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밀주(密酒) 이야기
[기고] 밀주(密酒) 이야기
  • 조윤제 _ 시인
  • 승인 2023.10.2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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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제 _ 시인

고등학교 1학년쯤 된 것 같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친구들과 재미있는 일 없을까 생각 끝에 한 친구가 냇물에 물고기 잡으러 가서 봤는데 앞 냇가 대숲에 술 냄새가 나서 가만히 가서 거적을 들치고 보니 술이 있더라고 한다.

살금살금 가보니 아주머니들이 농주(農酒)로 먹기 위해서 방에서 온도를 맞추어서 어느 정도 익으면 밖에다 숨겨둔다. 그 술 인지 두독아지가 있다. 어둡기를 기다렸다가 친구들이랑 양동이 2개를 준비해서 들고 가니 술 익는 냄새가 달콤했다.

양동이 2개에 술을 퍼담아 나누어 들고 나머지는 술 주인아저씨 드시라고 놔두고 동네 사람에게 들킬가 봐 논둑길 나락 논을 지나서 살금살금 걸어서 친구네 사랑방(모여 노는 방)에 가지고 와 친구들이 나도 한 잔 너도 한 잔씩 안주도 없이 동동주를 마시기 시작해서 한 양동이가 바닥이 났다.

그랬더니 술에 취해 코 골고 잔 친구, 노래를 부르는 친구, 봉창을 두드리는 친구, 곱게 자는 친구, 비틀비틀하며 집으로 가는 친구 가지각색이었다. 술을 마실 때 다른 사람에게 들킬까 봐서 세살창 출입문 돌쩌귀(문고리)를 잠가놓고 먹었는데 우리 동네에서 남의 집 머슴 사는 형이 놀려와서 함께 술을 마시게 되었는데 소변이 마려워 술에 취한 김에 문이 안 열리니 문을 발로 차서 문을 뚫고 나와서 소변보고 들어가서 자고, 일어나보니 문짝이 뚫어지고 부서져 자기가 한 짓임을 알고 아침밥 먹고 다시 와서 문짝을 뜯어서 지게에 지고 인근 면 목공소에 가 고쳐서 지게에 짊어지고 와 문짝을 달아 놓았다고 나중에 소문이 나서 동네 사람들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고 한다.

새벽이 되자 술 한 동이 남아서 치워야 하는데 어른들이나 술 주인에게 발각되면은 큰일이라 생각하고 궁리 끝에 소 마구간 구시에 갔다 부어서 놓으면 되겠다 싶어서 갔다가 부어 놓았다. 그래서 안심하고 자고 있는데 주인아저씨가 아침이 되자 나와서 소여물을 주는데 소가 일어나지 못하고 비실비실해 이상하다고 야단이 났다.

그래서 마당에 나가봤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소를 마당으로 끌고 나와 이리 갔다 저리 갔다 걸려보니 삐척삐척 걷는 것을 보고 소가 병들었다고 걱정하는데 모르는 척했다. 시간이 얼마만큼 가니 소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주인집 아저씨가 친구 아버지였는데 친그와 같이 지양을 부려서 모른 척하고 있다가 나중에 말씀드리니 시간이 지난 이야기라 다른 말씀은 안 하고 고약한 놈들이라고 웃으셨다.

그때는 술을 여기저기 숨겨두고 해 먹을 때라서 어디가 있는지 알면은 밀대를 준비해 가서 뚜껑을 가만히 열고 밀대를 술 독아지에 깊이 박아서 실컷 빨아먹고 또 친구를 데리고 가서 함께 밀대 빨대로 빨아 먹고 해롱해롱 흔들흔들 술에 취해서 얼굴이 빨갛고 술 냄새를 풍기고 다니다가 어른들에게 혼이 나기도 했다.

밀주(密酒)란? 1960년대 이전에는 막걸리를 농주로 담가서 산과 들 개울가에 몰래 숨겨두고 먹을 때가 있었다.

집에다 막걸리를 담가서 먹게 되면은 세무서에서 직원이 나와 뒤져서 발각되면은 주세법 위반으로 벌금을 물려 내고 나면 그 집에 일 년 살림살이를 거덜 내는 횡포가 극에 달했다. 심하면은 경찰서에 잡혀가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6.25 후에 선거 때 야당 표가 많이 나온 마을은 술 뒤져 밀주 단속해서 괴롭히고 벌금 물리고 산림을 지키는 공무원들이 집집이 들어가서 산림채취 조사해서 걸리면 벌금 매기고 수모와 탄압을 받았던 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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