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명절이 다가오면 집집마다 하얀 연기가 지붕위로 피어오르고 떡치는 소리가 담장 너머까지 들렸다. 온종일 농사일에 파묻혀 살던 아버지도 차례음식 장만하는데 일손을 거들었다. 명절 전 날이다. 어스름이 깔릴 무렵 사립문 앞에 "형님! 나 왔소"하며 개선장군처럼 들어선다.

우리 아버지보다 나이가 대여섯 살 아래였던 그를 우리 형제들은 '재선이 아재'라 불렀기에 가까운 피붙이 인줄 알고 자랐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진눈깨비가 날리는 어느 날이었다. 그의 가족이 우리 집 작은방으로 이사를 왔다. 이듬 해 봄, 우리 어머니께서 아이를 낳자 한 달 후 그의 부인도 아이를 출산했는데, 모두 사내아이였다.

초가지붕 아래 갓난아이가 둘이다 보니 큰방 작은방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좁은 마당을 가로지른 빨랫줄에는 하얀 기저귀가 눈부시게 펄럭였다. 한량 기질이 다분했던 재선이 아재 콧등은 언제나 술독에 찌들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가장이 밖으로 나돌다 보니 가정 형편은 말이 아니었다.

쌀독이 바닥날 쯤 되면 아랫마을에 사는 노모가 찾아와 채워주곤 했지만 남편의 겉도는 생활은 더 심화되었다. 그의 부인은 산후 조리는 커녕 날품팔이를 나가야 할 형편이다. 어느 날 밤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 날 아침이었다. 마음씨 곱던 부인도 더 이상 못 살겠다며 집을 나갔다. 그는 부인을 찾아 나섰지만 작심하고 숨어버렸기에 끝내 찾을 수 없었다.

그의 방황은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어린 자식을 노모에게 맡기고 부초(浮草)처럼 떠돌며 살다가 명절이 돼서야 고향을 찾았다. 부모님께서는 철새처럼 찾아오는 그를 살갑게 맞이했다. 일손을 돕는 아버지 곁에 찰싹 붙어 용담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재선이 아재. 그의 말에 의하면 함께 사는 여자가 수시로 바뀌었다.

지난 명절 때는 그와 함께 사는 여인이 포장마차를 운영하는데 자리다툼이 벌어져 지역 건달 몇 놈을 한방에 날려 버렸다고 했다. 이번에는 예쁘게 생긴 과부를 꼬드겨 고물상을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어찌나 질투가 심한지 한시도 한눈 팔 틈을 안줘서 힘들다고 토로했다.
 
아버지는 눈만 뜨면 농사일에 파묻혀 온몸에 매캐한 땀 냄새를 풍기며 근근이 살고 있는데 깨끗한 차림으로 멋지게 살고 있는 재선이 아재가 부러웠다. 세월이 흘러 내가 철들 무렵이 되서 그는 멋쟁이가 아니라 무책임한 가장이었음을 알았다. 부모님은 그가 돌아간 뒤에 험담을 한 적이 없었다. 그의 말을 경청해 줄 뿐이었다.

두 사람의 특별한 인연은 내가 태어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재선이 아재가 군에 입대해서 휴가를 나왔는데 귀대를 하지 않았다. 경찰이 그를 검거 하려 들이닥치자 쪽문을 통해 동네 뒷산으로 달아났다. 낮에는 산봉우리에 앉아 면사무소 병사계 직원이나 경찰이 검거하러 오는지 경계를 하고, 날이 저물면 산기슭에 파놓은 굴속에 몸을 의지했다.
 
밤이 깊으면 부모님이 신접살이 하고 있는 한적한 집으로 살금살금 내려왔다. 어둠속에 창문을 두드리며 "형님 나 재선이요 문 좀 열어 주시오" 했다. 아버지는 그를 반갑게 맞아 주었고, 어머니가 끓여준 물로 몸을 녹였다. 따뜻한 밥으로 허기를 달랜 후 잠을 자고 동이 트기 전 산으로 올라갔다.

지루한 도피생활에 지칠 대로 지친 그는 자진 입대해서 병역의무를 완수하고 돌아왔다. 탈영병 그를 숨겨준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의 어머니뿐이었다. 그의 노모는 자식의 은혜를 대신해서 결초보은(結草報恩)이라도 하겠다는 듯이 밭에서 수확한 곡식을 자주 가져오곤 했다. 그때마다 떳떳하고 흐뭇한 표정이 아니라 죄스러워 하는 모습이었다.

내가 철들 무렵부터 발길을 뚝 끊었던 재선이 아재는 아버지께서 오랜 투병 끝에 돌아가시자 소식을 듣고 빈소로 찾아오셨다. 영정을 바라보는 흐릿한 눈동자에 지울 수 없는 회환의 눈물이 고였다. 지금도 명절이면 사립문을 열며 "형님 나 왔소" 하고 들어설 것 같은 재선이 아재를 생각하며 인생무상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