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탐방] 다성사
[종교탐방] 다성사
  • 김영미 기자
  • 승인 2005.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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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관 좋은 계곡을 떠올리면 한편의 화폭처럼 펼쳐지는 산사의 풍경이 그려진다. 이 땅에 불교가 전래한 역사가 천년을 헤아릴 수 있으니 그 절들은 단순한 종교적 사원이라는 개념을 떠나 민족의 문화와 정신의 혼까지 내재하고 있는지 모른다.


수인산, 성자산, 옥녀봉, 별락산, 화방산등 크고 작은 산에 둘러싸여 분지를 이루는 천연의 요새에 둘러 쌓인 마을속 병영성지 동문 끝자락에 절의 터전이 시작된 다성사. 마을길을 지나 절 입구에 깔린 사각거리는 자갈길과 꽃이 만개한 울창한 숲속에 건립된 부처님의 도량이 있다.


다성사는 자신이 공을 들여 정성을 기울인 노력이 다시 내게 되돌아 온다는 의미가 담겨졌다. 월출산줄기 아래 1979년 봄 관음행 김금주(여.60)씨가 아미타불을 모셔와 법당과 숙식을 겸하는 인법당이 창건됐다. 창건이후 동명스님이 대를 이었고 지난 93년 지금의 보안스님이 부임한 2년후 극락전건립이 추진되었다. 법당건물이 있던 자리에 축대를 세워 단조로운 마루


단청에 23평의 극락전이 1년만에 완공됐다. 법당안에는 예불종을 마련해 조석으로 병영마을 불자들에게 울려펴지고 있다.


극락전건립 계획이 추진된 후 보안스님은 60여명의 불자들에게 부처님의 진리를 담은 권설문책을 배포하고 부처님의 진리를 전하는 포교활동을 전개했다.

어려운 재정난에 극락전을 건립하기 위해 보안스님과 관음행 김금주씨가 적은 비용으로 신축이 가능한 건축업자들을 발로 찾아 뛰고 함께 공사현장에 참여하는 헌신을 아끼지 않았다. 또 불자들도 십시일반 보리, 콩등의 시주가 모여 극락전이 건립됐다.  


아미타불 부처가 모셔진 다성사의 극락전 외벽에는 한 폭의 그림들이 그려져 불자들이 그림의 뜻을 알지 못해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한다. 극락전 외벽 건물에 그려진 그림들은 고금도 수양사 벽해 주지스님이 부처님의 일대기를 담은 신무도의 그림을 8폭의 화폭에 담아 벽화로 완성됐다. 신무도의 화폭속에 담긴 마지막 벽화의 동그라미의 원은 자신의 마음을 열어 주면 동그란 원으로 모든 것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를 담아 두어 진리를 전하고 있다.


또 다성사의 부처님앞 불당에는 절의 상징이 되고 있는 연꽃그림이 아닌 매,난,국,죽 사군자로 장식해 사시사철 변함없이 곧은 마음의 뜻을 담아 두기도 했다. 불당의 그림들은 3명의 스님들이 한달동안 정성이 기울여져 담겨졌다. 


지난 95년 돌에 이름이 새겨져 극락전 입구 원편에 세워진 거대한 부처님 경전 돌탑은 신도들의 정성으로 쌓아 올려 소원을 비는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돌탑은 신도회장 김병완씨가 추측이 되어 불자 5명과 옴천골짜기, 개울가등에서 10여일동안 트럭을 이용해 모아온 돌들이 모여 하나씩 쌓아올려졌다.


절을 방문하는 60여명의 불자들도 자신의 가족들의 이름을 새긴 돌들을 머리에 이고 손에 들고 찾아 20t의 돌들이 한개가 되어 부처님 경전 천수경, 금강경, 반야심경을 돌탑속에 넣어 세워졌다. 이곳은 불자들이 바라는 소원과 건강을 비는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다성사에는 4년전 11월 극락전 입구에 5층 사리석탑이 세워졌다. 5층 사리석탑에는 보성 봉갑사 도륜스님이 태국 박물관에서 기증받은 부처님의 사리 5과를 기증해 석탑안에 안치하고 사리석탑이 건립됐다. 5층 사리석탑앞에서는 매년 부처님 오시는날을 기념해 관불식을 거행하는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또 관불식 후 다성사의 불자들과 사리석탑을 도는 탑돌이 시간이 마련되어 소원을 빌고 불자가 하나가 되는 장소가 되고 있다.


보안 주지스님은 “불자들의 정성이 깃든 다성사를 찾아 기도하고 편안히 쉬어 가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보안 주지스님 인터뷰-


불자들의 새 삶의 터전을 만들어 더불어 베풀어 살아가는 도량을 만들고 싶다는 다성사 보완주지스님.


보안스님은 “극락전 증축불사시 자금난으로 가장 어려운 시기였지만 신도들이 돌과 시주를 통해 불심이 하나가 되어 건립된 절”이라며 “관음회 모임을 구성해 부처님의 진리를 전하는 포교활동으로 한사람씩 열심히 찾아 활성화 시키겠다”고 말했다.


보안스님은 “5층 사리석탑 제막에 청하 큰스님과 기증받은 부처님 진신사리 봉안식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현재 사용되고 있는 요사체가 미미하지만 새롭게 건립해 오갈데 없는 신도들의 수양 도량으로 이끄는 장소를 갖추고 싶다”고 밝혔다.


불자들이 편히 쉬어가는 공간이 되어지기를 바라는 보안스님은 “귀중한 부처님 사리석탑이 안치된 다성사가 후대들에게 이어져 역사적인 사찰로 오랫동안 기억되기를 바란다”며 “신도와 주민들이 마음을 열면 모든 것이 둥그런 원으로 하나가 되는 진리를 깨닫고 자신을 되돌아 보는 시간들을 보내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우리절자랑거리


-놋동바위-

다성사 입구와 안마당에는 둥그스럼한 바위가 놓여 있다. 두드리면 놋쇠소리가 난다고 하여 일명 놋동바위라고 일컫기도 하고 7개의 바위가 주변에 놓여있어 칠성바위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을에서는 이 바위를 달(月)에 비유하는데 본 마을출신 오기섭이 20여년전부터 정월 초하룻날면 촛불을 켜고 집안의 무사를 기원하기 위해 치성을 드리던 장소로 사용되었다.


구전에 의하면 다성사 법당앞에 놓여 있던 놋동바위를 40여전 농사를 짓기 위해 정으로 바위를 깨어버렸던 한 주민이 재앙을 받아 걷지못하고 정신착란 증상을 일으켜 깨진돌을 그대로 붙여 놓은 상태로 놓여 있다. 또 병마절도사가 재임때에 사람이 죽으면 이곳에서 그 영혼을 위해 주고 제사를 지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70년대까지는 둘레 200m에 깊이가 10m에 이르는 연못이 있었지만 당시 신자선이 논을 늘기 위해 인력으로 메워버렸다. 이때 밑바닥에서 아름드리 나무족들이 발견되었는데 석탄처럼 검은색으로 되어 있었다. 원래의 마을이름은 이 못동에서 유래되었으며 ‘못터’, ‘신지’등으로 바뀌어졌다. 


지금도 다성사 입구 놋동바위에서는 주민들이 대를 잇는 자손을 얻기 위해 돌앞에 치성을 올리며 소원을 비는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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