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
[서평]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
  • 강진신문
  • 승인 2023.02.13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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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군도서관 우리들서평단 _ 김순임

휴머노이드(기계인간). 뼈대는 철골이지만, 이를 감싼 피부와 혈관은 인간과 똑같이 닮았다. 칼로 베이면 피가 나고, 인간처럼 밥을 먹으며 배설도 한다. 그리고 학습된 것이지만 슬퍼하거나 기뻐하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 
 
"난 내가 인간이 아닐 거라고는 한순간도 생각해본 적 없어."(P83)
 
자상한 아버지, 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 더없이 쾌적한 환경에서 살던 아이에게 갑자기 찾아온 진실의 순간 피할 수 없는 질문이 던져진다.
 
"가장 인간다운 휴머노이드. 인간의 감정과 윤리를 그대로 가지고 인간의 문화적 유산을 계승해나갈 휴머노이드. 혹시 그게 바로 나 아니었을까?"(P94)
 
『작별인사』는 스스로 인간인 줄만 알았던 '철이'가 사실은 기계 인간임을 깨닫는 여정과 정체성에 대한 고민하는 모습들로 이루어져 있다. 무등록 휴머노이드인 '철이'가 갇히게 된 '연옥', 그곳에서 '철이'는 로봇인 주제에 인간처럼 밥을 먹고 배설하는 기능을 가졌다며, 기계들에게 조롱과 모욕을 당하게 된다. 그는 신변의 위협으로 안전을 도모하고자 그들을 흉내내는 과정에서 '인간다움'의 가치를 고민하게 된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팔, 다리, 뇌의 일부 혹은 전체, 심장이나 폐를 인공 기기로 교체한 사람을 여전히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비록 내 몸속에 붉은 피가 흐르고, 두개골 안에 뇌수가 들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대로 인간일 수 있는 것일까?"(p69)
 

작별인사 / 김영하 지음

 

'생존'을 이유로 몸과 뇌를 기계와 인공지능으로 바꾸는 인간도 늘면서 철이는 '기계들의 세상'을 따를지 고민한다. '철이'와 여정을 함께한 '선이'가 복제인간인 점도 흥미롭다. 인간의 생을 연장시키고, 질병으로 인한 인간의 장기 대체용으로 태어난다. 그는 "인간의 유전자에서 배양되었고, 인간의 설계대로 제작됐기 때문에,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에는 생에 대한 집착도 함께 프로그래밍되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끝이 오면 너도 나도 끝이라는 걸 분명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에 감명 받은 '철이'는 세상과 '작별'하는 방식으로 인간과 기계 사이의 방황을 끝내게 된다.
 
"끈질기게 붙어 있던 나의 의식이 드디어 나를 떠나간다."(P297)
 
작가 김영하는 『살인자의 기억법』이후 9년 만에 『작별인사』를 집필했다. 이 소설은 본래 2019년 전자책 플랫폼에 400매 가량을 연재한 작품을 두 배 분량으로 개작한 것이다. 작가는 2년 전 초고 제목은 '기계의 인간'이 될 뻔했지만 "지금은 '작별인사'보다 더 맞춤한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했다. 
 
작별인사는 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의 이분법을 허무는 신비로운 지적인 모험들이 가득하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과 함께 생긴 화두들이 작가의 이야기 속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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