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따뜻한 박 보모를 만나다
가슴 따뜻한 박 보모를 만나다
  • 강진신문
  • 승인 2024.03.18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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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옛 이야기 - 동성리 사의재길(10)] 따뜻한 집, 자비원(Ⅰ)

'우리 동네 옛이야기'는 강진의 숨겨진 역사와 문화 이야기를 동화로 묶은 우리 강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지난해 11월 네 번째 책, '우리동네 옛 이야기-동성리 사의재길'을 출간했다. 이번원책은 장미연·김옥애·강현옥 글, 김충호 그림으로 만들어졌다. 
강진 사람이 모여서 함께 쓰고 그린 작품집이라 그 울림이 더 크고 우리들만의 소중한 공감대가 있다. 책을 통해 강진은 어떤 곳인지를 어렴풋하게 밝히는 마음속의 '등' 하나가 '반짝'하고 켜지길 기대해본다./편집자 주

 

강진자비원

 

한국전쟁(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군이 북위 38도선 이남으로 기습적으로 침공함으로써 일어난 전쟁)이 끝나자, 거리는 전쟁고아로 가득했어. 강진도 예외는 아니었지. 햇볕이 쨍쨍 내리쪼이는 여름, 아이들은 이리저리 몰려다녔어.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서였지. 때가 잔뜩 낀 얼굴을 보면 참 안쓰러웠어. 그러니 읍내 사람들이 돌아가며 아이들을 돌보았지. 그렇게 저렇게 살아남은 아이들은 고아원으로, 혹은 해외로 입양되었더란다.
 
목구멍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시절이었으니, 고아원의 사정도 좋지 않았어. 거친 잡곡에 나무새를 한데 넣어 푹 끓여 먹였거든. 거리를 떠돌다가 고아원에 들어와서 풀죽이라도 얻어먹으니 그나마 다행이었어. 아버지 같은 원장님, 엄마 같은 보모가 바람막이가 되어주었으니 말이야. 같은 처지에 놓인 형제자매들 덕분에 덜 외로웠을 테고. 하지만 밤이 되면 어린아이들은 귀퉁이에 모여서 울곤 했어.
 
"엄마~ 엄마~ 엄마~"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울고, 배가 고파서 울고, 너무 추워서 울었지. 강진 자비원에는 유난히 눈물이 많은 아이가 있었어. 황진성. "으~앙~ 앙~앙앙~" 하도 울어서 녀석의 별명은 사이렌(신호나 경보 따위를 알리기 위해 소리를 내는 장치)이 되었어. 그 당시에는 정오(낮 12시)가 되면 사이렌이 울리곤 했는데,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문풍지가 바르르 떨릴 정도였거든. 그런 진성에게 열두 살 누나가 있었는데 동생과는 달리 조용했단다. 벙어리인가,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진희야, 진희야." 사무국장이 소리쳤어. 진희는 돌아다볼 뿐 대답을 안 해. 멀뚱멀뚱 쳐다만 보고. "어른이 부르는데 왜 대답이 없니? 예배시간은 맨 날 빼먹고." 사무국장님의 야단에 진희는 고개를 푹 숙였어. "사무국장님, 제가 잘 타이를게요." 박 보모(보육원이나 탁아소 따위의 아동 복지 시설에서, 어린이를 돌보며 가르치는 사람)가 나섰지.
 

 

"그래요. 잘 좀 가르쳐보세요." 사무국장은 안경을 치켜 올리더니 사무실로 들어갔어.
"괜찮아. 괜찮아." 박 보모는 진희를 안고 토닥거렸어. 
 
박 보모의 품안에서 진희는 울 뻔했어. 하지만 꾹 참았지. 동생을 지키려면 강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 울면 지는 거라고.
 
'언젠가 부모님을 찾을 거야. 그때까지 진성이를 잘 돌봐야 해.' 진희는 다짐하고 다짐했어. 박 보모는 진희의 그런 마음을 다 아는 것만 같았어. 왠지.
 
진희가 전쟁 중 부모와 헤어져서 자비원에 왔다면 열 살 난 강태홍은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어서 들어온 아이였어. 여느 아이들처럼 울지도 않고 투정도 부리지 않았어. 
 
"하늘은 왜 파래요?" "사람은 왜 날개가 없어요?" "수탉은 왜 암탉보다 예쁘죠?" 맨날 물었지. 어른들은 대개 대답하지 않거나 얼버무렸어. 잘 모르기도 했고, 살기도 바빴으니까. 참 특이한 아이구나, 생각했단다.
 
어느 날 박 보모가 아이들을 한데 불러서 하는 말이, "애들아, 이제부터 감나무 교실을 만들려 하는데 너희들 생각은 어때?"하자 이용남이 물었어. "감나무교실이 뭔데요?" "음, 그야 하겠다는 아이들에게만 알려주지."
 
그때, 태홍이가 손을 번쩍 들었어. "전 무조건 할래요."
박 보모가 엄지손가락을 높이 올리며, "역시, 강태홍이다."
하자 아이들이 너도나도 손을 드는 거였어. "저요."
"태홍이가 한다면 저도 할래요." "저도요."
 
