신씨, 강진군청 해양수산과 조정일계장, 친환경농산과 조상언계장등이 있다.

 


옴천면 개산마을앞에 위치한 주봉서원을 30여년째 책임관리하고 있는 조경철(65)씨를 만났다. 조씨는 “조팽년 선조는 지역에서 생활한 한양조씨중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이라며 “후손들이 조팽년 선조를 기리기 위해 만든 것이 주봉서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조씨는 “조상들의 유품이나 업적을 후손들에게 보전하고 알리는 것이 할일”이라며 “다양한 자료를 정리해 후손들에게 알릴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것”이라고 강조했다.

유품에 대해 조씨는 “과거에는 조팽년 선조의 낙관이나 혁대등이 남아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한국전쟁으로 분실된 유품을 지금은 찾을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고 밝혔다.

조씨는 또 “현재 후손들에게 남아있는 유품을 원형대로 최대한 보존하고 더 이상 분실되지 않도록 주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제에 대해 조씨는 “옴천면 동막마을 인근에 모셔진 선산에서 시제를 지내고 있다”며 “묘소가 분실된 선조는 제단을 만들어 음력 10월 15일 제사를 모시고 있다”고 말했다.

종친에 대해 조씨는 “젊은 사람들의 시제나 종친모임의 참여율이 차츰 줄어드는 것을 보면 아쉽다”며 “후손들이 종친에 대해 관심을 높일수 있도록 종친들과 협의해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할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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