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의 성씨 - 선산임씨
강진의 성씨 - 선산임씨
  • 김철 기자
  • 승인 2005.05.2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진에 처음생활한 광민이 도암면 청룡마을에 터전잡아

선산임씨는 신라말 경순왕의 손주사위인 태사공 임양저를 시조로 하고 있다. 성품이 충직했던 양저는 선산으로 유배되면서 선산으로 본관을 삼고 있다.

이후 수백년간 후손들의 존재를 알 수 없고 조선시대 종육품벼슬인 좌랑에 올라 영암으로 이주한 만(蔓)을 중시조로 선산임씨가 이어오고 있다. 선산임씨는 경북 선산을 본관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대부분 전남에 많은 후손들이 살고 있다.


선산임씨는 중시조 만의 4대후손인 득무로부터 크게 번성하게 된다. 득무는 종과 수, 두명의 아들을 두게된다. 종은 직장벼슬에 오르게 되고 동생 수는 종일품벼슬인 좌찬성에 오르게 된다.


조선조에서 선산임씨는 억령과 백령형제가 가문을 빛내기 시작했다. 억령은 1525년 문과에 급제해 금산군수를 지냈고 동부승지(승정원 정삼품벼슬)를 역임한 후 강원도 관찰사를 지냈다. 동생 백령도 문과에 합격해 숭선부원군이라 명해졌고 우찬성(의정부 종일품벼슬)에 오르면서 선산임씨를 명문의 가문으로 이끌기 시작한다.


강진에서 처음 생활한 선산임씨는 광민이다. 영암에서 광민이 도암면 청룡마을로 이주하면서 후손들이 번성하게된다. 광민은 1594년 무과에 올라 선전관을 역임하면서 사촌형 광언과 함께 왜적들과 싸우는등 수많은 업적을 남기고 전사하게된다.


광민은 기룡, 진룡, 복룡 세명의 아들을 두게 된다. 첫째 기룡은 인조때 문과에 급제해 정삼품벼슬인 부사에 오르게 된다. 둘째 진룡은 일찍 무과에 올랐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았다.

진룡은 정자를 지어 자신의 호를 딴 송헌정을 만들어 시골선비들과 성리학을 강연했으며 사후 후손들의 업적으로 통천대부당락원정에 추증되었다. 기룡과 진룡의 후손들은 지금도 도암면 청룡마을에서 생활을 하고 있고 복룡의 후손들은 경상도 마산시에서 거주하고 있다. 강진에서 생활한 후손들중에는 가선선생을 빼놓을수 없다.

진룡의 후손인 가산선생의 본명은 재휘(材彙)이다. 가산선생은 당시 탁월한 문장력으로 오한규, 김기홍, 이용식등과 교류하며 후학양성에 힘써 수많은 제자들이 그의 가르침을 받게된다.

이에 제자들은 스승을 위해 성금을 모금해 육영공덕비를 세워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 공덕비는 현재 도암면 청룡마을입구에 자리하고 있다. 기룡의 후손인 한승도 뛰어난 글솜씨로 수많은 제자들을 교육하는 후학양성에 힘썼다.


도암면 청룡마을 뒷산에는 선산임씨의 제각인 추원당이 위치해 있다. 강진에서 처음 생활한 광민부터 아들 기룡과 진룡을 기리는 제각인 것이다. 매년 음력 10월10일 영암등지에서 종친들이 모여 추원당에서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낸다.


추원당에서 지내는 제사는 다른 성씨와 다른점을 찾아볼수 있다. 광민을 시작으로 조상 124명에 대한 합동제사를 지내고 있다. 합동제사를 시행할 당시 문중 종친들의 많은 반발도 있었지만 선산임씨의 독특한 제사방식으로 눈길을 끈다.

 제사에 사용되는 금액은 40여마지기의 문중답에서 나오는 곡수를 이용하고 종친회원들의 후원금으로 대문중에 참여하고 있다.
추원당의 뒤편에는 강진에서 처음 생활한 광민부터 모셔진 묘소가 있다. 이곳에 자리잡은 묘소들은 크기가 5m정도에 이를 정도로 대형왕릉을 방불케 한다. 예전 지역의 유지로 자리하면서 살아온 선산임씨의 권세를 짐작하게 한다.


선산임씨출신으로는 사법고시를 합격한후 사법연수원에서 근무하는 임무영씨, 우리은행 본점에서 근무하는 임영호씨, 외환은행에서 활동중인 임경종씨, 공군 소령으로 복무하는 임종민씨, 기술고시에 합격한 임창수씨, 천용택의원 보좌관을 역임했던 임영상씨, 순천중앙병원 업무과장을 맡고있는 임종권씨, 도암면사무소 총무계장으로 근무하는 임준형씨, 총무과 행정계에 근무하는 임창복씨, 강진문구사를 경영하는 임영일씨등이 있다.

 


선산임씨의 문중일을 수십년간 맡아왔고 대종회 총무를 6년간 책임졌던 임종선(78)씨를 통해 문중일에 대해 자세하게 물었다.


임씨는 “해방전후 청룡마을에는 60여가구의 선산임씨가 생활할 정도로 자자인촌인 마을이였다”며 “지금은 객지로 떠나는 주민들이 많아 숫자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라고 설명했다. 이어 임씨는 “강진에서 선산임씨를 대표하는 인물은 가산선생”이라며 “뛰어난 학문을 후학들을 위해 교육에 전념한 자랑스런 선조”라고 강조했다.


문중활동에 대해 임씨는 “관내에 거주하는 종친들의 숫자가 줄어들면서 제사를 찾는 종친들의 숫자도 줄어들고 있다”며 “젊은 후손들이 문중에 대한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임씨는 “선산임씨의 자랑은 합동제사에 있다”며 “처음 종친들의 반발도 있었지만 한꺼번에 선조들의 제사를 지내는 것이 선산임씨의 특짹이라고 소개했다.


앞으로 문중활동에 대해 임씨는 “지역종친회를 중심으로 종친들이 뜻을 모아야 문중이 바로설 수 있다”며 “종친들이 문중일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울 방침”이라고 밝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