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생들의 글 읽는 소리 가득한 곳
유생들의 글 읽는 소리 가득한 곳
  • 강진신문
  • 승인 2023.08.23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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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옛 이야기 - 동성리 사의재길(1)]
강진향교와 송하장(Ⅰ)

'우리 동네 옛이야기'는 강진의 숨겨진 역사와 문화 이야기를 동화로 묶은 우리 강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지난해 11월 네 번째 책, '우리동네 옛 이야기-동성리 사의재길'을 출간했다. 이번 책은 장미연·김옥애·강현옥 글, 김충호 그림으로 만들어졌다.
강진 사람이 모여서 함께 쓰고 그린 작품집이라 그 울림이 더 크고 우리들만의 소중한 공감대가 있다.
책을 통해 강진은 어떤 곳인지를 어렴풋하게 밝히는 마음속의 '등' 하나가 '반짝'하고 켜지길 기대해본다./편집자 주

강진향교

 

"향교에 대해 들어본 사람 있나요?" 하고 물으면 아이들 중 반은 손을 들고 반은 우물쭈물하며 눈치를 본단다. 들어본 것도 같은데 정확히는 모르겠거든.
"향교에 대해 아는 대로 대답해볼래요?" 하고 물으면 그 대답도 재미있단다.

"옛날 기와집이에요." 라는 대답이 나오면 모두 한바탕 까르르 웃는단다. 아마 웃는 친구 중엔 같은 생각을 한 친구도 많을걸?
"갓 쓰고 한복 입은 할아버지가 한문을 가르쳐 주는 곳이에요."

뭐, 요 정도 대답에는 "오!" 하는 감탄사 정도는 따라 붙어주지. 뭔가 알고 있는 듯 하거든. 그럼 너희는 어때? 너희는 향교가 어떤 곳인지, 어디에 있는지, 뭘 하는 곳인지 알고 있니? 이렇게 묻고 있는 나도 사실은 너희만 할 땐 향교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단다. 그 어르신을 만나기 전까진 말이야.

내가 딱 너희만 할 때였어. 향교 앞 은행나무 잎이 초록빛 덩어리로 무성해지고 있을 무렵이니까 딱 이 무렵이었나 봐. 학교에서 향교라는 델 간다는 거야. 그것도 걸어서 말이야. 날씨는 한참 더워져 가고 있는데 걸어서 현장학습을 가자니 짜증이 났지. 그래서 나도 모르게 친구들 무리에서 뒤처지고 말았단다. 해찰을 부리다 정신을 차려보니 친구들은 이미 다 향교 안으로 들어가고 안 보이는 거야. 그래서 부랴부랴 큰 대문 안으로 들어서려고 하는데

"어허! 누가 외삼문을 왼쪽으로 들어서는 게냐?" 하고 호통 치는 소리가 들려왔어.
"누구세요?"

깜짝 놀라 돌아보니, 반백의 수염을 늘어뜨린 어르신 한 분이 뒷짐을 지고 서 계신 거야. 옛날 사람처럼 갓을 쓰고 하얀 두루마기(겉옷 위에 걸쳐 입는 웃옷의 일종)를 입은 단정한 모습이었지. 차림새로 보아 향교의 일을 맡아 보시는 분 같았어.

"네가 지금 들어서려는 외삼문 왼쪽 문은 나올 때 쓰는 문이니라. 세 개의 문 중 들어설 때는 오른쪽 문을, 나올 때는 왼쪽 문을 이용해야 하느니라. 그런 간단한 규칙도 모르다니 어디서 온 아이인 게냐? 또 그 입성(옷 입은 모양새)은 왜 그리 해괴한 것이야? 아무리 시대가 혼란스럽기로 아이를 양이(洋夷. 서양 오랑캐라는 뜻으로, 특히 구한말 조선을 드나들거나 침략한 서양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의 차림새를 해서 내보내다니 도대체 어느 집안인 게야, 쯧쯧!"

