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기행 87> 성전면 명산리 당산마을
<마을기행 87> 성전면 명산리 당산마을
  • 김철 기자
  • 승인 2002.10.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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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치 고풍넘치고 인심좋기로 소문난 동네
온통 황금빛으로 출렁이는 들녘사이로 바삐 움직이는 농기계. 가을햇볕에 검게 그을린 농부들의 얼굴에는 굵은 땀방울이 알알이 맺혀있지만 그들의 입가에는 엷은 미소를 띄고 있다.

정성을 다해 길러낸 농산물을 수확하는 농부들의 모습은 자식을 키워 시집보내는 부모의 마음처럼 아쉬움속에 들뜬 모습이 역력했다. 강진읍에서 서쪽에 위치한 솔치를 넘어서 도로옆으로 나타나는 당산(堂山)마을.

송학리와 경계지점인 성재동의 산등성이에 다섯 개의 작은봉우리가 있어 용의 머리에 비유해 용머리형국으로 불리었던 당산마을은 현재 40가구에 80여명의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다.

당산마을은 마을회관부근을 1반으로 나누고 가운데 마을이 2반, 남쪽으로 위치한 낙춘(樂春)이 3반으로 나눠져 있다. 낙춘은 본 마을과 떨어져 있어 낙촌(落村)으로 불리우다 개칭된 것이다.

마을에 수백년을 넘긴 당산나무가 위치해 있어 명명된 당산마을은 과거에는 청주김씨의 자자일촌이였으나 현재는 천안 전씨, 광산 이씨, 함양 박씨등이 이주해 마을을 이루고 있다.

과거에 숫돌이 많이 나와 본돌이라 불리었던 당산마을에는 마을의 곳곳에 향토성 짙은 마을지명이 산재해 있다. 갈구리처럼 생겨서 이름지어진 갈곡논, 마을의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남생이가 많이 나왔다는 남산골, 넓은 들판이 있지만 물이 쉽게 빠졌다는 광판쟁이, 지형이 불규칙하고 망아지처럼 생겨 붙여졌다는 몽생이논, 일봉산기슭에 바위가 서있어 붙여진 선바우, 사시사철 항상 맑은 물이 나왔다는 성자동, 무연고자 묘지가 있다는 시맷등, 골동품인 요강과 바꿔 이름지어진 요강배미, 묘를 쓰도록 상으로 내려졌다는 정장골, 흉년에도 마르지 않고 물맛이 좋은 중리시암, 병사들이 진을 치던곳인 진전등이 마을에 위치해 있다.

찾아간 당산마을은 1반부터 3반까지 나뉠 정도로 마을이 도로를 따라 길게 자리한 마을이였다.

마을에서는 수확한 벼를 건조기에 넣는 작업으로 주민들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건조기의 소리는 온 마을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마을을 지나다 토란대의 껍질을 벗기고 있던 마을주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토란대를 벗기고 있던 이점순(67)씨는 “젊은 사람들은 토란대를 잘 모를 것이다”며 “말리면 오랫동안 먹을 수 있는 반찬이 된다”고 말했다. 함께 앉아있던 김길님(62)씨는“지금은 마을사람들이 농사일로 인해 바빠서 만나보기 힘들 것”이라며 “만나보면 알겠지만 주민들이 인심좋기로 소문난 곳이다”고 마을자랑을 아끼지 않았다.

마을을 돌아나오다 전통한옥으로 지어진 김행렬씨 집을 찾아보게 됐다. 500여평의 대지에 동향으로 60여년전에 지어진 것으로 청주김씨 종손 김행렬씨가 거주하고 있는곳이다.

이곳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김씨를 찾아가 마을의 전통과 역사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김씨의 집뒤에는 당산나무가 위치해 있어 당산제를 지내며 마을의 무사안녕을 기원했으나 가난한 시절 쌀과 바꿔 나무를 팔아버렸다. 나무를 팔기 사흘전부터 당산나무에서 우는소리가 들렸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마을에서는 예전 풍습을 지키는 또하나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마을에 쌍둥이 형제가 살았는데 형은 영암에서 동생은 해남에서 한날한시에 결혼식을 올리게 됐다. 결혼식을 마친후 시집으로 들어오는날 마을풍습에 의해 쌍둥이 형제가 부인과 함께 동시에 들어와야하나 대문이 좁아 네명이 동시에 들어올 수가 없었다.

이를 보다못한 주민들이 대문옆 담장을 허물어 동시에 집으로 들어왔다는 말이 전해오고 있다. 또 김행렬씨 집에서는 수백년을 넘긴 고문서를 볼 수 있었다. 주민들의 잡역을 면제하거나 요청하는 증서로 완문(完文)이라 적힌 2권의 책과 집안에 애․경사를 붓으로 그림을 그린 상계집, 한약재를 설명한 글등이 400여년의 세월을 지내고도 고스란히 보관돼 있었다.

운치와 고풍이 넘치는 당산마을에는 옛날부터 글공부에 관심을 가지는 주민들이 많았다. 다른 마을에 비해 고위층으로 진출한 인물들이 많아 강진지역에 새로 군수나 서장이 부임하면 마을을 찾아와 꼭 인사를 하고 갔었다는 당산마을에서도 세월의 변화는 다가왔다. 길게 늘어선 감나무들 사이로 분홍빛을 띄고 익어가는 홍시가 과거 당산마을의 번성했던 시절부터 변함없이 자리를 함께 하고 있다.

당산마을 출신으로는 작천초등학교 교장을 지냈던 김팔만씨, 대법관직무대리를 맞았던 김제형씨, 서울은행 이사를 역임했던 김우봉씨, 육군준장으로 예편한 김주형씨, 중소기업은행 이사를 지냈던 김종환씨, 성전초등학교 교장을 역임했던 김두옥씨, 강진교육장을 지냈던 김중빈씨, 공군대령으로 예편한 김제성씨, 변호사로 활동중인 김현채씨, 국제여론신문사 편집국장을 지냈던 김행렬씨, 담양도립대 교수로 출강하는 김영완씨, 서울에서 약국을 경영하는 김영일씨, 서울에서 택시회사를 운영하는 김치영씨, 서울대학교수로 재직중인 김영식씨, 김건식씨, 초당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중인 김순식씨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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