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향교이야기
[2]향교이야기
  • 특집부 기자
  • 승인 2003.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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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광식

□강론(講論)
강론은 문, 무, 잡과로 나뉘는데 문과는 시나 글을 짓는 제술, 경서강론 어떤사건 또는 시국에 대한 대책, 무과는 무도에 관한 기예인 무예와 병법에 관한 서적, 잡과는 법률, 산수, 서예, 의학, 부적과 주문, 지리, 의문사에 대한 논문, 율전후질, 등인데 조선조 때에는 통역과 음양이 추가되었다.

□직제
직제는 유림 중에서 도유사(都侑仕)를 선출하고 장의(掌議)와 색장(色掌)을 두며 별도로 서리와 사환도 두었다. 그러다가 1894년에는 3-4명의 수복을 두게 되고 양민층에서 교생을 뽑아 수업하면서 서제서 지내도록 하였다. 1908년에는 도유사 제도를 폐지하고 유림의 추천에 의거하여 군수가 직원을 발령하여 재산을 관장하도록 하고 각 면 유림이 선출한 장의는 일을 도맡아하게 하였으며 1947년에는 직원을 전교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

□약장
유도회의 약장(법령을 간략하게 줄임)을 보면 공자가 말한 사람이 지켜야 할 윤리와 준칙인 도덕을 근간으로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인 윤리정신을 학문과 견식 등을 넓혀서 심성을 닦게 하며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의 바른 도리를 천하의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 이것들을 실행케 함을 목적으로 하고, 향교발전에 관한 사항으로는 경서의 뜻을 연구하는 학문인 경학, 모범이 될 수 있는 경서인 경전의 교육, 문화와 학술, 그리고 정치, 경제의 연구발전에 관한 사업을 잘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모색한다 라고 되었다.

□은행나무
대성전 옆에 있는 두 구루의 은행나무는 공자가 강의 할 때에 올라서던 높게 만든 자리 즉 강단을 상징하는데 우리나라는 중종때에 윤탁(尹倬1472-1534)이 문묘에 은행나무를 심도록 권장한데서 유래한다.

3. 건물(建物)
건물은 맨 위에 대성전, 그 아래 좌우로 동, 서제, 정남에 명륜당이 있고 그 밖에는 부속건물이다. 그 기능별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대성전(大成奠): 제사를 모시는 곳
대성전에는 5성과 22위 즉 27위의 위패를 모셨는데 군현에 허락된 숫자이다. 위패의 순위는 정면으로 바라뵈는 벽인 주벽의 공자, 그 앞쪽인 배향의 안회, 중자, 지자, 맹자, 동종향의 설총,(주돈이 정이)안유, 김굉필, 조광조, 이황, 이이, 김장생, 김집, 송준길, 서종향은 최치원(정호, 주희), 정몽주, 정녀창, 이언적, 김인후, 성혼, 조헌, 송시열, 박세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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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의 유래는 당나라 현종이 공자를 문선왕이라 추시하고 청나라(1616-1911)때 대성지성선사(大成至聖先사)라 존호하여 지금은 「대성지성문성」이라 부르며 그 의미는 대성이란 학문을 크게 성취함이요, 지성이란 슬기와 덕행이 아울러 매우 뛰어남이다.
이곳에서는 매년 봄, 가을의 상정일과 매월초하루와 보름이면 분향과 제사를 올리는 즉 제사를 모시는 장소이다.

□명륜당(明倫黨): 공부하고 모이는 곳
명륜당은 제생들이 학문을 연구하나 경전을 강의하는 집인데 사회지도자를 양성하던 학교이다. 선발은 군내의 유망한 인재를 가려뽑아 동쪽과 서재에서 지내게 하며 유교의 경전을 중심으로 선비정신과 인격을 연마시켰다. 그 중에서 다시 유능한 인재를 뽑아 성균관으로 보내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구제하는 재목이 되게 하며, 군민이 마땅히 행하여야 할 도덕상의 의리인 도의정신과 사회의 정의를 뿌리를 박아 심도록 가르쳐서 착한사람이 되게하는 권원지였다.
또 시골의 선비들이 모여 유학의 진흥과 향약의 실천 방안 등을 강의하고 토론하여 여러 가지 사회문화의 정책을 수립하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동제와 서제: 학생들의 먹고 자던 곳
공부하던 학생들이 먹고 자거나 향교의 임원 그리고 생원시에 합격한 사람들이 나와서 거처하던 곳인데 두가지 기능을 함께 해 한때는 동제는 임원이라 생원시 합격자가 거처 하였는데 근자에는 「제관」들의 전일입제 처로 쓰이기도 하였다.

4. 맺는말
강진향교는 을묘왜변, 임란, 동학 등으로 소장 자료가 소실되어 옛 역사를 알 수가 없고 또 현세에 소중히 여겨지지 않아서인지 복원하려는 의지도 없었다.

장황히 이야기 한 것은 제안하고 싶은 것이 몇 가지가 있어서이다.
첫째, 교육의 연결성을 논의하여 발전시고 둘째 스승을 존경하는 의식은 이어가야 되며 셋째 공로자는 선양해야 한다는 점에서이다.
그럴러면은 첫째는 여름과 겨울에 기왕지사 교육을 시키고 있으니 옛 시험재현, 책거리의식, 우수자 천거로 대입진학자는 전교추천을 시도하고, 둘째는 스승에 해당된 사설과 제자에 해당된 학기를 연구하여 스승답고 제자다움이 무엇부터 시작되는가를  알게 하고 셋째는 강진고을이 열리고 처음으로 자치규약인 향안을 창안한 문우주와 위패를 지킨 임자신과 고시 장학회를 조직한 곽기수, 최응두, 조팽년, 등의 공적비를 세워 모두가 본받아 제도리를 다하자는 취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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