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티벳속으로(하늘호수)
[1]티벳속으로(하늘호수)
  • 특집부 기자
  • 승인 2003.08.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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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관<도암면 출신. 여행가. 자유기고가>

실크로드를 따라가다 티벳 고원을 남으로 가로질러 네팔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로 가겠다는 일념으로 인천에서 중국 청도행 배에 몸을 실은 지 십여 일만에, 난 티벳과 타클라마칸 사막 사이에 뎅그러이 놓여있는 티벳 출발지인 자그만 도시 거얼무에 도착하였다.

사막도 아니요 초원도 아닌 그저 삭막해 보이기만한 그 도시는 여기저기 이슬람 문화의 색채가 가미되어 아름다운 것인지 고독한 것인 진 모르나, 여행에 그러한 낯설음 마저 없다면 그것은 또 얼마나 허무하겠는가 생각하며, 가이드북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걸어가자니 초대소(숙소)가 하나 눈에 들어왔다.

그 숙소의 가장 싼 방인, 다인방(도미토리)에 들어가니 열 개도 넘게 놓여 있는 침대엔 일본인 배낭족과 서양인 배낭족 몇몇이 군데군데 자리를 잡아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한 채, 들어오는 나를 쳐다보았다. 티벳에 하루속히 들어가고자 하는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사오천미터가 넘는 티벳 고원을 가르기 위해 그 곳에서 고산병 적응도 해야하고, 무엇보다도 티벳으로 들어가는 정부 버스는 외국인에게 현지인 보다 무려 여덟 배가 넘는 엄청난 요금을 적용한다기에 다른 방도를 궁리하며 그 곳에서 이틀을 넘게 보내야했다. 삼일 째 되던 날 밤, 저녁을 먹고 숙소를 향하는 우리에게 수상쩍어 보이는 현지인이 따라붙더니 불법 버스를 운운하였다.

우리는 값을 깎고 또 깎아 정부버스의 삼분지 일 가격에 흥정을 하고, 숙소로 들어가 짐을 챙겨 약속 장소로 가보니, 버스는 오간 데 없고 난데없는 냉동차 한 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곳에서 티벳의 수도 라사까지는 삼십오시간이 넘는 기나긴 여정이니, 그 차로 가다가는 티벳 구경도 하기 전에 딴 세상 구경부터 하게 생긴 터라, 다짜고짜 그에게 항의를 하였더니, 두어 시간만 그 차를 타고 가면 어느 지점에서 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거라 하였다.

불신 반, 믿음 반으로 올라탄 얼음 없는 냉동차는 우리 일행 열 명을 태우고 어디론가 달려갔다. 처음 우리 일행은 색다른 경험에 다들 재미있어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밀폐되다시피 한 공간 안에 있는 우리의 얼굴엔 땀이 비오듯 했고, 맨바닥에 앉은지라 엉덩이는 점점 쑤셔왔다. 그렇게 세시간을 넘게 달리던 냉동차는 어디선가 멈춰섰고, 잠시 후 뒷문이 열리였다. 차에서 내려보니 사방이 어두워 그곳이 어디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내 머리 위로 밤 하늘의 별이 쏟아지듯 했다.

잠시 후 도착한 버스는 우리를 태우고 티벳고원을 향하는지 조금씩 조금씩 기어오르니, 말로만 듣던 고산병 증세가 시작되는지 머리가 지끈거리고 배가 아프더니 이내 호흡하기가 점점 어려워져 심장 고동소리가 들려왔다. 고산병 증세로 밤새 자다 깨다하며 잠을 설치다 어느 순간 눈을 떠보니 아뿔싸! 여기가 도대체 어디인가? 광활하게 펼쳐진 초원 위로 약크(티벳 몽고에 있는 털이 많은소)와 양들이 한가히 풀을 뜯고, 하얗게 눈 쌓인 먼 산 너머 푸르디푸른 창공 위에 황금이라도 뿌리듯 태양이 떠있었다.

버스가 달리는 동안 오직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가뭄에 콩나듯 놓여있는 유목민들의 이동식 천막뿐이었다.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들, 전기도 전화도 없이 살아가는 그들이지만, 무슨 문명의 고통이 그들에게 있고, 삶의 고통이 또한 거기에 있겠는가! 그저 자연의 순리에 따라 유유히 떠돌 뿐 그러고 보면 우리 인류가 자유로웠던 유일한 시기는 저 유목민의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 자유로웠던 유목민의 시절을 우리 인류의 기억 속에서 지워버린 지 오래고, 그들의 삶을 한낱 미개한 삶처럼 치부해버리지나 않았나 싶다. 버스는 두어 시간마다 한번 꼴로 초원위에 멈춰섰다. 그 텅빈 초원에 화장실을 고사하고 가릴 나무 한그루 없어, 버스를 가운데 놓고 남자는 한편으로 가고, 여자는 다른 편으로 가서 서로 볼일을 보았다.

거얼무를 떠난 지 서른여섯시간만에 버스는 티벳 불교의 중심지 라사에 이르렀다. 라사 시내에 들어오는 버스에서 내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말로만 들어왔던 거대한 포탈라 궁이였다. 그 거대한 궁전은 나를 압도하기에 충분했고, 조국 잃은 티벳인의 설움이 감겨져 있는 지 비애감마저 감돌고 있었다.

삼일을 라사에 머물면서 포탈라 궁과 조캉 사원, 노블링카 사원을 천천히 구경하며 고산병 적응을 한 뒤, 나흘째 되는 날 라사에서 그리 멀지 않는 티벳 4대 성호의 하나인 하늘 호수(남초)를 향하여 떠났다.

이탈리아 친구, 이스라엘 친구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한 팀이 되어 지프를 한 대 빌려 하늘 호수를 향하여 고불고불한 비포장 길을 달리다보니, 길가에 티벳인 천막이 있어 그 곳에 잠시 들러보기로 하고 천막으로 걸어가니, 식구 여섯이서 웃으며 우리를 반기는데, 그들의 미소는 천진난만한 아이의 웃음이요, 의미도 모르는 채 웃는 바보들의 웃음이여서 그것은 이미 속세간의 웃음을 넘어버린, 아니 그 넘음조차 의미를 무색케 하는 그저 순수라고나 해야 할 것이었다. 그들이 끓여 준 버터 차를 마신 뒤, 아쉬운 마음에 작별을 하니, 우리가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들은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렇게 세 시간 여를 달리던 차가 한 구릉을 올라서자, 눈앞에 실로 거대한 호수가 펼쳐지는 데 , 해발 사천이 넘는 곳에 그런 호수가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아니 하였다. 숙소에 짐을 풀고 혼자 조용히 나와  호숫가를 걷다 어느 평평한 바위위에 걸터앉아 호수를 바라다  보았다. 호수의 양쪽 편은 설산들로 에워싸여 있어, 호수가 또 하나의 설산을 파란 물위로 드리웠고, 맞은편 끝없는 수평선 너머로 석양빛이 물드니 그곳이 어쩌면 천상처럼만 느껴졌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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