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나의 오른팔을 닮은 팽나무
[기고] 나의 오른팔을 닮은 팽나무
  • 강진신문
  • 승인 2018.12.24 11: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제권 수필가·도암면 출신

내가 어릴 적 살았던 마을에 가면 동구 밖에 몸통이 울퉁불퉁한 팽나무 한 그루가 마을의 수호신처럼 늠름하게 서있다.

국가재건 운동이 한창이던 50년대 육군사관학교 재학 중 폐결핵을 앓다 학업을 중단하고 고향에서 내려와 농촌 계몽 운동을 하던 젊은 청년이 심었다. 넓은 공간에 은행나무를 비롯해 여러 종류의 나무가 있었지만 조무래기들은 오르기 쉬운 팽나무를 주로 타고 놀았다. 어찌나 아이들이 다람쥐처럼 오르내리며 괴롭혔던지 팽나무의 껍데기가 반질반질했다.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다. 마을 사람들은 나무 아래 빈터에서 보리타작을 하고 두엄으로 사용할 보릿대를 쌓아 놓았다. 상급생들이 팽나무에 올라가 수북이 쌓인 보릿대 더미로 뛰어내렸다. 새처럼 두 팔을 벌리고 타잔같이 괴성을 지르며 뛰어 내렸다. 또래 애들은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나도 호기심이 발동하여 잽싸게 가지 끝까지 올라가 힘차게 뛰어내린다. 그런데 다리가 곁가지에 걸렸다. 동굴에 매달린 박쥐처럼 대롱거리다가 나무를 감싸고 있는 돌 위에 거꾸로 추락하여 오른팔이 세 군데나 부러져버리고 말았다. 부모님을 따라 이웃 마을 유도 사범에게 응급처치를 받고, 백리 정도 되는 장흥 장평에 골절치료로 유명한 사람에게 치료를 받았지만 그 후 두 번이나 더 부러져 끝내 활처럼 휘었다.

그때부터 오른 팔이 겪어야 하는 수난과 나무에 대한 증오가 시작됐다.
나는 볼썽사납게 굽은 팔을 볼 때마다 팽나무를 미워했다. 심통이 날 때면 다가가서 돌로 찍고, 끝이 뾰쪽한 쇠말뚝을 돌로 박아 괴롭혔다.

신체와 용모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청소년 시절에 거울 속 굽은 팔을 바라 볼 때마다 팽나무가 더욱 야속했다.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굽은 팔을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반팔 옷을 입지 않고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녔다. 오랫동안 계속된 악습은 또 다른 병폐를 가져왔다. 오른편 어깨가 기울어진 것이다. 어느 날 정형수술 상담을 받으려 병원 앞까지 갔지만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는 말에 겁먹고 돌아왔다.

철이 들면서 천방지축처럼 살아온 나에게 굽은 팔목은 특별한 감사의 조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주와 증오의 안경을 벗고 보니 세상은 너무 밝았다. 거리를 걷다보니 한 쪽 팔이 굽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보였다. 나는 그동안 외눈박이로 어두운 쪽만 바라보며 걸었던 것이다. 이제 굽은 팔을 감추지 않고 앞뒤로 힘차게 저으며 걷는다. 어깨가 오른편으로 조금 기울어진 것도 걱정하지 않는다.
 
굽은 나무가 더 멋지고 예술적 가치가 있다. 아내의 가방을 들어 줄때도 굽은 팔에 걸면 더 안전하고 편하다. 나는 굽은 내 팔을 바라보며 겉치레로 치장한 외면보다 진실한 내면이 소중하다는 것을 배웠다. 이제 나이가 이순(耳順)이 되었다.

나의 생각만 고집하며 모난 돌처럼 좌충우돌 살아왔던 지난날을 교훈 삼아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여 넓게 이해하며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려도 부러지지 않은 수양버들처럼 유연하고 부드럽게 살고 싶다. 지난 해 명절에 고향에 들려 팽나무를 어루만져 주자 달빛이 시샘하며 우리 사이를 파고들었다.

50여 년 전 어린 소년이 두 손을 감싸고 순식간에 올랐던 몸통 둘레가 이제 성인의 양팔로 셋하고도 남았다. 이젠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위풍당당한 거목이 되었지만 옛날 철부지 시절 악행을 탓하지 않고 반겨 주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