박 보모가 활짝 웃으며 말했어. "좋아, 내일 저녁 다섯 시에 저 감나무 아래에서 만나자."
 
감나무 아래 그늘이 지자,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어. 아이들이 대여섯 명 모였어. 시끌벅적 생기가 돌았지. 마치 푸른 숲속에 모인 새떼 같았어. 박 보모는 흐뭇했단다. "엄마, 약속대로 말해주세요. 우리는 이곳에서 무엇을 하나요?"
 
김철수가 물었어. 당시 아이들은 보모를 엄마라고 불렀거든. 
 
보모도 아이들을 품에든 자식처럼 여겼단다. 박 보모가 대답했어. "감나무교실은 바로 놀이터란다."
 
"네? 무슨 놀이터요?" "지금부터 그 놀이를 할 거야."
"뭐지? 뭘까?" 아이들은 고개를 갸우뚱했어. 
"강태홍, '가'자로 시작하는 낱말이 뭐가 있을까?" 강태홍이 생각에 잠기자, 박 보모가 말했어. "음, 예를 들면 '가수'라는 낱말이 있어. 노래하는 가수 말이야." "아? 알았어요. 그렇다면 가족?"
 
"좋았어. 가족. 나를 따라 해. 다 같이, 가~족." 아이들이 큰소리로 외쳤어. "가~족." "더 큰소리로 가~족." "가~족."
 
"이번에는 김철수." "음~ 가, 가, 가방?" "좋았어. 다 함께 가~방." "가~방." "더 큰소리로 가~방." "가~방."
 
"이번에는 이용남." "음~ 가, 가, 가~지?" "오, 좋았어. 다 함께 가~지." "가~지." "더 큰소리로 가~지." "가~지."
 
"손뼉 치며 가~지, 가~지, 가~지." "가~지, 가~지, 가~지."
요란한 아이들의 합창 소리에 한두 사람 모이기 시작했어. 
 
"박 보모가 공부를 가르치나 봐요." "그러게요. 아이들이 다 신났네." "우리 용남이가 공부를 하다니 해가 서쪽에서 뜨겠어요."
 
"맞아요." 사람들은 공부에 방해될까 봐 조용히 속살거렸어. 그때 박 보모가 소리쳤어.
"오늘은 '가'자로 시작된 낱말을 찾아보았어. 우리 내일은 무슨 낱말을 찾아볼까?"
"나'자로 시작된 말이요." 아이들은 입을 맞춘 듯이 대답했단다. 
 

 

매일 아이들은 감나무 교실로 모여 들었지. 한 사람 두 사람 늘어났어. 어느 날, 강태홍이 손을 번쩍 들었어. "엄마, '가'자는 어떻게 만들어진 거예요?" 한글의 제자 원리를 묻는 거였어. 박 보모는 깜짝 놀랐지.
 
"음, 그건 조금 어려운데… 한글은 세상의 모습을 본뜬 거란다. 우리가 지금 배우고 있는 글자'ㄱ'자는, 자음'ㄱ'과 모음'ㅏ'가 만나서 '가'자가 된 거야. 기역(ㄱ)이 들어간 글자를 발음할 때 혀뿌리가 목구멍을 막거든. 그 모양을 본떠서 만든 글자란다. 어때? 과학적이지?" "네."
 
"바로 혀의 모양을 본뜬 글자거든. 니은(ㄴ)은 혀끝이 구부러져 윗잇몸 안쪽과 닿으면서 소리가 난단다. 그래서 그 소리가 만들어지는 순간의 모양을 본떠서 니은을 만든 거란다. 자 그러면 모음 'ㅏ'는 어디에서 왔을까?" "몰라요."
 
"음 그건 천(天), 지(地), 인(人), 세 글자에서 왔단다. 하늘은 (·), 땅은 (ㅡ), 사람은 (ㅣ), 그러면 'ㅏ'는 인(ㅣ)자 옆에 하늘(·)을 찍어서 'ㅏ'가 된 거지."
 
"으악~ 머리 아파요." 이용남이 성난 거위처럼 소리쳤어. 물론 다른 아이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
 
박 보모가 웃으면서 말했어. "알았어. 알았어. 오늘은 여기까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들은 꼬투리의 콩이 튀듯이 사방으로 흩어졌단다. 강태홍만 빼고. 
 
"넌 왜 안가니?" 박 보모가 묻자, 태홍이가 대답했어. 
"엄마, 한글은 언제, 누가 만든 거예요?" "맙소사, 우리 태홍이는 궁금한 것도 많구나?" "헤헤헤."
 
"음, 그렇다면 말해줘야지. 우리나라는 고유한 말을 갖고 있었어. 그런데 그 말을 표현할 기호가 없었단다. 그래서 한자를 오랫동안 사용했어. 그런데 조선시대 세종대왕이라는 분이 그 기호를 만드신 거야. 그것이 바로 '한글'이란다. 이해가니?"
 
