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강진읍시장 종합동 43호 군동상회를 운영하는 김연수(79)대표는 잊지못할 하루였다.
 
지난 43년간 함께했던 군동상회가 문을 닫는 날이었다. 나이때문에 더이상 영업이 힘들기 때문이다. 상점에 있던 물건들은 모두 사라져 선반이 텅텅비었다. 전기시설 등을 정리하면서 40여년간의 생활이 김 대표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어려웠던 생활속에서 4남매 자식들을 키워내고 이만큼 살 수 있었던  강진읍시장이었는데 생각하면서 이제 시장과 이별을 하고 있었다.
 
김 대표는 군동면 생동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17마지기의 농사를 가지고 있는 농가였지만 8남매의 장남으로서 김 대표의 생활은 녹녹치 않았다. 중학교 2학년 중퇴하고 농사를 지으면서 동생들을 뒷바라지 해야했던 김 대표였다.
 
서당 훈장이었던 할아버지에게 한문을 3년간 배웠던 기억이 김 대표가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일 정도였다.
 
동생들을 모두 고등학교까지 가르쳐야 했던 고단한 삶을 피해 수년간 객지 생활을 하기도 했다.
 
27살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김 대표는 벽시계 할부장사를 하면서 관내 곳곳을 돌아다녔다. 이어 강진읍시장이 개장한 지난 76년 한켠의 공간을 받아서 군동상회를 시작했다.
 
사실 강진읍시장의 역사는 길다. 1895년 지방행정제도 개혁에 따라 강진군이 강진현으로 개편되면서 강진5일시장(4일, 9일장)과 함께 개장했고 '읍내장', '현내면장'으로 불렸으며 강진읍 서성리 신성마을 배드리에 있다하여 속칭 '배드리장'으로 부르기도 했다.
 
지난 1935년 9월 27일 현 위치인 동성리 일대로 이전했다. 1976년 7월 30일 상설(매일)시장을 추가 개장했고 이때부터 강진읍시장은 5일시장과 상설시장이 통합된 형태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김 대표는 이때 식품과 과일 등을 판매하는 만물상회였다. 그동안 벽시계 할부장사를 하면서 씀씀이가 컸으나 군동상회를 운영하면서 완전히 변했다. 당시 판매하던 검정비누는 1천원. 고무줄을 싸서 포장해 한상자를 팔아도 남는 돈은 얼마되지 않았다. 당시 막걸리 한되박을 먹을수 있는 돈이었다. 이에 김 대표는 그렇게 어렵게 번 돈을 쓸수가 없어 이때부터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가장 황금기는 지난 86년도. 당시 김대표는 장례용품을 취급하기 시작했다. 잔디, 상여, 수의까지 총괄해 판매하기 시작했고 이때 상당한 수입을 올려 기반을 잡아 나갔다고 회상했다.
 
분명 어려움도 있었다.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김 대표는 새로 조직된 시장상인회 초대 회장을 맡았다.
 
당시는 강진농협에서 파머스마켓을 신축하며 상인들과 갈등이 최고조였던 상태였다. 김 대표는 반대 집회의 최일선에서 상인들을 이끌었고 집회신고를 위해 강진경찰서를 수없이 들어다녔다. 2년간 집회를 하면서 개인돈 600여만원을 들여가면서 반대 집회에 나섰던 김 대표였다.
 
하지만 인근 동료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서로 돕고 어려운일을 함께 나눴던 일이 먼저 생각난다. 매월 15일을 휴일을 만들어 상인들의 권리도 높인 것이 김대표의 역할이었다.
 
여기서 강진읍시장도 현대화 시설을 거쳐 완전하게 달라지고 시장의 기능도 많이 변해가고 있지만 항상 그 중심에는 김 대표가 활동했다.
 
이런 43년간의 생활을 뒤로 하고 자리를 물러나는 것이다.
 
김 대표는 "이제는 편하게 운동하면서 자식들과 함께 생활하려고 한다"며 "마지막 소원이 있다면 주민들이 강진읍시장을 더욱 사랑해주고 상인들도 더 친절하고 많은 사람들이 올 수 있도록 시대에 맞게 변하고 움직여야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