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횡무진 유세의 달인 '소진, 장의 열전'
종횡무진 유세의 달인 '소진, 장의 열전'
  • 강진신문
  • 승인 2023.11.27 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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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김점권의 다시 보는 중국의 고전(29)

김점권 전 센터장은 도암출신으로 전남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포스코 및 포스코건설에서 25년간 근무하면서 포스코건설 북경사무소장을 거쳐 중국건설법인 초대 동사장을 지냈다. 이어 광주테크노피아 북경 센터장을 거쳐 교민 인터넷 뉴스 컬럼리스트로 활동했다. 중국에서 25년간 생활한 역사와 고전, 문학류를 좋아하는 김 전 센터장을 통해 중국고전에 대해 새롭게 접근해본다. 편집자주/
 

 

'개천에서 용난다' 라는 말은 우리나라 7~80년대에 유행했던 말이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 누군가는 공부 하나로 도서관 서생에서 일약 지방 수령 및 판검사 등 영감이 되었고, 누군 가는 맨손으로 시작하여 경제계를 평정하였다. 시대가 인물을 만든 것이다.

중국 전국 시대는 혼란과 힘의 대결 시대였다. 누구라도 능력이 있다면 중용되었고, 역사를 좌지우지하는 인물이 되었다. 하지만 능력이라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이며 이기적인 것이다.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자신이 섬기려는 군주의 입맛에 맞아야 하고, 당시 시대적 요건과 운이 따라야 했다. 중국 전국(戰國) 시대 (기원전403~기원전 221)에는 백화쟁명의 시대로 사상과 인물의 시대였다.

지금까지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맹자, 장자, 묵자, 순자, 양자 등 수많은 철학자들이 활동했고, 정치적으로는 오자, 손빈, 방연, 상앙, 소진, 장의, 범저, 공손연, 맹상군, 평원군, 여불위, 한비자, 이사 등 진 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기 전까지 구름 같은 영웅들이 수채화처럼 스쳐갔다.

그중에서 단연 사람들의 입을 통해 가장 많이 회자되는 것은 소진(蘇秦)과 장의(張儀)가 그중의 하나다. 그 이유는 사마천이 지은 <사기>에 그들이 출세하기 전까지는 하루 먹고 사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일반 평민 출신이 공부를 하여 일약 출세하고 천하를 좌지우지하는 모습이 너무 생생하게 꾸며져 있기 때문이다.

자, 이제 흙수저에서 일약 천하의 주인공이 된 소진과 장의를 조금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우선 우리나라 역사 사전에 소진과 장의를 찾으면, '말을 잘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 이라는 뜻으로 설명 되어 있다. 고유명사 인물이 보통 명사 의미로 전환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정말 그렇게 말을 잘했을까? 맞다. 오죽했으면, 장의가 주인을 찾기 위해 동분서주 하는 과정에 실컷 두드려 맞고 나서 하는 말이 '내 입은 괜찮은가? 그렇다면 문제없다.'라고 했겠는가?

그런데, <사기>에 묘사된 소진과 장의 열전 고사는 실제 역사적 사실과 조금 다르다고 한다. 즉이런저런 상반된 역사적 고사와 고증을 들여다 보니 <사기>에 언급된 소진, 장의 열전은 사실과 소설 적 허구가 다수 섞여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선 <사기>에 언급된 소진, 장의 열전에서는 소진이 먼저 출사하여 진 나라에 대항하기 위해서 나머지 6개 국가(제,초, 조, 위, 한, 연)가 연합하자는 합종책을 건의하였고 이것이 성공하여 6개 국가의 재상이 되어 천하를 호령한다고 서술되었다.

그리고 도중에 귀곡자 문하의 동문인 장의가 출세한 소진을 찾아오자 소진은 고의로 장의에게 굴욕과 수모를 주어서 쫒아내고, 분개한 장의가 출세와 복수하기 위해서 진 나라를 찾아가게 하지만, 막후로는 소진이 수하를 통해서 장의를 적극 지원해서 진 나라에서 등용되어 자신의 정책을 지지해달라는 것이다. 장의는 소진의 지원으로 진나라 군주에게 유세하여 일약 승상이 되었고, 그는 진 나라에 대항하는 여섯 개 국가를 각개 격파하여, 진 나라와 각각 연합하여 이웃 국가의 침략에 대비하자는 연횡책을 주창하는 것이다.

연횡책은 소진이 주장하는 합종책에 반하는 외교정책이다. 그럼 합종책과 연횡책은 무엇인가? <합종책(合緃策)>은 소진이 당시의 강대국이었던 진(秦)나라에 대항하기 위해서 나머지 6개 국가가 힘을 합쳐 공동 대응하자는 외교정책이며,  반면에 <연횡책(連横策)>은 진나라 승상이 된 장의가 내세운 정책으로 약소국인 6 개 국가에게 진 나라를 중심으로 연합하여 다른 나라 침략을 대비 하자는 외교 정책이다. 사실 이는 창과 방패와 같으며, 상대 전략을 물리쳐야 내가 살 수 있는 전략으로서 친구 간에 치열한 승부를 치러야 하는 정책이었다. 하지만, 사기에는 장의가 연횡책을 활발히 펼치는 시점은 소진이 제 나라에서 자객에게 살해당한 이후부터 라고 하였다. 즉 친구와의 약속을 지켰다고 언급 하였다.

