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과 강진의 차문화 - 정 민(한양대 국문과 교수)


제다와 음다의 방법은 한 가지 정답만 있을 수 없고 있을 리 없다. 나라마다 다르고, 시대마다 달랐으며 사람마다 같지 않았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는 선택의 문제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일본의 차문화가 말차 위주로 발전한 것은 그네들 풍토와 입맛에 맞아 맛있게 여긴 때문이지 옳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가 여러 번 증포의 과정을 거친 떡차를 만들어 마셨던 것은 채식 위주의 식단이 차의 독성을 못 견뎠고 보관상의 어려움이 뒤따랐던 탓일뿐 차에 대해 무지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다산과 초의만 해도 제다와 탕법의 실험을 다양하게 했고 계속 조금씩 바꿔 나갔던 것으로 보인다. 만고불변의 오리지널이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고정된 정답은 없다. 여기에 시대 환경과 여건 차이까지 더해지면 살펴야 할 논의는 더욱 복잡해진다. 내 방법만 옳고 남은 다 틀렸다는 식의 독선이 발전적인 논의를 방해한다. 나만 정통이고 다른 것은 가짜라고 우격다짐만 하니 발전이 없고 다툼만 되풀이된다.
 
다산차와 초의차가 떡차였으니 오늘날 우리도 떡차를 마셔야 한다고 말할 생각이 없다. 다산의 그때와 지금의 우리는 식습관이 전혀 다르고, 차의 보관과 포장면에서도 환경이 판이하다. 그때 그랬으니 지금도 그래야 한다고 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당시에 어땠는지를 제대로 아는 것은 중요하다. 왜곡하지 않아야 한다. 차계에는 자신의 제다법이 초의차의 적통을 이었다느니, 이렇게 마시는 것이 가장 올바른 방법이라는 식의 주장이 난무한다. 단체를 중심으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온갖 찻자리 의식이 하루가 다르게 생겨나고 소멸된다. 내용은 거기서 거긴데 이름은 날로 현란해진다. 차 정신을 잊은 듯한 사치스런 찻자리와 해괴한 의식은 보기에도 민망하다. 차를 가까이 해 삶의 수양이 쌓여가고 인격이 높아지지 않고 독선과 오만과 아집만 늘고 전투력만 향상되어 간다. 차를 마신 보람치고 참으로 기이하다.
 
강진차는 다산에 의해 시작되어 혜장에 의해 뒷받침 되었으며, 이후 그 문하와 다산 문하에 의해 지속성을 확보했다. 여기에 초의차가 등장하여 차 역사를 새로 썼다. 이후 소조하다가 이한영에 이르러 상업화의 선편을 잡았다. 당시 청태전은 생활 속에 녹아들어, 차문화가 일상 속에 살아 있었다. 권공헌, 황상, 윤치영, 이희풍 등의 증언은 이 시기 강진의 차문화가 지속성의 힘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정작 우리가 시큰둥하던 떡차에 일인들이 오히려 열광했던 것은 뜻밖의 일로 비춰진다. 바라본 지점이 달랐던 것이다.
 
옛날을 기억함은 미래를 열기 위해서다. 강진차의 미래 설계를 어찌해야 할까? 특징이 있고 중심이 있어야 한다. 인프라를 살려야 하고 상징성을 확장해야 한다. 차별화의 전략은 어디서 찾나? 뭔가 특색 있는 강진 차문화의 그림을 만들려면 초점이 있어야 한다. 다산 떡차에서 청태전으로 이어지는 맥락을 붙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정작 장흥에서 오히려 청태전을 먼저 치고 나왔다. 강진차가 다산의 만불차에서 시작되었으니 백련사가 든든하게 중심을 잡아주어야 한다. 강진 귤동과 백운동, 그리고 이한영 생가가 이를 떠받치는 각각의 축이 되면 그림이 살아난다. 강진 다원과 백운동, 다산초당을 잇는 차문화 벨트를 가동하고, 여기에 약사난야, 무위사, 월남사, 고성사, 백련사, 용혈암을 잇는 불교 문화 벨트가 함께 가동되는 위에 청자가 얹혀지면 이 보다 더 근사한 모양새가 없다. 다른 지역에는 하나도 없는데, 강진에는 이 모든 것이 다 있다.
 
차는 기호식품인데 문화가 함께 따라온다. 그래서 이야기가 있다. 단순히 음료 그 이상이다.  나만 옳고 남은 그르고, 이렇게 해야 하고 저렇게 하면 안 되는 법이란 없다. 법은 바뀌고 변한다. 변해야 그게 법이다. 불통즉통(不通卽痛)이요, 통즉불통(通卽不痛)이라 했다. 안 변하고 안 통하면 굳어서 마비가 온다. 지금 당장은 괜찮아도 내일은 안 괜찮다. 오늘 나빠도 지금 준비해서 바꾸면 내일은 괜찮아진다. 그런 준비의 마음이 필요할 때다.


