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진과 배우는 갑골문자 이야기<30>
김우진과 배우는 갑골문자 이야기<30>
  • 강진신문
  • 승인 2018.05.27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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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진_한자·한문 지도사

 

손님 빈

'손님 빈(賓)'자에 대한 사전적 풀이는 '집 안(宀)에서 머리를 숙이고(丏)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이다. 그러면 빈(賓)자 속의 조개 패(貝)는 무엇인가? 손님이 가지고 온 선물 또는 손님을 대접하는 예물을  뜻하지 않나싶다. 빈(賓)자의 원형인 갑골문으로 눈길을 돌려보자. 집의 형상(宀) 외에는 지금의 글꼴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먼저 집안에 여자(女)와 함께 사람(人)이 한 명 더 그려져 있다. 아마도 집에 찾아온 손님이 아닐까 싶다. 아랫부분은 패(貝)가 아닌 '발'을 그려놓았다. 일정한 공간에 출입을 나타내는 상징적 묘사로 보인다. 사실 여기까지는 약간의 추론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 쉽게 뽑아낼 수 있는 이야기다. 이 갑골그림에서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할 대상은 바로 여자(女)이다. 여자가 손님을 응대하고 있다. 보통 손님의 응대는 집안의 가장(家長)이 한다. 이 글자는 여자가 가장(家長)임을 선언한다. 고대로부터 내려온 여성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이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낳은 속류적 신념체계는 아닌지 이 고대글자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첩 첩

첩(妾)자 만큼 극과 극으로 신분이 갈리는 글자도 드물 것이다. 하나의 작품도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한 감상평이 따라오듯이 대부분의 갑골문도 마찬가지이다. 학자들은 갑골그림의 모양이나 구도, 용례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내놓는다. 하나로 통일된 정답이 없어 자기만의 견해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점. 그것이 도리어 호기심을 자극하고 공부의 재미를 더해주는 것 같다. 첩(妾)자의 갑골문은 두 개의 그림을 결합한 글자다. 아래 부분의 여자(女)와 윗부분의 입(立)자 모양이 그것이다. 첩(妾)자는 바로 윗부분의 입(立)자 모양의 그림 때문에 최하층의 신분에서 최상층의 신분으로 널뛰기를 한다. 먼저 입(立)자 모양을 '매울 신(辛)'으로 보는 견해다. 신(辛)은 고대사회에서 이마를 찢어 먹물을 새겨 넣는 형벌을 가할 때 쓰는 도구다. 이때의 첩(妾)은 주인을 섬기는 노예나 죄인이다. 다른 의견은 부녀자가 멋을 부리는 머리장식으로 보는 견해다. 이때의 첩(妾)은 출가한 여인으로 한 남자의 부인이다. 당시의 용례를 보면 첩(妾)은 왕의 당당한 배우자이기도 했다.

 

돼지 시

'돼지 시(豕)'자는 돼지를 상형했다. 돼지와 사람은 오랜 동반자다. 돼지(豕)가 중심인 '집 가(家)'자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인류는 대략 1만 년 전 신석기시대부터 농경과 목축을 동시에 시작했다고 한다. 인류가 드디어 경제적 인간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로서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특히 갑골문자를 사용했던 상(商)나라(은나라)에는 유달리 목축업이 발달했는데 당시의 신권정치문화(神權政治文化)때문이라고 한다. 상나라는 국가나 왕실의 중대사가 있을 때마다 점을 쳐서 신의(神意)를 물었다. 이 때 많은 동물이 제물(祭物)로 바쳐지곤 했는데, 기록에 의하면 한 번의 의식에 한 마리에서 열 마리, 백 마리, 천 마리를 바치자는 내용도 있다. 제의(祭儀)가 다반사로 이루어졌음을 감안한다면 그 많은 동물을 수렵으로 충당하기에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제물로 사용된 동물은 주로 소·양·돼지였다. 이들은 세 가지 희생물(犧牲物)이라 하여 삼생(三牲)으로 불리어졌는데, 국가차원에서 무분별한 도살을 금지하고 보호할 만큼 귀하게 취급받았다.