그런데, 실제 역사적 사실은 약간 다른가 보다. 우선 최근 중국 티브이에서 방영한 진(秦)제국의 발전 단계부터 천하 통일까지 그려낸 <대진제국(大秦帝國)> 이라는 드라마에서는 전국 시대 활동 시기는 장의가 먼저였으며, 소진은 다음이었고 장의를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준 인물은 소진이 아니라 주나라 황실 출신의 소문군(昭文君)이라고 묘사하였다. 내용을 좀 더 살펴 보자.

우선 소진, 장의는 당대 최고의 기인이었던 귀곡자의 제자라고 한다. 귀곡자의 제자는 소진, 장의 말고도 유명한 인물이 많다. 손빈, 방연, 채택 등이 그의 제자라고 했다. 한마디로 전국시대 말기의 내노라고 하는 인물은 거의 그의 제자라고 자천타천으로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귀곡자 선생은 역사적으로 실존 여부가 불투명한 가장 신비한 인물이다.

중국 드라마 상 묘사된, 장의에 대한 인물 평은 명예보다는 실리 위주의 철저한 현실주의 정치가로서 묘사하였다. 그는 가난한 시기를 극복하고 일약 진 나라의 승상이 되고 나서도 육 국을 종횡무진 다니면서 세치 혀로 상대국의 약점을 빌미로 어느 때는 협박하고, 어느 때는 상대를 이간질 시키며, 어느 때는 이익을 나눠주고, 어느 때는 약한 모습을 보이면서, 최종 진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 고군분투 했다.

하지만 장의의 성공을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 외교적 활동은 진나라 내부 유교파, 왕권파 등에게 도덕적인 멸시를 받았고, 돈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행동하는 장사치 같은 소인이라고 폄훼당했다.

하지만, 장의의 말로(末路)는 다른 유명 인사에 비해서 비교적 순탄했다. 진 나라의 실질적 중흥의 기수였던 상앙은 효공이 죽자 반역죄로 능지처참을 당했고, 오기는 초나라 왕이 죽자 반대파들에게 살해당했으며, 소진 역시 제나라에서 역적으로 살해당했으나, 장의는 비록 진나라에서 추방 당하지만, 자신의 모국인 위나라에서 승상까지 하다 병사했기 때문이다.

장의의 말로가 순탄했던 이유는 그가 비교적 유연한 성격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비록 나라의 이익을 위해서 상대와 싸우긴 하되, 상대를 끝까지 죽이려고 하는 사생결단까지는 가지 않고 상황을 면밀히 파악하여 최소한의 여지를 남겨두는 처세가 철천지 원수를 만들지 않고 비교적 순탄한 말로를 맞이한 것이라고 한다.

반면에 소진의 삶은 더욱 드라마틱 하고 결과는 비참했다. 사마천은 소진의 삶을 통해서 당시 도덕군자 만을 존중하는 권문세가들의 분위기에 "평민 출신인 소진이 여섯 제후 국을 연합하여 동맹국으로 묶었다니, 이런 능력은 그가 비범한 인물이었음을 보여준다" 라고 일침을 가했다. 하지만 소진의 행동은 권모술수의 대명사였으며, 성공을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사마천은 소진을 평하길, "그의 수단은 권모술수와 임기응변에 강했다" 라고 평가했으며, 후세 사람들은 임기응변이야 전세에 따라서 그렇다고 하더라도 권모술수에 대해서는 "소진은 이리저리 사기 치고 다니며 나라를 팔아먹는 놈"이라고 혹평했다.

소진은 출세욕이 강해서 젊어 서부터 제나라에 유학하고 유명한 귀곡 선생의 문하생이 되는 등 부단한 노력을 하여, 결국 출세한 인물이다. 출세욕은 도덕성을 바탕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바꾸기 보다는 우선 자신의 입지 확보를 위한 권모술수에 능한 사람으로 만든 것이다.

<소진과 장의> 그들에 대해서 사마천은 "요컨대 소진이든 장의든 정말 겁나는 인물들이다"라고 한마디로 요약했다. 누구라도 세상에 태어나서 출세하여 가문의 명예를 드높이고, 개인의 영달을 바랄 것이지만, 그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머리가 좋으면 공부를 잘해서 일약 영감이 되기도 하지만, 결코 이후 자신이 원하는 만큼 더욱 발전할 수 있다는 보장은 할 수 없는 것이 인생사다.

즉 성공은 결코 노력과 실력만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어쩌면 <운칠기삼(運七技三)> 즉 행운이 칠이고 능력은 삼이다 라고 하는 말이 나이 들어서는 더욱 실감난다.

사마천의 <사기>에서 가장 재밌고 흥미로운 열전 중의 하나는 역시 소진, 장의 열전이다. 그들이 아주 어려운 환경 속에서 세상을 자신의 힘으로 개척한 사람 중의 하나인 '苦盡甘來'가 그들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을 좋아하며 역사책을 즐겨 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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