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시루와 재 콩나물
[기고] 시루와 재 콩나물
  • 정선례 _ 칠량면 주부
  • 승인 2023.12.20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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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례 _ 칠량면 주부

가을 햇살에 잘 여문 알곡을 추수하는 날이다. 들밥을 내가야 한다. 간편하고 맛있는 메뉴인 꼬막 비빔밥으로 정했다. 비빔밥은 우리의 전통음식이다. 비빔밥은 잘 버무려도 못 비벼도 자연 건강식이라서 맛있다. 장날에 산 꼬막을 삶아 까놓았다. 씨알이 통실통실하다.

산에서 직접 채취한 취나물과 표고버섯, 파프리카와 당근, 호박 채를 썰어 넣고 한우 고기도 볶아 준비했다. 달걀도 넉넉히 부치고 밥도 흰밥으로 고슬고슬하게  지었다. 참기름도 챙기고, 대파 듬뿍 넣은 시래기 된장국도 식지 않게 보온병에 담았다. 앗! 약방에 감초가 빠졌다. 비빔밥에 콩나물이 들어가지 않으면 앙꼬 없는 찐빵이다.

콩나물을 어릴 적에 자주 먹었다. 어머니는 가을이면 갓 수확한 콩나물 콩을 한 가마 따로 대청마루에 보관해 두고 썼다. 그리고 겨우내 쟁반에 흩뜨려 돌과 벌레 먹고 덜 여문 콩을 골라내는 선별 작업 후, 햇콩이 나올 때까지 콩나물을 기르셨다. 수북이 자란 콩나물을 뽑아 반찬으로 도시락을 자주 싸주었다.

안방 윗목에는 콩나물시루가 함초롬히 항상 자리 잡고 있다. 이른 아침 콩나물시루에서 또르르 물 떨어지는 소리에 잠이 깨곤 했다. 어머니는 새벽 단잠을 물리치고 맨 먼저 일어나 차고 깨끗한 물을 시루 위에서 손등을 규칙적으로 흔들며 골고루 뿌렸다. 물줄기는 콩을 매만지며 촤르르 쏟아져 한 방울씩 똑똑 떨어지는 소리를 냈다.

콩나물은 어둡고 습해야 잘 자란다. 햇빛을 보면 광합성작용을 하여 초록색으로 바뀐다. 명절 또는 잔치를 일주일쯤 앞두면 어머니는 콩을 하룻밤 담가 물에 뜨거나 상한 콩을 건져 냈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옆의 다른 건강한 콩도 썩는다. 뿌리가 나지 않은 콩도 마찬가지다. 콩나물은 계절에 상관없이 키울 수 있지만 여름철에는 온도와 습도가 높아 속에서 열이 나고 물받이에서 거품이 생겨 비릿한 냄새가 나기도 한다. 더울 때는 서늘하고 빛이 들지 않아 통풍이 잘되는 자리에 시루를 둔다.

남부 지방에서 많이 기르는 재 콩나물 기르는 방법을 소개한다. 먼저 똘똘한 콩을 물에 잠기도록 한나절 불려 놓는다. 마당에서 볏짚을 태워 새까매진 재를 만든다. 콩이 시루 구멍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바닥에 모기장이나 면보를 깐다. 그 위에 재를 가만히 얹고 불린 콩을 한 줄 뿌려준다. 콩 사이에 재를 서너 번 얹어 시루 절반 정도 올라오게 안친다. 맨 위에도 재를 뿌려주는데 물은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골고루 줘야 한다. 지푸라기를 삼등분으로 잘라 지그재그로 얹는다. 이때 호스로 물을 듬뿍 주고 빛이 들지 않도록 검은색 면 보자기를 덮는다.

계절과 기온에 따라 물 주는 횟수가 달라지는데 보통 세 번 준다. 시루 위에 손바닥을 쫙 펴고 손을 흔들면서 손등에 뿌려야 시루 가운데 후끈한 열기가 빠져나가 썩지 않는다. 물을 흠뻑 자주 줄수록 잔뿌리가 생기지 않는다. 1일째가 되면 하얀 뿌리가 옆구리에서 삐죽 보인다. 3일째에는 개구리 뒷다리처럼 뿌리가 쑥 나와 콩나물의 형태가 되어 조금씩 자라는 것이 보인다. 좁은 시루 안에서 서로 빨리 크겠다고 시샘하거나 괴롭히지 않고 쑥쑥 큰다.

4일째에는 뿌리는 가지런히 아래로 내려가고 머리는 일제히 위를 항해 있다. 5일째는 한 가운데를 쑥 뽑아 된장국을 끓인다. 국거리용은 덜 자라야 부드럽다. 일부 뽑아내면 통풍이 되어 더욱 무럭무럭 자란다. 6일째, 일제히 솟은 콩나물이 검은 면 보를 받들고 있다. 시루에 가득 찬다. 그저 물만 줬을 뿐인데 작은 콩알이 싹이 터서 이렇게 자라는가 싶어 신기하다. 이쯤 되면 아낌없이 뽑아 쓴다. 

콩나물시루는 하늘나라 요정들이 농부를 도우려고 내려 준 선물이란 말이 있다. 나 또한 주변에 상큼한 맛을 선사하는 콩나물시루의 꿈을 키우느라 하루가 분주하다. 세상에 나아가 늘 영양을 제공하는 콩나물 같은 마음이 내 안에 쑥쑥 자라도록 긍정과 열정의 물을 듬뿍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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