"음,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드셨단 말이잖아요."
"그렇지, 어려운 한자 대신 쉬운 한글을 만드신 거지." "왜요?"
"음, 한자는 양반들만 썼거든. 백성들은 알 수 없었어." "아? 그래서 백성들을 위해서 한글을 만드셨구나?" "그렇지. 우와, 우리 태홍이는 커서 뭐가 될까?" "뭐 사람이 되겠지요."
 
"호호호. 맞아, 아주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우리 태홍이는."
박 보모가 태홍이의 등을 토닥거렸어.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용남이는 머리가 복잡했지. "아~~함~~"
 
늘어지게 하품을 했지. 세상 재미없는 공부를 스스로 남아서 하다니, 이해할 수 없었거든. 사실 태홍이가 억지로 용남이를 감나무 교실에 데려왔어. 우락부락 힘만 쓰려고 하고, 이것저것 시비 붙이며 싸움만 일으키니 잠시라도 붙잡아 두려고 말이야. 태홍이는 샌님 같은데, 용남이는 쌈닭 같아서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친하게 지내니 이상하긴 해. 게다가 용남이는 태홍이 말에 꼼짝 못 했거든.
 
두 사람이 친하게 된 사연이 있었어. 그 즈음 용남이는 밖에서도 안에서도 친구들과 매일 싸우다시피 해서 자비원 직원들의 속을 썩였어. 어린 마음속에 울분이 쌓였는지 누구든 닥치는 대로 시비하고 싸우려 들었거든. 그러다가 징징댄다며 진성이를 때리고 달아났더란다. 
 
"엄마~~ 으앙~ 앙앙앙~~" 진성이의 울음보가 터졌지. 동생의 울음소리를 듣고 달려온 진희가 용남이를 한방에 때려 눕혔어. 두 아이는 엎치락덮치락 야단이었지. 어른들은 둘을 떼어놓느라 야단이었고. 그때였어. "김용남, 너 이리 와봐."
 
강태홍이 아이들 틈에서 나오더니, 용남이 손을 끌고 대문 밖으로 나갔어. "어떡해요. 원장님."
"제들 그대로 뒀다가 큰일 나는 거 아니에요?"
"기다려 봅시다. 둘이 해결하도록."
 
김 원장이 손짓을 했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라는 신호였지. 박 보모는 걱정이 되었어. 빈 마당에서 한참을 서성댔어. 아이들이 돌아올 때까지.
"달~그~닥" 잠시 후, 대문이 열렸고 두 아이가 들어왔어. "……." 
 
박 보모는 말없이 바라보았지. 둘은 무슨 일 있었냐는 듯 사이좋게 방으로 들어갔어. 그 후 두 아이는 친하게 지냈고 용남이는 아이들을 때리지 않았더란다. 자비원 아이들은 어른들의 훈육과 보살핌 속에서 쑥쑥 자라났어. 아팠던 기억과 상처도 조금씩 아물어갔지.

따뜻한 집, 자비원
1952년 5월 3일 김석열씨가 처음 강진 자비원을 창립했어. 이듬해 김석열씨는 학교 선생님으로 가시고 이야기 속 김연수씨에게 위임을 했단다. 이후 김연수씨는 원사와 샘을 수리하고 변소, 목욕탕, 신관을 신축했어. 이윽고 108명의 고아를 수용하고 교육을 시켰지. 1958년 119명의 원아와 9명의 직원을 데리고 아래와 같이 기념사진을 찍었단다. 초가지붕을 기와로 말끔하게 덮고. 여기를 보세요, 찰~깍!
 
전쟁 이후라 생활물자와 식량이 부족했지. 자비원 식구들은 똘똘 뭉쳐서 고난을 극복해야 했어. 그래서 주변으로부터 독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오해야. 상처를 추스르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느라 우애가 남달랐던 거지. 
 
본래 천성은 착한 아이들이었어. 세수하는 장면을 보렴. 영락없는 동네 꼬마들, 장난꾸러기가 틀림없다고. 없는 살림에 많은 아이들을 보살피느라 직원들도 고생이 많았어. 젖먹이를 기르는 보모와 음식을 만드는 아주머니, 사무실 운영을 돕는 직원들까지 네 일, 내 일 따지지 않고 일을 했지. 그러다 보면 우는 일도 웃는 일도 많았지.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이 딱 맞았지. 
어느 날, 새로 들어온 직원이 특별한 반찬을 챙겨서 김 원장 밥상에 올렸던 모양이야.
 
"이 생선은 귀한 것인데 우리 애들도 먹였소?" 김 원장이 물었어.
"아니요. 딱 한 마리라 원장님 상에 올렸어요." 김 원장은 깜짝 놀라며,
"아이들 먹지 않은 것은 나도 먹지 않소." 단호하게 말했다고 해. 직원은 당황해하며 생선 접시를 치웠고. 김연수 원장은 그런 사람이었어. 
 
이야기 속에 나오는 박 보모를 보면 "해와 바람과 나그네" 
이야기가 떠올라. 바람이 아무리 강해도 따뜻하게 감싸주는 해님이 결국 나그네의 모자를 벗겼잖아. 사랑이 미움을 이기는 법이지. 말을 잃었던 진희를 말없이 지지한 박 보모. 진희는 지
금쯤 작가가 되어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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