 

어르신은 차림새만 옛날 사람 같은 게 아니라 말투도 정말 옛날 사람 같았단다.
난 잠시 얼떨떨해서 아무 대답도 못 하고 얼음처럼 서 있었어.
"따라 들어오너라. 마침 네게 맞을만한 옷이 한 벌 있으니 갈아입도록 하거라. 네 부모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양이(洋夷. 구한말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구권에서 들어온 사람들을 서양에서 들어온 오랑캐라는 뜻으로 낮잡아 부르던 말) 옷을 네게 입혔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입성으로 다니다가 동학군들 눈에라도 띄면 분명 화를 당할 것이다. 그러니 어서 그 입성부터 바꾸는 게 좋겠구나."

"동학군들이라면 동학농민군을 말하는 건가요?"
나는 그 어르신이 시대 상황 극을 하는 분인 줄만 알았어. 왜 있잖아? 민속촌이나 그런 곳에 가면 시간을 거슬러서 그 시대의 모습을 재연하는 배우들이 관광객들을 위해 연기해주는 그런 것 말이야. 꼭 그런 줄만 알았지.

"너도 동학도들을 아는 게냐?"
어릴 적 나는 공부는 못했지만 나름 역사엔 관심이 많았어. 또 아버지와 집안 어른들이 하시는 말씀을 어깨너머로 들은 적도 많아서 나름 좀 알고 있었지. 그래서 아저씨가 이렇게 물었을 땐 난 수다쟁이가 되어서 내가 아는 지식을 죄다 쏟아냈단다.

"최재우가 창시한 민족 종교로 천주교인 서학(西學)에 대립하여 동학(東學)이라는 이름을 쓴 종교가 아닌가요? 사람은 본래 하늘의 성품을 가졌으므로 사람이 곧 하늘이요, 하늘이 곧 사람이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내세우고 있는 걸로 아는데요. 그래서 모든 사람이 하늘처럼 존귀하므로 사람 대하기를 하늘을 섬기는 것처럼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지요."

내 대답에 어르신은 날 빤히 쳐다보셨어.
"허, 보아하니 이제 열두어 살 정도밖엔 안 되어 보이는데 그런 말들은 어디서 그리 다 주워들었느냐? 차림새만 요란한 줄 알았더니 입놀림도 요란하구나. 보아하니 너도 차림새가 이상해서 그렇지, 반가(양반집)의 자손 같은데 자고로 선비라면 말을 그렇게 가볍게 해서도 안 되며, 빨리 해서도 안 되느니라. 어쨌든 어서 따라 들어오너라. 강론에 늦겠다."

갓을 쓴 어르신을 따라 오른쪽 문으로 들어서니 작은 마당 왼편으로 서당 숙소 같은 곳이 보였어. 그곳에서 어르신이 주신 흰 바지, 저고리에 푸른 쾌자로 갈아입고 계단을 오르니 굵직한 남자 아이들 목소리가 들렸어. 난 같은 반 친구들인 줄 알고 반가운 마음에 단숨에 소리가 난 곳으로 달려갔어. 그런데 어디에도 친구들 모습은 보이질 않는 거야. 친구들 대신 쾌자를 걸쳐 입은 중·고등학생 쯤 되어 보이는 형님들이 대청마루에 앉아 큰소리로 무언가를 외우고 있었지. 그때야 난 내가 다른 세상에 들어온 걸 알고 깜짝 놀랐단다.

공자삼계 도운 (孔子三計 圖云) 공자가 삼계도에 이르기를,
일생지계 재어유 (一生之計 在於幼) 일생의 계획은 어릴 때에 있고,
일년지계 재어춘 (一年之計 在於春) 일년의 계획은 봄에 있고,
일일지계 재어인 (一日之計 在於寅) 하루의 계획은 새벽에 있다
유이불학 노무소지 (幼而不學 老無所知) 어려서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아는 것이 없고,
춘약불경 추무소망 (春若不耕 秋無所望) 봄에 밭 갈지 않으면 가을에 바랄 것이 없으며,
인약불기 일무소변 (寅若不起 日無所辨) 새벽에 일어나지 않으면 그날의 할 일이 없느니라.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소나기라도 퍼붓는 듯 시원하게 퍼졌어. 그런데 어르신이 들어서자 일시에 외우던 걸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서 인사를 하는 거야. 아마도 그 어르신이 글을 읽고 있던 형님들의 선생님인 것 같았어.