 

쫓을 축

'쫓을 축(逐)'자는 '각축(角逐)을 벌이다','축출(逐出)하다','악화는 양화를 구축(驅逐)하다','구축함(驅逐艦)'등 우리 귀에 익숙한 글자다. 갑골문은 돼지(豕)와 사람의 발을 그려 돼지를 쫓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형상화했다. 뭔가를 '쫓아내다'는 관념 속의 생각을 돼지와 발이라는 전혀 다른 요소들을 연결하여 그 속에 뜻을 담아내고 시각화하는 문자창조 과정이야말로 일류역사에서 가장 창의적인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창의성(創意性·creativity)의 사전적 정의는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뜻한다. 그러나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을 통해 창의성이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통념처럼 꼭 세상에 없던 새로운 걸 만든다는 의미만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는 스탠포드대 졸업식 연설에서 창의성을 '사물들을 연결하는 것(Creativity is just connecting things)'이라고 정의했다. 상대(商代)의 갑골문자라는 새로운 상징체계 역시 그것을 창조해낸 과정을 보면, 기존에 세상에 널려있는 이것과 저것들의 연결이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고기 잡을 어

'고기 잡을 어(漁)'자의 현재의 글꼴은 물(水)과 물고기(魚)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갑골문자가 그렇듯 3300년 전의 어(漁)자도 다양한 형상으로 표현되었다. 한 글자에 하나의 도상(圖像)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어(漁)자 역시 물과 여러 마리의 물고기로 그려놓은 그림도 있지만, 나무 막대기와 손과 물고기를 그려 낚시를 연상시키는 그림, 그물을 던져 물고기를 잡아 올리는 그림 등이 함께 사용되었다. 위에 소개된 갑골문은 척 보면 알 수 있듯 물고기를 잡기위해 그물을 던지고 있는 모습이다. 맨 밑에 그려진 손이 그림의 동작성을 살려준다. 중국의 신석기 유적지인 자산(磁山)에서 어망(漁網)을 짜는 도구인 '북'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늦어도 7000년 전의 사람들이 그물을 이용하여 고기를 잡았음을 보여준다고 한다. 더구나 3300년 전 상나라 시대에는 어로(漁撈)뿐만 아니라 연못이나, 호수에서 인공으로 물고기를 기르는 전문적인 어업이 성행했다고 하니 오늘날의 양식업도 수천년 전 고대 인류의 지혜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짐승/가축 축

가축(家畜)으로 쓰는 '짐승 축(畜)'자의 갑골문을 보면 현재의 글꼴과 별반 차이가 없다. 하지만 단순한 이 그림에서도 다양한 설명들이 도출되고 해석 또한 분분하다. 축(畜)은 그림에서 보듯 윗부분은 짐승의 창자를, 아랫부분은 위(胃)를 상형했다는 주장이 다수설이다. 나는 창자(脹子)와 위(胃)가 뒤바뀐 구조인데 굳이 이 의견을 고수할 필요 없이 그냥 식도로 보고 해석해도 무방하다는 생각을 해 보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 글자는 본래 '쌓다'라는 의미로 사용했는데, 식도를 통해 내려오는 음식물을 쌓아두고 소화시키는 위(胃)가 그 뜻과 딱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사실 이 갑골그림은 반추동물로서 방이 4개나 되는 소의 위를 연상시킨다. 아마도 '가축'이라는 뜻도 여기에서 나왔지 않나 싶다. 축(畜)은 점점 '쌓다'라는 본래의 뜻보다 '가축'이란 의미로 널리 통용된다. '쌓다'만을 뜻하는 새로운 글자 '축(蓄)'이 출현하게 된 배경이다. 우리는 글자의 확장성 덕분에 저축(貯蓄), 함축(含蓄), 비축(備蓄), 축적(蓄積), 축재(蓄財)라는 관념을 문자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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