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을 다녀와서 (하)
평양을 다녀와서 (하)
  • 강진신문 기자
  • 승인 2002.11.0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용복<영동농장 회장>
10월 1일, 출발의 날이 밝았다. 어느 여행에서도 느껴본 적 없는 긴장과 설렘을 안고 집합 장소인 서울 종로의 천도교 본부로 향했다. 다른 참가자들도 나와 비슷한 심정인 듯, 마주치는 얼굴들은 웃음 뒤에 긴장을 숨기고 있음이 역력했다.

공항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고 오후 2시, 북측이 제공한 고려민항기에 올랐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벗어나 비상을 시작하여 날기 시작한 항로는 북쪽, 아직 한번도 가본 적 없는 하늘이었다.

발 아래로 까마득히 서해의 물결이 보이면서 저기 어디쯤이 해상 분계선이고 저기 어디쯤이 삼팔선이겠거니 짐작하면서 감회에 젖은 것도 잠시, 비행기는 어느 새 평양 상공에 도달했다는 기내 안내 방송이 나왔다. 인천공항을 출발한 지 꼭 1시간만에 말로만 듣던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것이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미끄러지는 동안 창밖에는 여느 나라 여느 공항과 다를 바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공항에는 북측의 개천절 행사 공동집행위원장인 단군민족통일협의회 류미영 회장과 수십 명의 인사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고 텔레비전 취재 카메라도 눈에 띄었다. 간단한 환영 절차를 끝내고 승용차 2대와 대형버스 4대에 나누어 타고 경찰 인도차의 안내를 따라 숙소인 보통강호텔로 향했다.

보통강호텔은 한국의 통일교에서 운영하는 호텔이라는데 북한에서는 평양고려호텔 다음 가는 1급 숙박 시설이라고 한다. 방(808호)을 배정받고 짐을 푼 후 잠시 휴식한 다음 보통강호텔 로비층에 있는 대연회장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젊은 남녀 종업원들은 아름답고 친절했으며 서비스 매너도 매우 세련되어 있었다.

다음날인 10월 2일은 묘향산 관광이 계획되어 있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일찌감치 아침 식사를 마치고 7시에 승용차 두 대와 버스 네 대에 나누어 타고 역시 경찰선도차를 따라 관광길에 올랐다. 북측에서는 일일이 탈 버스를 지정해 주었는데, 필자가 배정된 2호차에는 우리 흥사단 소속의 4명과 민화협, 기자단, 단군학회, 농민문학회, 한민족운동단체연합 등 37명이 탔고 북측 안내원 6명이 동승했다.

이렇게 한 버스를 타게 된 43명은 오는 날까지 변함없이 같은 버스를 타고 움직였으며, 좌석까지 지정되어 있어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야 했다.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평양 시가지가 펼쳐졌다. 아침 출근 시간이라 많은 시민들이 일터를 향해 바삐 걸어가고 있었다. 출근 시간 걷는 틈에도 책을 읽는 평양시민의 자세는 우리가 배우고 싶은 모습이었다.

차가 평양 시내를 벗어나 30분쯤 달리니 눈앞에 농촌 풍경이 펼쳐졌다. 아마도 북한의 곡창 지대라는 청천강 유역의 어느 평야인가 보다. 비교적 넓은 들에는 가을이 무르익었고, 가을걷이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얼핏 보아 80%쯤 수확이 완료된 들에서 농부들이 마지막 일손을 놀리고 있었는데, 추수기계나 탈곡기 같은 농기계는 전혀 보이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엎드려서 낫으로 벼를 베고 있었다.

11시 30분 마침내 묘향산에 도착하여 평양고려호텔과 함께 북한의 특급 호텔인 향산호텔에서 점심 식사를 마치고 본격적인 묘향산 관광에 나섰다. 해발 1909m의 비로봉을 주봉으로 하고, 평안북도 향산군과 자강도 희천시, 평안남도 영원군에 걸친 묘향산에는 30여 개의 아름다운 폭포와 석회동굴, 인호대 백운대 강선대 불영대 보련대 단군대 금선대 설령대 등 이름난 바위들이 있어 경관을 더하고, 1,000여종의 동물과 200여종의 조류, 희귀 식물들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보고이기도 하다.

또 이곳에는 보현사를 비롯해서 상원암, 능인암, 화장암, 중비로암, 하비로암, 계조암, 수충사 등 크고 작은 사찰과 수십 개의 절터와 석탑이 남아 있다고 한다. 또 김일성과 김정일이 외국에서 선물받은 물건을 전시해 놓은 국제친선전람관도 있어 빼놓지 않는 관광 코스가 되고 있었다.

우리는 먼저 보현사에 올랐다. 1042년(고려 정종 8년)에 건립했고, 서산대사가 40여년간 살다가 85세에 적멸했다는 설명을 들으며 보현사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앞마당에 버티고 선 거대한 산뽕나무. 300년이 넘었다는 이 나무는 북한에서 가장 크고 오래 된 것이라 하며, 수백년 된 들메나무, 600년이나 살았다는 소나무도 인상적이었다. 6·25 때 많은 건물이 소실되어 새로 건립했다는 대웅전 외에도, 여러 동의 건물과 석탑이 남아 있어서 우리 선조들의 우수한 건축술을 보여 주고 있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