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 백운동 원림의 봄
[다산로] 백운동 원림의 봄
  • 유헌 _ 시인·한국문인협회 이사
  • 승인 2023.05.15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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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헌 _ 시인·한국문인협회 이사

백운동에 봄이 깊어간다. 백운동원림의 봄이 날마다 깊어간다. 계곡도 물이 들고 물소리도 봄물이 들었다. 쑥물 든 하늘만큼이나 백운동의 봄빛이 청푸르다. 그 비밀의 정원, 백운동원림 의 계절 속으로 잠시 들어가 본다.

월출산 자락 백운동원림은 ‘백운동 정원’ ‘백운동 별서정원’ 등으로 불리다가 지난 2019년부터 ‘백운동원림’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었다. 문화재청이 강진 백운동원림의 역사, 경관, 학술적 가치를 인정하면서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제115호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백운동원림은 조선 중기 처사 이담로의 별서정원으로 문을 열었다. 살림집이 따로 있어 별서라는 이름이 붙었고, 본가는 백운동원림에서 10여 킬로미터 남쪽에 있는 금당리 ‘백연당’으로 알려져 있다. 이담로는 만년에 손자 이언길과 백운동으로 들어와 20여 년간 은거하며 별서를 가꿨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별서 입구 바위에, 월출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안개가 돼 구름으로 올라가는 마을 ‘백운동’(白雲洞) 글귀가 어제와 오늘을 연결하고 있다. 

그런 별서정원이 어떻게 ‘원림’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을까. 이 부분은 백운동원림의 특징이자 가치이기도 하다. 파헤치고 쌓고 부수기보다는 자연을 최대한 이용해 정원을 꾸몄기에 원림이 된 것이다. 원림(園林)이란 “자연에 약간의 인공을 가하여 그 안에 정자를 짓고 나무나 꽃을 심어 정원을 꾸미기도 한다”라고 사전에서 설명하고 있듯이 말이다.

자연 그대로를 살렸다는 것은 주변이 그만큼 빼어난 경관을 갖고 있다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호남 3대정원으로 불리는 담양 소쇄원, 완도 부용동과 비교해 봐도 그렇다. 조선의 정원 양식을 그대로 살렸을 뿐만 아니라 월출산이라는 걸작이 병풍처럼 받쳐주고 10만평 녹차밭이 주위를 감싸고 있어 가히 천혜의 입지라 할만하다. 다산과 초의, 이시헌 등이 차를 만들고 즐겨온 차문화산실의 맥은 이한영의 백운옥판차와 고손녀 이현정 선생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백운동원림에 봄이 한창이다. 봄을 노래하는 새소리가 왁자지껄 요란하다. 

산다경 터줏대감 동박새가 소집한 옥판봉 저 너머 갖갖의 산새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속속들이 도착해 옛 선비 두리두리 풍류 읊었을 자리쯤에 전깃줄에 참새 앉듯 일렬로 좌정하자 동박새 포르르 돌계단에 올라서서 일장 연설 하는 품새 미루어 짐작건대, 강남 갔다 돌아온 제비의 환영회 겸, 취미선방 처마 밑 옛집의 입주식 겸, 유상곡수 푸른 물로 부리도 닦을 겸, 운당원 대바람 소리로 귀도 씻을 겸, 여차여차 주절주절 머뭇머뭇 갸웃갸웃, 칼바람 눈보라 회오리 다 잊고 비바람 먹구름 천둥소리 다 잊고 그냥저냥 한나절 백매오 가지에서 매향에 흠뻑 취해 잘 놀다 가랍니다 정선대 날아올라 신선이 되었다가 모란체에 내려앉아 모란꽃 되었다가 조롱이는 삐삐삐삐 팔색조는 호잇호이잇 긴꼬리딱새 호이이호이이 제비는 지지배배 삼짇날 제비 돌아온 날 곡수연(曲水宴) 벌입니다 
-유헌, 「백운동원림의 봄」 전문

백운 12경 중 2경 산다경(동백나무숲) 동박새가 옥판봉(1경) 너머 산새들을 초대해 유상곡수(5경)에서 곡수연을 벌이는 정경을 사설시조로 풀어봤다. 백매오(3경), 모란체(8경), 취미선방(9경), 정선대(11경), 운당원(12경) 등을 오가며 새들이 봄을 노래하고 있다.

다산은 1812년 가을, 제자들과 월출산 등반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백운동에 들러 하룻밤을 묵는다. 다산초당으로 돌아와서도 한동안 백운동을 잊지 못해 동행했던 초의에게 ‘백운동도’를 그리게 하고, 초의와 제자 윤동 등과는 직접 ‘백운12승사’의 시를 지어 ‘백운첩’이라는 시첩을 엮은 후 백운동 4대 동주 이덕휘에게 선물한다.

백운동의 풍경을 시로 쓰고 그림으로 그린 백운첩에는 ‘다산초당도’까지 함께 실려 있어 오늘날 백운동원림과 다산초당 복원의 근거가 됐다. 200여 년 동안 백운동을 지키고 가꿔온 후손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두 세기에 걸친 땀과 정신을 이제 12대 동주 이승현 선생이 잇고 있다. 그 백운동에 봄이 깊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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