"시국이 어지럽다고 글공부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되느니라. 이럴 때일수록 너희 같은 유생들이 더욱 배움에 힘쓰고 정진해야 한다. 그게 곧 애국하는 길임을 명심하거라."
어르신의 말씀은 쉽고 간결했지만 목소리엔 힘이 실려 있었어.

"명심하겠습니다."
형님들의 목소리는 우렁차고 듬직했지.
"동학도들의 소식은 좀 들으셨습니까?"
그중에 반장인 듯 보이는 나이 많은 형님이 근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어.
"글쎄다. 잔당들을 추포하고 있다고는 하는데 자세한 것까진 나도 모르겠구나."

"외세에 항거하기 위함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어쨌든 그네들이 내세운 인내천 사상의 기본 정서는 조선의 기본 신분 질서를 뒤흔드는 것이 아닙니까? 상황이 이러한데 아무리 인정이 쏠린다고는 하나 그들을 두둔하는 글을 올리시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혹여 선생님께 해가 될까 걱정이 되옵니다."

"상소 얘기는 누구에게 들은 거냐?"
"어제 아버지와 백부님(伯父.큰아버지)께서 하시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스승님께서 강진 유생을 대표해서 상소 글월을 쓰시기로 하셨다던데 다시 생각해보심이 어떠할는지요?"
"도진아, 올해 네 나이가 몇이더냐?"

어르신은 제자의 걱정에는 아무 대답도 없이 조용히 나이를 물으셨어. 외삼문 앞에서 나에게 호통을 치시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인자한 목소리로 말이야.
"열아홉입니다."
"참으로 좋은 나이구나. 생각이 무르익을 나이지. 허나 자칫 자기 아집에 빠지기도 쉬운 나이기도 하지."

"그건 무슨 말씀이신지……. 동학도들이 역적이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도진이라는 형님은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어. 도진 형님의 물음에 제자들도 술렁거렸어. 하지만 어르신은 조금도 흔들림 없이 말씀하셨지.

 


선비 정신을 찾아서 - 강진향교
강진 향교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윤탁(1472~1534)이 대성전에 은행나무를 심도록 했다는 기록과 은행나무의 수령을 짐작하여 조선 초기인 1400년대로 추정하고 있다. 향교는 성현들에 대한 제사와 함께 지방 유생들에 대한 교육, 그리고 지역민들의 교화를 담당하는 기관이었다. 지금이야 전문적인 교육의 기능은 사라졌지만 예전엔 유생들의 글 읽는 소리로 가득 찼던 곳이야.

구한말 강진 향교에서 유생들을 가르치는 교유로 지내시며 고고한 학처럼 살다 간 선비가 한 분 계셨어. 바로 송하 오한규(松下 吳漢奎, 1838~1908) 선생이다. 오한규 선생은 1838년 지금의 강진군 군동면 풍동 마을에서 태어났어. 그의 할아버님인 오윤신은 학문과 의로움이 세상에 널리 알려져 남쪽 지방의 이름 높은 선비라는 뜻으로 남주고사(南州高士)라 불렸어. 또 아버님인 오희만도 효행이 뛰어났으니 그런 가풍 속에서 나고 자란 선생 또한 효심이 뛰어나고 의로움이 깊어서 호걸지사(지혜와 용기가 뛰어나고 기개와 풍모가 있는 의로운 사람)로 불렸단다.

송하 선생은 지역민들의 존경을 받아서 호에 어른 장(長)을 붙여 송하장(松下長)이라고도 불렸다. 향교 교유와 남강 서원 도유사로 지내면서 지역민들의 교육을 담당한 어른이기도 해서 그랬겠지만, 동학혁명과 외세의 침입 등으로 나라가 어지러운 시기에 결코 몸을 사리지 않고 지역민들과 유생들을 대표해서 선비로서 옳은 소리를 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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