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장수의 대명사, 구전되는 실존 인물인가
[특집] 장수의 대명사, 구전되는 실존 인물인가
  • 강진신문
  • 승인 2022.02.01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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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점권의 다시 보는 중국의 고전(7)

김점권 전 센터장은 도암출신으로 전남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포스코 및 포스코건설에서 25년간 근무하면서 포스코건설 북경사무소장을 거쳐 중국건설법인 초대 동사장을 지냈다. 이어 광주테크노피아 북경 센터장을 거쳐 교민 인터넷 뉴스 컬럼리스트로 활동했다.
중국에서 25년간 생활한 역사와 고전, 문학류를 좋아하는 김 전 센터장을 통해 중국고전에 대해 새롭게 접근해본다. 편집자주/


 

 


삼천갑자(三千甲子) 동방삭(東方朔)

어릴 적부터 장수(長壽)의 대명사로 전설처럼 구전되어온 '삼천 갑자 동방삭'은 어떤 사람이며, 역사상 실제 존재한 인물인가? 차분하게 알아 보자. 동방삭(東方朔)은 역사상 실존 인물이며, 한편으로는 뛰어난 유머와 말솜씨를 가진 문장의 대가로서 궁중의 관리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박학다식하며 천문지리, 주역, 음양 술수, 양생술에 탁월하여 신선의 경지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신화적인 인물이다.

동방삭의 생애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자. 동방삭(東方朔 BC 154~ BC 93년)은 전한(前漢) 시대의 인물로서, 본래의 성은 장(張), 자는 만천(曼?)이고, 산둥성 출신이다. 젊고 야심만만 한 한무제(漢武帝)가 갖 즉위하여 사방으로 인재를 구할 때 동방삭이 스스로를 추천하여 낭(朗)이 되었으며, 상시랑,태중태부 등의 벼슬을 거쳤다.

그는 성격이 유머스럽고 재치스러웠으며, 지혜롭고 익살스러워 늘 무제 앞에서 우스갯소리로 무제를 즐겁게 했다. 그러면서도"황제의 기분을 맞추면서 적절하게 바른 소리를 많이 했다"라고 <한서><동방삭전>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뛰어난 경륜과 지식에도 불구하고 동방삭은 한무제로부터 정치적인 중용은 받지 못했으며, 일종의 광대의 역할에 만족해야만 했다.

동방삭의 관리 생활 중 재미있는 일화가 많다. 한무제가 즉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무제는 술사(術士)들을 모아놓고 사복(射覆) 놀이 (어떤 물건을 미리 그릇으로 덮어 놓고 그것이 무엇인지 맞히는 게임)를 했다. 무제는 좌우의 사람들에게 도마뱀 한 마리를 덮어놓게 한 후에 여러 술사들에게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맞혀 보라고 했다. 그때 초대받지 않았던 동방삭이 불쑥 한무제에게 알아맞히겠다고 제안했다.

믿을 수 없는 무제가 기회를 주자, 동방삭은 "저 안의 물건은 용인가 하면 뿔이 없고, 뱀인가 하면 발이 있습니다. 그런데 벽을 잘 타고 올라가니 도마뱀도 아니면 석척 (도마뱀과에 속하는 파충류) 임에 틀림없습니다." 무제는 그가 알아맞히자 비단 열 필을 상으로 하사했다. 무제 주변에는 평소에 자신이 아주 박식하다고 생각하는 곽사인이라는 광대가 있었는데, 동방삭이 알아맞히고 상을 받자 질투가 나서 무제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동방삭은 요행으로 맞힌 것이라서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만약 동방삭이 다시 한 번 더 맞히면 제가 채찍으로 100대를 맞고, 만약 동방삭이 맞히지 못하면 그가 채찍으로 100대를 맞도록 내기를 걸고 싶습니다." 무제는 흥이 나서 즉시 나무에 기생하는 버섯의 일종을 따서 그릇으로 덮어 놓은 다음 내기를 시켰다.

먼저 동방삭에게 알아맞혀 보도록 했다. 동방삭이 우물쭈물 말하길, "저 안에 있는 것은 작은 물건입니다."라고 하자, 즉시 곽사인이 " 내 그럴 줄 알았다. 그따위 허튼소리는 집어치우게"라고 힐난하자, 동방삭은 이어서 "이 물건은 날 것이면 회가 되고 말리면 포가 되죠. 나무에 달려서 기생하는 것인데, 저 아래 있는 것은 작은 것이오." 동방삭이 알아맞히자 각 사인은 그만 얼굴색이 변해 버렸다.

동방삭은 한무제 때의 유명한 농신(弄臣) 이었으며, 기이한 행동으로 주변에서는 광인으로 불리기도 하였지만, 그만큼 유식하고 유능한 자는 중국 역사에도 흔치 않았다. 그는 평생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우울하게 지내기도 하였으나, 자신의 특유의 장점을 이용해서 일반 대신들이 감히 하지 못할 간언을 함으로써 몇 차례나 한무제를 비난했다. 아울러 여러 차례 불필요한 호화 토목공사를 저지했으며, 한무제가 덕정을 베풀도록 권유했다.

