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기행-군동면 장산리 대곡마을<85>
마을기행-군동면 장산리 대곡마을<85>
  • 김철 기자
  • 승인 2002.10.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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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바우산자락 좁은 농토에 마음넉넉한 주민들
마을기행-군동면 장산리 대곡마을〈85〉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들녘에는 수확의 기쁨으로 충만해있다. 태풍의 피해로 도복된 벼는 농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지만 바삐 움직이는 손길뒤에는 오랜만에 나타나는 미소가 비친다. 탐진강을 따라 넓게 자리한 군동면의 평야지대를 따라 찾아간 곳은 대곡(大谷)마을.
현재 30호 80여명의 주민들이 살아가고 있는 대곡마을은 김해김씨가 처음 입촌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밀양박씨, 광산김씨, 문화유씨등 17개성씨가 고르게 분포돼 있다. 조선시대에 마을이 처음 생겨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인근 덕천마을에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군이 발견되는 것으로 미뤄 대곡마을에도 선사시대부터 수렵활동과 채집생활이 존재했을 가능성도 있다.
마을의 지형이 고지대로 큰골짜기가 있어 한실이라고도 불렸던 대곡마을은 마을의 전체적인 모양이 학모양을 나타내고 있다. 학모양의 마을형국속에 주민들에게 구전되는 옛명칭들이 마을의 곳곳에 남아있어 대곡마을의 정취를 더하게 만든다.
마을뒷편에는 고양이의 모양을 닮은 괘바우, 마을의 뒷산이 된 괘바우산, 망운사라는 사찰이있던 망대, 마을의 서쪽 끝에 위치한 이름지어진 가골, 고사리를 채취하기위해 많은주민들이 찾던곳으로 현재는 우거진 수풀로 길이 사려졌다. 밋밋한 골짜기라 해서 명명된 민자골, 넓은 골짜기로 붙여진 큰골, 장애인과 행려자들을 수용했던 나그네 기도원이 명칭을 바꿔 최근까지 사용됐던 강진영애원, 마을의 농업용수의 젖줄인 묘암제, 칠량면 삼흥리로 넘어가는 민재, 마을앞에 위치해 붙여진 안산, 남쪽에 위치한 초매골과 큰골등이 마을을 대변하고 있다.
마을로 접어들자 길가에 앉아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마을주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인근 주민이 추석을 쇠고 남은 과일과 집에서 나온 감을 내와 나눠먹고 있었다. 마을에 대해 묻자 과일을 건네며 마을의 유래에 대해 설명했다. 천정자(여·62)씨는“예전에는 마을 주변이 밭이 많았다”며“경지정리이후 많은 농토가 생겨날때 초가집에서 기와집으로 바꿔나갔다”고 밝혔다. 옆에 앉아있던 김안순(여·71)씨는“다른지역에 비해 농토가 비좁은 편에 속해 마을사람들의 가정형편이 넉넉하지는 못하다”고 말했다. 또 김씨는“가진 것은 없어도 마을사람들이 서로 우애있게 아끼는 좋은 마을이다”고 덧붙였다.
마을아주머니들의 마을이야기를 뒤로 본마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인 것은 대형 우물터였다. 예전 마을공동샘으로 사용하던 곳을 상수도시설이 생긴이후 빨래터로 사용하고 있는곳이다. 시멘트담장사이로 옛정취를 나타내고 있는 돌담은 마을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었다.
대곡마을에서는 마을단위로 조성된 풍물패가 있었다. 예전에는 양규생씨와 김칠만씨가 풍물패를 이끌고 매년 정월대보름날에 마을의 가가호호를 돌아 주민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마당밟기를 했다. 여기서 마련된 성금은 유두날 마을주민들이 함께 마을잔치를 여는데 사용된다. 지금은 매년 양력8월15일 출향인과 마을주민이 어우러지는 잔치가 열리고 있지만 풍물패의 모습은 찾아볼수가 없다.
괘바우산에서 내려오는 맑은물과 깨끗한 공기로 인해 장수촌인 대곡마을에는 지극한 효성으로 알려진 조정자씨를 빼놓을수 없다. 중풍으로 인해 거동이 불편한 시할머니를 14년동안 직접 병수발을 맡았던 조씨의 효성은 마을의 귀감이 되고 있다.
대곡마을에는 예부터 지켜오던 풍습이 있었다. 괘바우산에 목각으로 만들어진 당산할머니를 모시고 매년 정월보름날 제사를 지냈다. 마을에서 제관을 정해 매년 제사를 올려 마을의 안녕을 기원했으나 40여년전부터 의식이 사라졌다. 마을주민들은 마을의 쇠퇴하는 이유를 당산할머니에 대한 제사를 지내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대곡마을에는 농업용수의 젖줄인 묘암제로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69년에 신설된 묘암제가 농업용수의 기근을 해소해 풍족한 생활을 영위하게 했지만 개거가 되지 않아 매년 장마철에는 인근 논이 상습적으로 침수피해를 보고 있다. 흘러내린 토사와 잡초로 매년 정리를 해야하지만 노인인구가 많은 현실에서는 힘든 상태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침수피해를 최소화하기위해 흙으로 만든어진 수로대신에 콘크리트로 수로가 새로 만들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경제적 여유가 삶의 지표가 되고 출세여부를 판가름하는 현실에서 생활의 빈곤보다 마음이 넉넉한 대곡마을주민들의 밝은 미소는 생활의 궁극적목표를 다시 일깨우게 한다. 자신의 일보다는 마을일에 앞장서고 주민들의 애경사는 먼저 일손을 거두는 주민들. 내것에 대한 욕심으로 팽배해져가는 이기주의는 볼 수 없는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대곡마을 출신으로는 부산북구청에 근무하는 양동근씨, 경기도 성남교육청에 근무하는 김남수씨, 군동파출소에 근무하는 이홍성씨, 해남소방서에 근무하는 김상수씨, 강진고등학교에 근무하는 박기재씨등이 이마을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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