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현해탄을 건너며
[기고] 현해탄을 건너며
  • 강진신문
  • 승인 2018.07.13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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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 _ 수필가·농민

장마속에 일본의 후쿠오카와 나가사키를 다녀왔다. 여행중에 그들 역사 속 인물들과 우리 정치인들의 행태가 오버랩 되어 마음 한쪽이 헛헛해 왔다. 현직 정치인들을 직접 겨냥하니 조금은 쭈뼛거려지기도 하다. 대한민국에서도 가장 남쪽 끝 시골벽지의 신문에 이런 글이 실렸다고 해서, 저 높디높은 곳에서 국정을 쥐락펴락하는 분들이 읽어보거나 전해들을 일은 없겠다 싶기는 하지만.
 
버스는 나가사키의 해변을 천천히 달렸다. 마치 인접해있는 완도의 장보고 대교 같은 곳이다. 좌측으로 긴 만(灣)이 펼쳐져 있는데 우리의 강진만과 흡사하다. 그리 넓지 않은 포구다. 해박한 가이드가 설명했다. "여기가 임진왜란을 일으킨 풍신수길이 선박을 건조하고 군인들을 훈련시킨 곳입니다." 조금 더 가니 '100만 그루 소나무 숲'이 나온다. 숲속 곳곳의 나무들이 휘어지고 구부러져있다. 가이드가 또 말 한다. 그 시절 도요도미 히데요시가 이곳을 지나면서 소나무가 하도 빽빽하여 화를 냈는데 그 후부터 나무들이 이렇게 자랐다는 전설이 이 지방에 내려온다고.
 
도요도미 히데요시(풍신수길)는 오다노부나가의 마굿간지기였다. 그는 일본인답게 철저하게 주인을 섬겼다. 추운겨울에 주군이 밖을 나설 때는 신발이 차지 않도록 가슴에 품어 내 놓았다. 그렇게 해서 신임을 받은 뒤 그는 정권을 물려받아 천하를 손에 쥐었다. 그러나 막부들은 그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래서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국내의 시선을 국외로 돌리기 위함이었다. 불행하게도 그는 슬하에 자식이 없다가 늙은 나이에 어렵사리 늦둥이를 보았다. 그리고 그의 충복이었던 그리고 작은 성의 성주였던 덕천가강에게 자식을 부탁한 후 죽어갔다.
 
정권을 이양받은 도꾸가와 이에야스(덕천가강)는 길고 긴 7년간의 전쟁, 임진. 정유재란을 끝냈다. 그리고 춘추전국시대를 마감했다.
 
여기에서 하고자 하는 얘기는, 이들 모두의 공통점이 주군의 신뢰가 있은 후 천하를 얻었다는 것이다. 세상일에 독불장군은 없다. 하늘을 찌르는 아름드리나무도 그 씨앗은 작은 알갱이 하나이다. 세상의 어떠한 큰일도 처음은 아주 작은 것에 배태한다. 근래 우리나라의 어느 정치인 한사람이 일찍이 그걸 알아 분당을 하지 않고 권토중래 했었더라면 어땠을까?
 
우리정치인과 관련한 또 하나의 얘기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때 일본 제일의 무사였던 미야모도 무사시. 일본의 춘추전국시대 검 하나로 천하를 재패한 전설속의 검객이다. 그는 화가이자 서예가이기도 했는데 그가 그린 그림 한점이 지금 싯가로 억대가 넘는다고 하던가? '육참골단(肉斬骨斷)' 그가 한 말이다. 적과 싸울 때 자신의 살은 베이게 하고 상대의 뼈를 취하라는 뜻이다. 그런데 며칠 전 내노라 한 우리의 야당 대표가 똑 같은 말을 했다.

"야당이 쇄신하려면 모든 당원이 '육참골단' 의 자세로 나아가야 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여러 신문에 까십이 실렸다. 신문이 아니더라도 이 말의 어원을 아는 사람은 웃었을 것이다. 이명박근혜 9년간 하늘을 속이고, 국민 또한 철저하게 속여 왔던 무리들이 이제 또 '미끼인 살을 던져 고기인 뼈를 취하자는 말을 했으니. 물론 몰라서 한 말이었겠지만 어원대로 해석하면 또 속이겠다는 말과 같다. 이런 것을 두고 웃프다고 하던가? 부끄럽고도 슬픈 일이다. 이것이 우리 정치인들의 현주소다. 되돌아보면 임진왜란 같은 비극도 정치인들의 무지 때문에 있었고 국민은 그때마다 피눈물을 흘렸다.
 
"아침에 일어나면 마을의 앞산과 뒷산에 하얀 목화송이들이 맺혀있었다" 어느 역사소설 속에서 임진왜란 당시를 묘사한 글이다. 왜군들에게 겁탈당한 우리의 흰 옷 입은 부녀자들이 목을 매달아 죽은 모습이다. "민주주의 하에서 잘못 선택된 한 사람의 무지는 모든 사람의 불행을 가져온다" J. F케네디의 말이다.
 
배 위에서 내려다보는 드넓은 바다, 긴 시간 숱한 사연을 간직한 현해탄이 유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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