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의 성씨)-원주이씨
(강진의 성씨)-원주이씨
  • 김철 기자
  • 승인 2005.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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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건 아들 남이 성전면 금당리 처음 터전잡아

강진의 성씨 - 원주이씨(原州李氏)


원주이씨는 이신우(李申佑)를 시조로 한다. 신우는 고려 목종때 병부상서(병부에 속하는 정삼품벼슬)를 지낸뒤 원주에서 세거하면서 경주이씨에서 나와 본관을 원주이씨로 했다. 이는 원주이씨도 경주이씨의 시조 이알평의 후손들이 되는 것이다.

원주이씨는 후대로 내려오면서 판도공파, 월성공파, 대장군공파, 시랑공파로 크게 나눠져 선계를 이어오고 있다. 시조로부터 13세손인 반계는 고려 공민왕때 문과에 급제해 광록대부(문관 종삼품품계)로 예부상서에 올랐다. 반계는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유신들과 함께 두명의 임금을 섬길수 없다면서 경기도 개풍군에 소재한 두문동으로 들어갔다.

이후 반계는 수차례 영의정 벼슬을 거절했고 왕이 자신을 찾아온다는 소식에 식음을 전폐하고 7일만에 세상을 떠났다. 반계의 충정을 높게 평가한 조정에서는 사후에 영의정벼슬을 내렸다.

반계의 동생 을계의 손자 영화는 성균생원으로 무과에 올라 홍산현감등을 거쳐 통정대부에 올랐다. 영화는 단종이 물러나자 벼슬을 버리고 경기도 광주에서 내려와 해남지역에서 은둔생활을 시작한다. 당시 산에서 천막을 치고 생활했던 영화에게 많은 후학들이 몰려 인근 지역의 명칭이 산막이라고 불리게 됐다.

영화는 여섯명의 아들을 두었고 여섯째 지건은 문관 정삼품의 벼슬인 통훈대부 통예원자통례에 이르게된다. 지건의 아들인 남(楠)은 광양현감, 문장현감을 지닌후 해남에서 성전면 금당리로 이주하게되면서 지역에서 생활을 시작한다. 남은 8명의 아들을 두게된다.

첫째 희복은 무과에 급제해 만경현령을 지냈고 현재 칠량면 삼흥리, 대구면 저두리, 도암면 신기리등에 후손들이 생활하고 있다. 둘째 언복이고 셋째는 억복이다. 억복은 함경도 병마절도사를 지내 병사공파의 시조가 된다. 병사공파의 후손들은 현재 성전면 금당리, 월남리등에 거주하고 있다.

넷째 계복의 후손들은 나주시 공산면에 거주하고 의주부윤군을 지낸 다섯째 연복의 후손들은 광양에 생활하고 있다. 여섯째 순복은 정삼품 무관벼슬인 어모장군 충순위 대호군을 지냈고 후손들이 성전면 금당리 예동지역에서 거주하고 있다. 일곱째 현복의 후손들은 해남군 옥천, 계곡등에서 여덟째 원복의 후손들은 성전면 금당리 달매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다.

관내에서는 억복의 후손들이 가장 많이 생활하고 있다. 억복은 무과에 급제한후 여진족의 난때 공을 세워 다음해 경원부사로 임명받았다. 이후 억복은 함경도 병마절도사에 오르면서 가문의 부흥에 크게 이바지했다.

억복의 손자 빈은 문과에 급제해 사헌부 지평(정오품벼슬)에 올랐다. 빈의 아들 담노는 학문이 뛰어나고 월출산 자락인 안운마을 백운동에서 은거생활로 유명하다. 담노의 증손자 의경은 사도세자에게 직접 교육을 시킬정도로 높은 지식으로 알려졌다.

이에 의경은 왕으로부터 친필 칠언, 삼언시를 직접 하사받았다. 또한 왕은 의경에게 벼슬을 권유했으나 관직을 버리고 후학을 양성하기위해 월출산 아래에 터를 잡았다.

의경은 월출산 아래 동강촌에 집을 짓고 후학을 위한 동강서원을 운영했다. 의경이 동강선생으로 불리우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원주이씨 제각은 성전면 영풍리에 위치해 있다. 매년 음력 10월 11일부터 해남에서 영화부터 제사를 지낸다. 관내에서는 음력 10월 13일 억복부터 선조들의 제사를 지내고 있다.

원주이씨 선조의 묘소에는 일반 주민들과 다른점을 찾아볼 수 있다. 묘의 형태가 왕릉처럼 지름이 3m가 넘는 대형묘의 모습을 하고 있다. 대형묘지는 예전 원주이씨의 경제적 능력과 위세를 파악할수 있게한다. 또 원주이씨의 묘소에는 비석을 찾아볼수 없다. 후손들에 따르면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풍습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관내 설치된 의경의 묘소에는 비석이 놓여있다. 이곳은 후손들이 만든 것이 아닌 의경의 제자들이 뜻을 모아 마련한 유일한 비석이다.

원주이씨출신으로는 성균관대 교수로 재직중인 이효익씨, 명지대교수로 근무하는 이효우씨, 농협중앙회 신용대표이사 이지묵씨, 서예가로 광주에서 활동중인 이효갑씨, 옥과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중인 이철수씨, 서울 김포초등학교 교장으로 근무하는 이철구씨, 광주기독병원 마취과장으로 재직중인 이철승씨, 한국은행 목포지점장으로 근무하는 이재묵씨, 성전지역 이삼현 군의원, 서예가로 활동중인 이효직씨가 있다.

 

원주이씨 문임을 맡아 5년째 활동중인 이철주(60)씨를 만나 문중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성전면 영풍리에 소재한 제각에 대해 이씨는 “제각 관리인이 없어지면서 제각의 관리가 많이 허술해졌다”며 “새로 제각을 보수하려는 것을 종친들과 협의중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문중 모임에 대해 이씨는 “해남에서 열리는 문중 시제에는 많은 종친들이 참여하고 있다”며 “강진지역에서 모이는 시제에는 매년 숫자가 줄어들어 지금은 50명정도가 조상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이씨는 “강진에는 종친회가 별도로 구성되지 않아 매년 하루 날짜를 정해 종친들의 모습을 보고있다”며 “문중을 위해서는 종친회가 결성돼 활발한 활동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주이씨 선조들에 대해 묻자 이씨는 후학들을 위해 서원을 차리고 활동한 의경에 대한 말을 먼저 꺼냈다. 이씨는 “지금은 동강서원의 자리에는 돌담과 함께 터전만이 남아있다”며 “후손들을 위해 동강서원터를 복원하는 방법을 논의할것”이라고 밝혔다.

동강서원의 활용방법에 대해 이씨는 “전통 서원으로 복원할 경우 후손들이 자주 찾기도 힘들고 유지관리도 한계가 있을것”이라며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후손들이 휴양시설로도 쉽게 사용할수 있는 복합적인 공간으로 만들어 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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