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도 끝나고 친구와 모처럼 거리를 걸었다. 봄도 이젠 저문다. 먼 옛날 백 설희가 불렀던 '봄날은 간다'가 길옆 상가에서 가볍게 흘러나온다. 시골에서 살다가 간혹 올라와 이렇게 걷는 시간이 참 좋다. 그런데 갑자기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던 친구가 말 한다.

우리 그냥 메타세코니아 숲길로 들어가자고. 그 길은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 않는 한적한 곳이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저 친구들 보기 싫으니 그리로 가잔다. 저 친구들이란 어깨띠를 두르고 선거용 명함을 돌리는 6. 13 지방선거 입후보자들이다.
 
엊그제 모 언론매체에 나오는 얘기다. 지방의회 의원들에게 업무추진비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급여나 출장비 외로 나오는데 글자 그대로 업무추진을 위해 써야하는, 회사로 치면 법인카드와 같다. 그런데 어느 의회의 사용내역을 조사해 봤더니 한마디로 가관이었다.

그들은 반기별로 워크숍을 하는데 관광지를 선택해 특급호텔에서 개최하고, 올 때는 그곳의 특산품을 사가지고 온단다. 그 한 예로 속초에서는 건어물을, 제주도에서는 옥돔을 산 사례들을 적시했다. 그리고 어떤 의회는 등산대회를 한다고 고급 등산복을 의원 전원이 단체로 주문하고, 또 단합대회를 한다고 운동화와 운동복까지 공동 구입했다.

하나 더, 모 의회 의장은 업무추진비로 자신의 혈압약을 구입했는데 그것이 자그마치 73회에 거쳐 총 540만원 어치였단다. 포복절도할 일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입법과 예산을 맡겼으니 고양이들에게 제삿상을 맡긴 꼴이다.
 
"국회의원들의 해외출장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다. 국민들이 실상을 알면 국회를 폭파하려 들것이다" 엊그제 국회의장 정 세균씨가 공식석상에서 한 말이다.
 
사서(四書)의 하나인 대학에서는 정치를 하기 전에 수신(修身)과 제가(齊家)를 먼저 하라고 이른다. 그런데 수신제가는 성의(誠意) 정심(正心)을 갖추지 않으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성의와 정심은 그냥 될까? 아니다. 격물을 거쳐 치지(格物致知)에 이르지 않으면 그것 또한 백년하청이다.

왜냐하면 격물이 부족해 기울어진 사고를 갖고 있으면 다른 사물이 똑바로 보일수가 없기 때문이다. 격물치지(格物致知), 대학의 8조목 중 가장 근저가 되는 첫 대목이다. 그런데 수신은커녕 격물에도 이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부나방처럼 치국을 하겠다고 필사적으로 달려든다.

격물에 대한 한 토막 일화이다. 고시를 거쳐 선거로 군수가 된 사람이 직원들에게 인사말을 했다. 봄인데 그 날 날씨가 따뜻했던 모양이다. "오늘이 입춘인데 음력절기는 참 잘 맞추네요" 했다. 또 어떤 지방 의회 의장은 공식석상에서 "지금 남미(南美)는 정치 경제적으로 문제가 많습니다. 남미 아시죠?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 이름입니다"라고 했다.

한심 할 일이다. 그런데 그들이 지금 저렇게 지도자가 되겠다며 자기만이 적임자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부끄러움을 모른다. 염(廉)과 치(恥)는 예(禮).의(義)와 더불어 국가를 유지하는 4유(四維)이다. 옛 사람들은 이 사유중 하나가 끊어지면 나라가 기울고, 두개가 끊어지면 위태로우며, 세 개가 끊어지면 전복되고 네 개가 끊어지면 나라가 망한다고 했다(관자 목민편).
 
민주주의는 국민의 의식을 먹고 자란다. 그런데 국민의 정치의식은 아직 낮고 자기를 찍어달라고 하는 자들의 그것은 두터운 얼굴 속에 감추어져 있어 보이지를 않는다. 그래서 말인데 선거로 뽑는 자들 즉 대통령에서부터 지방의회 의원까지 투표 이전에 어떤 형식의 전형을 거쳤으면 싶다. 즉 선관위로 하여금 필독양서 백여권을 선정하여 그것을 읽었는지의 여부와 사서(四書)중 대학(大學)을 출제하여 이를 통과한 사람에게만 입후보 할 수 있도록 하는 그런 제도를.
 
의원들 자신들이 함량미달인데 그것을 입법화 하지는 않을 것 같고, 또 그런 것이 갖추어진 사람이 남 앞에 나서는 것 자체를 하지 않을 것 같기는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