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다(製茶), 발효차를 빚다
제다(製茶), 발효차를 빚다
  • 강진신문
  • 승인 2023.06.06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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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이현정 박사가 들려주는 우리차 이야기(6)

 

차는 연금술이다. 철(鐵)이라고 하는 광물질을 금으로 바꾸려는 화학적 시도가 연금술이라고 한다면, 찻잎이라는 식물질을 가지고 정신 수양의 음료를 빚으려는 화학적 시도가 제다(製茶: 차를 제조하는 과정)이다.

연금술에서 말하는 황금이 불멸(不滅.immortality)을 상징한다면, 차가 목표로 설정한 번뇌의 제거는 자유(freedom)를 상징한다. 불멸과 자유는 인간의 궁극적 목표이자 영원한 이데아이다. 연금술에서 생각했던 핵심 과정이 수은과 납이었다고 한다면 제다에서는 발효와 비발효가 여기에 해당한다. 제다 공정의 전부는 발효(醱酵)와 비발효(非醱酵)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차는 제다 방법에 따라 크게 발효차와 비발효차로 구분된다. 찻잎에 열처리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른 분류다. 열처리는 다른 말로 살청(殺靑)이라고 한다.

찻잎에 뜨거운 열을 가하여 찻잎 안에 있는 폴리페놀 옥시데이즈(Polyphenol oxidase)라는 효소를 불활성화시키는 공정이다. 이 효소는 공기 중 산소가 더해지면 산화중합반응을 일으켜 갈변현상을 일으킨다. 차에서는 이 현상을 발효라고 한다. 따라서 열처리하여 불활성화시키면 비발효차가 되고, 열처리하지 않고 활성화시키면 발효차가 되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차의 6가지 종류, 즉 육대다류(六大茶類) 중 녹차만 비발효차이고, 나머지 백차, 청차, 홍차, 황차, 흑차는 발효차이다. 그리고 발효차는 효소 활성의 방법과 시간 등에 따라 백차, 청차, 홍차 계열과 황차, 흑차 계열로 다시 세분화된다.

 

발효차는 찻잎 내의 효소(Polyphenol oxidase)가 작용하여 만들어지는 효소발효차(백차, 청차, 홍차)와 효소를 불활성화한 뒤 주변 미생물에 의해 발효되는 후발효차(황차, 흑차)로 나뉜다.

찻잎은 따는 순간부터 위조(萎凋, 시들이기)가 시작된다. 찻잎 안의 수분함량이 감소하면서 각각의 세포방에 있던 요소들이 만나게 된다. 카테킨과 폴리페놀 옥시데이즈도 각각의 방에 자리하고 있다가 수분이 증발하여 서로 닿게 되어 발효가 시작된다.

이때 외부로부터 물리적 힘이 더해지지 않고 그대로 건조된 차가 백차(白茶, white tea)이다. 아주 약하게 발효가 되어 약발효차라고 한다. 백차는 제다공정이 가장 간단하다. 채엽 후 시들이기, 그리고 건조가 전부이다. 공정은 간단하나 맛 내기는 어려운 차이다. 김치 중 가장 간단하나 맛 내기가 쉽지 않은 것이 백김치인 것처럼 백차도 그렇다.

홍차(紅茶, black tea)는 강발효차 혹은 완전발효차이다. 찻잎이 시들면서 카테킨과 폴리페놀 옥시데이즈가 서로 닿게 되어 발효가 시작될 때 외부의 인위적 힘으로 찻잎을 힘껏 비벼준다.

찻잎을 비벼주는 것을 유념(揉捻)이라고 한다. 사람의 손이나 기계의 힘을 빌려서 유념을 강하게 하면, 찻잎 안의 카테킨과 폴리페놀 옥시데이즈가 완전히 뒤섞이면서 발효가 활발하게 일어나게 된다.

홍차의 제다공정을 정리하면 채엽-위조(시들이기)-유념-발효-건조이다. 위조의 정도, 유념의 강도, 발효 온도와 시간 등이 홍차의 맛을 결정한다. 카테킨과 폴리페놀 옥시데이즈가 가볍게 손을 잡은 차가 백차라면, 홍차는 이 둘이 뜨거운 사랑을 나누어 만들어진 차이다.

 

청차(靑茶, blue tea)는 발효 스펙트럼이 매우 넓은 차이다. 20퍼센트 정도로 약하게 발효된 차부터 70퍼센트 정도로 강하게 발효된 차도 있다. 청차의 가장 큰 특징은 향기이다. 제다공정에서 찻잎 안의 향기를 끌어내는 것이 관건이다.

