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태조가 경주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울 때 차무일(車無一)이 시중 벼슬에 오르고 왕으로부터 차씨 성을 받게 되어 연안차씨의 시조가 된다. 이후 무일의 33세손인 승색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12살에 왕위에 오른 신라 40대 애장왕을 보필하게 된다.

이때 왕의 숙부인 김언승이 반역으로 왕위를 빼앗아 헌덕왕에 오르게 된다. 승색은 충성심에 아들 공숙과 헌덕왕을 암살하려다 적발돼 황해도 구월산으로 피신하고 성을 류씨로 바꿔 생활하게 된다.

고려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할 때 뛰어난 공을 세운 류해에게 삼한통합벽상이등공신이라는 벼슬을 내리고 원래 차씨성을 고려해 차달(車達)이라는 호까지 내렸다.

해의 큰아들 효전은 군량미을 보조하는등 고려 개국을 도와 대광(정일품의 벼슬)에 올랐고 연안군에 임명됐다. 이에 효전은 연안을 본관으로 차씨를 다시 복성해 연안차씨의 중시조가 된다. 해의 둘째아들 효금은 류씨의 시조가 된다.

연안차씨의 후손으로는 고려 공민왕때 군부판서(중앙군부 최고벼슬)에 오른 포온이 있다. 고려가 원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나려할 때 국방과 함께 뛰어난 외교력으로 활약을 펼쳤던 인물이다.

이어 고려말 성리학의 대가인 원부를 들 수 있다. 간의대부(임금의 잘못을 고치도록 간언하는 벼슬)를 지냈던 원부는 조선개국에 참여하지 않았다는것과 간신들의 모략으로 억울한 죽음을 당하게 된다.

또한 차씨문중도 모두 죽음을 당하거나 유배를 떠나야하는 신세가 된다. 이후 태종은 잘못을 뉘우치고 원부에게 의정부좌찬성(종일품벼슬)을 내리고 문절이라는 시호로 내렸다. 이에 원부는 문절공파의 파조가 된다.

원부의 조카인 운혁은 효전의 21세손이다. 운혁은 6살 때 원부의 화로 아버지와 함게 함경도 회령으로 유배되어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회령부사 이시애가 난을 일으키자 병법이 뛰어났던 운혁은 왕의 부름을 받고 어모장군(정삼품벼슬)신분으로 전쟁에 참여했으나 포로로 붙잡혀 감옥에서 장렬하게 죽음을 맞게된다. 이후 운혁에게 강렬공 시호가 내려졌고 강렬공파의 파조가 된다.

명나라까지 글로써 이름을 떨쳤던 천로가 있다. 문과에 급제한 천로는 명나라에서 보내는 대부분의 외교문서를 담당했다. 천로는 한시에 뛰어나 한호의 글씨, 최립의 문장과 함께 송도삼절로 불리었다. 천로는 오산공파의 파조가 된다.

강진에서 처음 생활을 시작한 연안차씨는 두지(斗智)로 알려져 있다. 두지는 강진읍 목리에 자리를 잡고 그후 후손들이 번창해 나갔다. 강진읍 목리에는 문절공파의 후손들이 주로 생활하고 칠량면 일대에는 강열공파의 후손, 오산공파의 후손들이 각각 생활하고 있다.

칠량면 송산마을앞에는 경철, 덕현을 비롯한 10여명의 선조들이 모셔져 있다. 이곳에서 매년 음력 10월 15일 강진, 완도등에서 살고있는 후손들이 모여 제사를 지낸다.

군동면 금사리에는 연안정이 자리잡고 있다. 매년 10월 10일 제사를 지내는 연안정에는 강진의 거부로 통했던 차종채씨가 조상을 위해 만든 제각이다. 지난 2002년 5월에는 후손들이 차종채씨의 업적을 기르기 위해 동상을 만들어 비문을 새기게 됐다.

차종채씨는 30세의 나이에 해산물 사업을 시작해 도정공장, 방직공장, 소주공장등 20여개의 사업체를 거느리며 강진을 이끌었다. 후에 군동면 면장에 취임한 차종채씨는 매년 탐진강주변이 침수피해를 당하는 것을 걱정하고 제방호안공사를 실시했다.

또 차종채씨는 강진농고 설립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고 도서관, 강진의료원의 설치에 앞장섰다.

연안차씨 출신으로는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빅터차 국장, 광주 광산경찰서장을 지냈던 차근평씨, 광주에서 광우 라지에터를 경영하는 차준성씨, 서울에서 약국을 운영하는 차종복씨, 전남도의회 의장을 지냈던 차봉근씨, 읍사무소 총무계장을 지냈던 차봉수씨, 군청 환경녹지과 차주현 산림녹지담당등이 있다.

 

8년째 연안차씨 강진지회를 이끌고 있는 차만길(62)회장을 만나 문중에 대한 자세한 내력을 들었다. 차회장은 “최근 강진에 살고있는 연안최씨들을 조사해보니 170여가구가 살고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문절공파, 강열공파, 오산공파로 나눠 강진읍, 칠량면지역등에 주로 살고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차회장은 “과거 강진에서는 연안차씨가 자자일촌이라는 말이 들릴정도로 많은 종친들이 생활했다”며 “현재는 객지로 떠난 종친들이 많아 종친모임도 힘들정도로 크게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선조들에 대해 차회장은 “많은 선조중에 강진에서 수많은 공장을 세워 활동한 차종채씨를 빼놓을 없다”며 “주민들을 위해 목리 둑을 만들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등 많은일에 앞장선 것으로 알고있다”고 자랑했다.

문중에 대해 차회장은 “요즘은 제각도 마땅한 관리인을 구하지 못하는 상태”라며 “칠량, 군동등에 나눠진 문중답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각종 제사준비에 만전을 다할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차회장은 “여천시에서 추진중인 오천서원 건립에 종친들이 참여할수 있도록 돕겠다”며 “서원건립을 통해 분파를 떠나 연안차씨들이 하나로 묶일 수 있는 계기가 될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