동방삭은 문장의 대가였다. 전한 시대를 대표하는 문장 형식인 사부(辭賦)의 전문가였던 그는 <답객난(答客難)>, <비유선생론(非有先生論)>과 같은 글을 써서 자신의 뜻을 밝히고 마음속의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 외에 <칠간 (七諫)>, <신이경(神移經)> 등이 있다.

<답객난>은 주객의 문답 형식으로 한, 한무제의 대일통(大一統)이라는 분위기 속에서 살면서 "잘나고 못나고의 기준이 없고 재능이 있다 하더라도 펼치지 못하니, 기용되면 호랑이요, 그렇지 못하면 쥐새끼"라 하여 인재에 대한 통치자의 무분별을 폭로함과 동시에 자신의 불평을 토로했다. 이 글은 표현이 시원하고 논의도 깊어 <문심조룡>이라는 전문적인 문예 평론서에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후일 그의 작품을 모방한 글이 많았다.

<비유 선생론>은 오나라에서 관리 노릇을 하는 비유 선생이라는 허구 인물의 입을 빌려 자신의 말을 전하는 형식이다. 즉 3년 동안 말도 하지 않고 있는 비유 선생에게 오왕이 그 까닭을 묻자 비유 선생은 마침내 그 기회를 이용하여, 역사상 수많은 논쟁과 그로 인해 수난을 당했던 고사를 들려 줌으로써 오왕에게 바른 소리를 허심탄회하게 받아들일 것을 충고하고 있다. 그 글은 쉬우면서 의미심장하여 감동적이라는 평이다.

장수의 대명사, '삼천갑자 (三千甲子) 동방삭'의 유래는 무엇인가? 중국 문헌 설화에서 동방삭은 서왕모의 선도(仙桃)를 훔친 인물로 소개되어 있다. 또한 <동방삭 설화>에서는 장수하면서 숨어 지내던 동방삭이 숯을 씻어 하얗게 만든다는 저승차사의 수법에 걸려들어 저승으로 끌려간다는 내용으로 <탄천(炭川) 유래 전설>이 되기도 했다.

자, 그럼 동방삭이 어떻게 장수하게 되었는지 탄천유래전설의 내용을 들어 보자.

젊은 시절 동방삭이 다른 사람 논에 구멍을 뚫어서 논에 물을 대다, 봉사인 논 주인에게 발각되어서 '수명도 짧은 놈이 나쁜 짓까지 하네'라는 책망을 듣자, 동방삭이 애걸복걸하며 논 주인에게 수명 연장 방법을 묻자, 모년 모월 모일 어느 곳에서 저승사자에게 밥, 돈, 신발 등을 대접하라고 일러준다. 대접을 받은 저승사자는 명부 담당자가 조는 사이 수명 '삼십'을 '삼천'으로 고친다. 동방삭이 3천 살까지 살게 되자 귀신같이 똑똑해져 숨어 지내기 때문에 잡히지 않는다. 저승사자들이 꾀를 내어 냇가에서 숯을 씻으면서 숯을 하얗게 만들려고 한다고 하자, 동방삭이 "내가 삼천 살을 살았지만 그런 얘기는 처음 듣는다."라고 하자, 저승사자가 동방삭임을 알고 잡아 간다는 설화다.

그럼 실제의 동방삭의 수명은 어떠한가? 공식적인 역사 기록은 기원전 154(혹은 161년) 년에 태어나서 기원전 93년에 사망 (61세) 하였다고 전해지는데, 동방삭의 일대기를 그린 중국 드라마 <동방삭>에서는 말년에 관직을 은퇴하면서, 산속으로 사라지며, 이후 모습이 묘연하다는 신비감으로 표현했다.

동방삭은 풍자와 해학으로 달관한 대은자(大隱者)였다. 속세를 떠나 한가롭게 유유자적하며 살아가는 사람을 은자(隱者)라고 하는데, 누군가 은자의 수준에 대해서 말하길 "대은(大隱)은 조정에 있고, 중은 (中隱)은 시장 바닥 속에 있고, 소은 (小隱)은 산속에 있다"라는 말이 있는데, 동방삭은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조정 속에서 다음과 같은 시를 읊으며 자유자적을 누린 대은자(大隱者)인 셈이다.

세속에 젖어
세상을 금마문 (金馬門) 안에 피한다네
궁전 안에서도 세상을 피해 몸을 온전히 숨길 수 있거늘
하필 깊은 산속 풀로 엮은 집이랴!

동방삭은 유머와 재치 그리고 장수의 대명사로 오랜 세월 동안 동양인들에게 사랑을 받아 온 인물이다. 그의 이름 앞에 수식어로 붙은 '삼천 갑자 동방삭' 은 실제로 그가 오래 살았는지 여부에 관계없이 장수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었다. 이는 수명에 대한 서민들의 기대, 즉 '수명은 정해져 있지만, 바꿀 수도 있다'라는 운명관을 나타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동방삭, 그의 이름은 중국어도 모르고 중국 역사도 몰랐던 어린 시절부터 들어왔던 정답고 신비한 이름이었으며, 실제 역사 내용을 통해서 알아본 결과 역시 아주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상대의 실수만을 기다리고 말속에 비수를 품고 서로를 악인처럼 대하는 살벌한 현재의 정치세계 속에서 동방삭 같은 해학적이면서도 재치가 있고, 복잡한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는 그의 풍모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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