향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청차는 주청(做靑)이라는 공정을 반드시 거친다. 주청은 교반(攪半)과 정치(靜置)로 구성되는데, 찻잎을 흔들어주는 것이 교반이고, 가만히 두는 것이 정치이다.

이 과정의 반복에서 찻잎 안의 다양한 향기가 발현된다. 향기는 식물의 방어기제이다. 찻잎은 차나무에서 몸이 떨어져 나오는 순간 위기를 느낀다. 차나무에 붙어 있는 찻잎보다는 채엽하여 모은 찻잎에서 싱그러운 향기를 더 느끼는 것은 찻잎들이 방어기제인 향기를 내보내기 때문이다.

채엽한 찻잎들을 햇볕에 두면 찻잎들은 심각한 위기에 처했음을 알고 향기를 마구 내뿜는다. 적당한 시간에 그늘로 옮긴다. 그늘에서 교반과 정치를 반복한다. 원하는 향기를 내뿜을 때 찻잎에 열처리한다. 향기도 효소의 작용이니 열처리하여 효소 활성을 정지시킨다. 이처럼 열처리한 후 유념하여 건조한 차가 청차이다.

황차(黃茶, yellow tea)와 흑차(黑茶, dark tea)는 일단 찻잎에 열처리하는 과정을 거친다. 효소작용을 정지시키는 것이다. 솥에 덖어낸 찻잎은 면포(綿布)에 싸서 일정 시간 따뜻한 곳에 둔다.

이 과정을 민황(悶黃)이라고 한다. 민황을 거친 차를 유념하여 건조한 차가 황차이고, 솥에 덖어낸 차를 일쇄건조(日曬乾燥)한 뒤 주변의 미생물들에 의해 발효가 일어나도록 한 차가 흑차이다.

한국인들이 언제부턴가 열광하고 있는 보이차가 흑차류에 속한다. 보이차는 운남성 보이현에서 만들어진 차다. 찻잎을 덖어서 햇볕에서 말린 뒤 주변 미생물들이 붙어 후발효를 일으킨 차다.

한국에는 후발효가 없는가? 한국에도 주변 미생물들이 들러붙어 찻잎을 발효시킨 차가 있었다. 장흥군에서 선점하여 지역 대표차로 만들어 홍보한 청태전이 바로 우리나라 전통 후발효차였다.

찻잎을 따서 찐 뒤 절구에 찧어 성형하였다. 잘 말린 차를 지푸라기를 꼬아 만든 새끼줄에 끼워 처마 밑에 걸어두었다. 새끼줄과 처마 밑. 이것이 방점이다. 지푸라기에서 바실라스와 같은 유익한 미생물이 나와서 차를 발효시킨 것이다.

다만 현재 장흥은 새끼줄과 처마 밑을 놓치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차는 조선 후기 우리 선조들이 마셨던 차와는 맛이 다를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차의 아버지라고 불리우는 이한영은 백운옥판차를 포장할 때 찻잎에 물을 뿌려 꾹꾹 눌러주었다. 습기를 머금고 눌러진 차는 오늘날 보이차를 긴압하는 방법의 수제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한지와 대나무로 포장된 백운옥판차는 자연스럽게 습기가 말랐고, 이 차를 빨리 마시면 녹차의 풍미를 느꼈을 것이고, 오랜 시간 보관했다면 주변 미생물들에 의해 후발효가 되었을 것이다.

실제로 어린 시절 백운옥판차를 마셔본 경험을 말해주는 많은 이들이 탕색이 붉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1920년대 백운옥판차는 상당히 고가의 차였다. 일반 서민들이 마시기 어려운 고급차였다. 고가의 차였기에 한철에 털어마시시 않고 아껴마셨다면, 후발효의 가능성이 있지 않았을까. 혹자는 우리나라 차로는 보이차가 안된다고 한다.

당연한 말이다. 보이차는 운남성 보이현의 차니까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 소엽종의 찻잎으로 만들어진 후발효차는 분명 존재하였다는 것이다.

찻잎은 제다인의 손에 의해 차로 거듭난다. 차나무에서 떨어져 나온 찻잎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자기라는 에고(ego)를 한번 죽이고 다시 거듭난 차는 인간의 오장육부에 들어가서 인간을 거듭나게 만든다. 연금술이 광물적 에너지를 인간의 몸에 적용시켜 보려는 우주적 상상력이라면, 제다는 식물적 에너지를 인간의 몸에 적용시켜 보려는 우주적 상상력인 셈이다.

다시 차의 계절이 돌아왔다. 차 한 잔에 우주의 본원적 에너지를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차를 가까이에 두고 차의 색, 향, 미에서 하루쯤 우주의 중심에 서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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