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봉서원과 이후백
서봉서원과 이후백
  • 강진신문 기자
  • 승인 2002.1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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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광식<강진문헌연구회장>
강진에는 서원, 사우 단묘를 합하여 40여곳이 있는데 그 중에서 서봉서원이 최초인 것 같다. 설립은 이후백(1520-1578) 이 세상을 떠난 12년뒤인 1590년(선조23)에 강진읍 월남리 월봉에 세워 그의 글을 읽고 제사를 지내면서 그를 기리기 위함이었다.

관련된 사실은 옴천면 황곡 출신인 조행년의 계음집과 성전면 대월에 살았던 곽기수가 1613년 3월21일경에 작성한 금릉 사마제기에 있다. 읽는이의 이해를 돕기위하여 우리나라의 원사유래, 청백리 이후백, 서봉서원 건립자료, 후손이 살던 안정동의 순서로 엮으니 꼼꼼이 읽어서 어진이를 가까이 하라는 옛말을 되찾는 일에 힘썼으면 한다.

청백리 이후백은 함양태생이며 자가 계진, 호가 청련, 문장공 숙함의 증손 국형의 아들, 연안 이씨이다. 그는 한성판윤을 지낸 외조부 홍구서의 낙남지인 초곡면 박산에 와서 살게 되어 안정동에서 글공부를 하였다. 16세때인 1536년(중종31년) 향시에 수석으로 합격 후 상경하여 이조판서(1574), 호조판서(1578)에 오르고 청백리가 되었다. 또 종계변무의 공으로 광국2등공신과 연양군에 추봉되고 시호는 문청이다. 그는 생전에 군동 출신 최극충(1542-1571)의 효성을 알려 정려를 세우게 해주었다.

서봉서원을 건립했던 이유는 지역의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서였다. 먼저 계음집의 내용을 보면 「이름없는 지역에 와서 공부할 때는 높은 뜻을 마음에 지녔고, 밤낮으로 금으로 만든 도장을 품에 지녀 도장끈을 늘어뜨리고 지내면서 높은 지위를 맡은 일을 익혀 갈 때는 청렴과 결백에 대하여 귀신들도 물어왔고 문장은 아름답고 운치가 있었으며, 훌륭한 태도를 갈고 닦아 이루어 내려고 애를 썼고, 음성과 얼굴모습은 자세히 살리고 이해하되 두렵거나 놀라서 움직이지 아니하였다」고 하였다.

금릉사마제기에는 「강진현이 설치되고부터 수백년이 지나 활쏘기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책을 읽기 좋아하는 선비가 드물어서 생원과 진사과의 향시나 회시에 합격한 사람들의 성명을 적은 기록부인 연방에 이름을 기록하였다가 임금께 보고할 인물이 거의 없다시피 하였고, 비록 있다하여도 많지 않아서 사마제를 설립하지 않은 것이 확실한 것 같다. 지난해(1555년)에 다행히도 이판서 후백, 청련선생이 재능과 학문으로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장차 과거 합격자가 한 사람도 없게 될 즈음에 벌떡 일어서니 아마도 하늘이 우리 고을의 불공정하고 어두워서 애매모호하던 선비들을 도와준 것이 아니었겠는가. 이러고부터 몇 명씩 후배들이 있어서 서로가 앞과 뒤를 돌아 볼수 있게 되었다. 이청련과 똑같게 보아줄 사람들은 최응두, 조팽년(1576 식년문과), 임자신이며 또한 곽기수(별시병과)도 그 중의 한사람이다」라고 적혀있다.

안정동은 성전면 안운마을의 옛 명칭인데 등과하여 영유에서 현령겸 영장으로 있을때 심하의 싸움에서 1618년에 순절하였다. 증손자인 이수인(1601-1661)은 자가 유안, 호가 성암이다.

박세채(1631-1695)가 지은 행장기에 의하면 「그가 타고난 기품은 식견이 높고 두뇌가 명석하매, 의지와 기개는 엄숙하고 결백하며, 총기가 좋고 명민하되 학식이 넓고 많으며 집안 어른들의 가르침을 잘 이어 받았고, 후진의 학자들을 칭찬하매 추천하였다」고 되었다.

그가 하였던 일들을 살펴 보면은 1624년 진사, 1632년 현릉참봉, 1633년 중광문과 병과 합격, 승문원정자, 사간언 정언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안정동」에 귀향했다. 1637년 병자호란 이후로는 주나라때에 제정한 의로운 법들을 받들기 위하여 벼슬살이를 단념하고 월출산의 암벽에다 ‘온세상의 뜻을 크게 밝히려고 학천에 숨어 살았다‘는 글을 새겨 놓았다

이후백은 학자이자 청렴결백한 정치인인데 계음집의 내용처럼 강진현은 임시로 거처하던 지역이고, 월출산은 바로 선생이 마음을 집중하여 학습에 힘쓰던 곳이다. 이렇게 시작된 벼슬길은 우리 지역민들에게 커다란 자긍심을 일깨워 주게 되어 감사의 뜻을 못잊어 지금까지 박산서원에서 제사를 모셔오고 있다.

그래서 백련사 사적비문의 내용처럼 「지역과 인물이 함께 세상에 빛나다」는 어진이의 말이 실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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