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공(犬公)들 해외로 탈출하다
견공(犬公)들 해외로 탈출하다
  • 시인 김제권
  • 승인 2018.06.25 0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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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암중 58년 개띠 친구들의 일본여행기]

시간이 흐르면 가족보다 그리운 것이 친구라고 표현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제는 나이가 들면 친구들과 함께 추억을 되살리면서 여행을 떠나는 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여행을 위해 일정 돈을 모아 적금을 드는 모임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어릴적 추억을 찾아 떠나는 여행의 뒷모습을 찾아본다. 투박하지만 재미가 있을 수 있는 동갑내기들의 여행을 뒤쫓아 본다. 편집자 주/

회갑을 맞은 도암중 74년 졸업생 '58년 개띠들이 오래 전부터 해외여행을 준비해 왔다. 공직 생활과 축산을 하고 있는 친구를 위해 짧은 기간에 오갈 수 있는 일본을 택했다. 여행이란 준비하는 설렘이 더하는 법인데 며칠전 심하게 앓았던 감기 후유증으로 덤덤했지만, 모처럼 떠나는 해외여행에 들떠 있는 아내의 기분에 찬물을 끼얹지 않으려 내색을 하지 않았다.
 
여행 목적지 가고시마현은 일본 큐슈 남쪽 지역이다. 며칠 전 TV 뉴스에서 화산이 폭발해 버섯 송이가 피어오르는 것처럼 화산재를 계속 뿜고 있는 장면이 보도되었던 곳이다. 여행이란 어디로 가는가 보다 누구와 함께 가는가가 중요하다. 같은 지역에서 오랜 세월 동고동락(同苦同樂)하며 지내 왔기에 허물을 따지려 하지 않고, 화려한 외면보다 소박하고 담백한 내면의 모습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친구들이다.
 
무안 국제공항을 출발한 항공기가 현해탄을 가로 질렀다. 검푸른 바다에 늘어진 일본 열도는 뽕잎을 갉아먹고 있는 누에 모습을 닮았다.
 
오래 전 우리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정든 고향산천을 두고 강제로 끌려갔던 뱃길위에 봄기운을 받은 검푸른 물결이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이륙 후 50여 분이 지났다. 비행기가 고도를 낮추자 지도로 보면 가깝지만 가슴으로 보면 멀고 먼 나라, 이성보다 감성이 앞선 나라 일본이 발밑에 아른거린다.
 
잠시 후 비행기는 한적한 시골 공항에 도착했다. 빈틈없는 일본인답게 늘어선 줄을 아랑곳 하지 않고 여권과 소지품을 꼼꼼히 체크한다.
 
조용한 거리를 규정 속도로 달리는 자동차들, 작은 공간에 오밀조밀 조성된 화단, 작지만 모든 것을 갖춘 호텔 내부를 보면서 '축소 지향적 일본인'이란 말을 실감했다.
 
첫 날 밤 친구들은 호텔 다다미 바닥에 모여 앉아 윷놀이 판을 벌였다. 거친 멍석에서 실력을 마음껏 발휘 하던 조건과 전혀 다르다. 매끄러운 바닥위에 윷을 던지면 데구루루 미끄럼을 타며 예측 할 수 없이 뒤집히는 복불복 게임이다. 언제나 몰패 했던 내가 완승을 했다.
 
호텔 식당에 나이가 지긋한 백발의 노인들이 일을 하고 있었다. 관광 가이드 말에 의하면 이들이 노동하는 주된 이유가 생계 유지 수단보다 무위도식(無爲徒食)하지 않기 위해서라 한다. 공손한 모습으로 허리를 굽혀가며 '아리가또 고자이마스'와 '스미마센'을 연발하며 웃음 짓던 표정이 인상 깊었다. 그들은 우리 일행 차량이 호텔을 떠나 보이지 않을 때 까지 서서 손을 흔들었다.
 