   
 
다신계(茶信契)가 강진지역 茶史에 미친 영향 - 유동훈(목포대 국제차문화산업연구소 연구원)

다신계(茶信契)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강진에서 18년간의 유배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제자들과 맺은 계회(契會)로 우리나라 최초의 차(茶)로 맺은 계이다. 다산과 제자들은 1818년 8월 그믐날 다신계의 취지와 참가자 명단, 그리고 약조 등을 담은『다신계절목(茶信契節目)』을 작성했다. 『다신계절목』에서는 다산의 초당제자와 읍중제자 그리고 방외의 인연을 나눈 승려들과 맺은 전등계(傳燈契)에 대해서 적고 있는데, 이 가운데 전등계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명확하게 실체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신계절목』에서는 제자들이 지켜야할 규약(規約)도 함께 적고 있는데, 매년 제자들이 잊지 말고 다산에서 모임을 갖도록 하였으며, 차와 면포(綿布) 그리고 비자(榧子)를 다산에게 해마다 보내도록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제자들은 다신계의 약조에 따라서 다산에게 약속한 물품들을 보냈으며, 특히 다산에게 차를 보내는 약조는 1930년대까지 다산뿐만 아니라 그 후손들에게까지 지켜지고 있었다. 이처럼 강진에서 다신계의 약속이 100여 년간 지속되고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 차문화사에 있어서 달리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사례일 것이다.
 
다산은 1808년 봄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제자들과 함께 수백 근의 차를 직접 생산하였는데, 제자들의 노동력과 다산초당 근처에 찻잎을 대량으로 조달할 수 있는 다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다산의 제다법은 증청법이었으며, 여러 번 찌고 말리는 구증구포 또는 삼증삼쇄의 방법으로 차를 만들었으며, 제자들 또한 이러한 다산의 제다법에 따라서 차를 만들었다. 제자들은 다산이 해배된 이후 다신계의 약조에 따라서 다산에게 차를 만들어 보냈으며, 후손들에게까지 지속되었다. 강진에서 다산에게 차를 만들어 보내는 전통은 1930년대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다산과 아암 혜장의 제자들인 만덕사 승려들과 결성한 것으로 여겨지는 전등계에서도 지속적으로 다산에게 차를 만들어 보냈다. 만덕사에서는 다산의 가르침으로 차를 만들게 되면서 차의 생산량도 많아졌고 경향 간에 널리 알려지게 되어 사방에서 차를 구하는 요구가 많아지게 되면서 차를 경제적인 가치를 지닌 물품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처럼 강진에서는 다신계의 약속에 따라서 차를 만들던 오랜 전통으로 인해서 일찍부터 차를 경제적인 가치를 지닌 물품으로 인식하고 상업적으로 이용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윤치영의「용단차기」, 이한영의 금릉월산차와 백운옥판차 사례를 통해서 확인된다.


   
 
<다신계>의 6차 산업화 전략 연구 - 장효은(목포대 국제차문화산업연구소 연구원)

강진차를 발전시키기 위한 6차산업화 전략에는 먼저 <다신계>를 통해 다산이 만들던 차를 이어왔다는 정체성을 담을 수 있는 비전과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두 번째로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최우선 목표로 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차산업 종사자와 지역주민 소득증대 등 지역 경제 활성화를 달성할 수 있는 새로운 성장 전략 모색이 요구된다. 즉 지역 내 차 역사·문화 자원과 산업간 융복합을 통해 지출을 최소화하면서도 최대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전략이 제시되어야 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다신계>와 다산의 고유한 스토리를 핵심가치로 하는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다신계>와 다산차의 잠재력을 재발견하고 이를 스토리텔링해 강진차 이미지를 새롭게 구축해야 하며 그 전통성과 고유성을 바탕으로 차산업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글로벌 트렌드를 선도하는 창의적인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국내 및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트렌드를 창조해야 한다. 개방적인 시스템과 네트워크를 구축하여 가치지향적인 차산업 발전 비전을 실현함으로써 시장과 고객의 변화 트렌드를 주도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차산업 종사자들이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창출할 수 있도록 자극하는 전략이 제시되어야 한다.
 
강진차는 다산과 <다신계>를 활용한 차 브랜드를 강화하고 포장 디자인을 개발해야 한다. 다산은 차 브랜드 강화에 매우 좋은 콘텐츠이며 <다신계>를 활용해 차에 대한 스토리텔링을 가미하고 이에 맞는 포장 디자인을 개발한다면 소비자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브랜드는 제품의 가치와 생존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나 강진차는 브랜드 인지도가 낮아 강진 차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다산과 <다신계>를 활용한 강력한 브랜드 개발 및 구축이 필요하며 이에 맞는 스토리텔링을 구성해야 한다. 이를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10년 이후의 성과를 기대하면서 관련 조직 간 협업을 통해 단일 목표를 가지고 효율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여기에 강진차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사용해야 하며 단일차, 선물용 세트, 티백, 시즌티 용 등으로 다양한 용도의 케이스가 세분화해야 한다. 또한 안테나 숍 설립 및 확대를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고 홍보·판매 선도함과 더불어 홍보 및 판매를 동시에 추진할 수 있는 크라우드 펀딩의 활용이 적극 요청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