사무라이들이 집단으로 살았던 남부 해변을 향했다. 사무라이는 12세기부터 메이지 유신까지 일본 정치를 지배했던 무사계급을 지칭했다고 한다. 그들은 불명예스러운 일에 휩싸였거나 싸움에 패배하면 할복자살 했던 것이 생활화 되었다고 한다. 그들이 살았던 집은 담장이 높아 밖에서 쉽게 들여다 볼 수 없도록 외부와 차단 돼 있었다.
 
골목을 따라 길게 펼쳐진 도랑에 맑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고온 다습한 기온 탓인지 이끼 낀 돌담 사이로 새끼손가락 두께 만큼 한 도마뱀이 머리를 내밀고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사무라이들이 모여 살았던 고택은 원형을 유지하여 문화유산으로 보전이 잘 돼 있었다.
 
저녁 식사를 할 곳은 우리가 묵고 있던 호텔 옆 큰길 건너편에 있는 정통 일식당이다. 그 곳으로 이동 할 때 부부가 손을 잡고 줄을 지어 학창시절 행군하듯 걸었다. 최근 재혼을 한 친구는 금 번 해외여행이 첫 나들이라고 했다. 읍내에서 식당을 경영했던 새 부인이 닭발 볶음과 밑반찬을 푸짐하게 준비해 와서 여행 기간 먹거리에 불편함을 느끼질 못했다. 친구의 새로운 반려자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로 케이크를 자르고 축배를 들었다.
 
다음 날 1914년 대규모 분화로 바다가 메워져 육지가 돼 버린 화산을 향했다. 부근에 있는 활화산 봉우리에 검은 연기가 솟구치고 산허리서 내려온 도랑 속에 온천수가 흐른다. 
 
화산을 관광지로 개발하여 관광객을 유치해서 외화를 벌어들이는 일본인의 지혜와 상술은 대단했다. 바로 앞 5,000미터 상공에서 화산이 분출되고 그 아래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곳에서 온천욕을 즐기는 것이다.
 
건너편 산에 화산이 폭발하고 있어도 평온하게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것을 보며 신이 인간에게 천부적인 환경 적응 능력을 부여해 주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차창 밖으로 어린 학생들이 안전모를 쓰고 하교 하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 눈에는 놀랍고 생소 했지만 그들은 이런 생활에 익숙한 모습이었다.
 
용암 해양공원에 온탕이 군데군데 설치되었다. 일행은 길게 앉아 따뜻한 물에 발을 담갔다. 긴 세월 거친 길을 끌고 다니느라 지친 발가락이 모처럼 호사를 누리며 꼼지락 거린다. 빨간 발등의 물기를 수건으로 닦을 필요가 없다. 신선한 바람이 금세 말려주었다. 베이비부머 정점에서 숱한 세월 앞만 보고 달려왔던 친구들 오랜만에 신선놀음을 즐기다 보니 주름 잡힌 얼굴들에 웃음꽃이 만발했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한국이 보인다는 산(山)이 우뚝 솟아 있었다. 임진왜란 때 볼모로 잡혀왔던 수많은 탄광 노동자와 도공들은 고향 땅에 돌아가지 못하고 이곳에 뼈를 묻었다. 그들은 일 년에 한 번 조선 사람끼리 만나 그리운 고국 땅을 바라 볼 수 있는 곳에 올라 조상께 제사도 지내고 향수를 달래던 산이라 해서 '한국산(韓國山)'이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일본군에게 강제 징용되었다 고향으로 돌아오셨지만 후유증으로 몇 해만에 돌아가셨다는 조부님 생각이 났다. 공항 근처 호텔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윽고 무안 공항 도착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들렸다.
 
생존경쟁(生存競爭)에서 찌든 육신을 온천탕에서 씻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58년 개띠 친구들과 함께 했던 3박 4일 일본 여행은 오래토록 추억으로 간직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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