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진과 배우는 갑골문자 이야기<29>
김우진과 배우는 갑골문자 이야기<29>
  • 강진신문
  • 승인 2018.04.20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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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진_한자·한문지도사

酉 열 번째 지지 닭 / 술 유

유(酉)자는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 12지지 가운데 10번째인 닭을 뜻한다. 하지만 갑골문에서 보듯 닭과는 무관하다. 사실 유(酉)는 '술단지' 또는 '술동이'를 그려 만든 글자다. 처음에는 용기보다는 내용물에 초점을 맞추어 '술'로 썼다. 따라서 부수자리에 이 유(酉)가 들어있는 한자는 모두 술과 관련 있다고 보면 틀림없다. '수작 부리지 말라' 할 때의 수작(酬酌), 발효식품 할 때의 발효(醱酵), 취할 취(醉), 더러울 추(醜), 술빚을 양(釀), 나눌 배(配), 술 깰 성(醒) 등이 그것이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파자(破字)의 원리로 몇 자 풀어보면 이렇다. '취할 취(醉)'는 술을 뜻하는 유(酉)와 졸(卒)의 조합이다. 졸(卒)은 '마치다', '끝내다', '죽다', '갑자기' 등의 뜻을 품는다. 수많은 글자 중 왜 하필 졸(卒)과 묶었을까? '추할 추(醜)'는 유(酉)와 귀(鬼)의 조합이다. 귀(鬼)는 '귀신'이나 '도깨비'이다. 사람들이 기피하고 혐오하는 대상이다. 한자의 조합은 메시지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의도성 짙은 작업이다.

 

酒 술 주

'술 주(酒)'자는 '유(酉)'에 '물 수(氵)'를 더했다. 유(酉)가 '닭'의 의미로 변용되면서 '술'을 뜻하는 새로운 글자 '주(酒)'의 창작을 재촉한 듯 보인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란 말이 있듯이 고대인은 소통에서 뭔가 한계를 느낄 때마다 새로운 문자를 생산해내고 표현의 세계를 점점 풍부하게 채워나갔다. 아들 학연이 강진을 찾아왔다. 다산은 시험 삼아 술 한 잔을 건넸다. 마셔도 취하지 않자 "너의 동생은 어떠냐?"고 물었다. "저의 곱절은 되지 싶습니다(能倍)." 다산은 둘째 아들 학유에게 붓을 들었다. "음주를 좋아하는 자는 병도 많아 언제 죽을지 모른다(病多暴死). 주독(酒毒)이 배어 들어가면 오장육부는 하루 아침에 썩어 문드러진다(一朝腐爛). 마침내 몸은 무너지고 말지(身偃壞耳). 나라가 망하고 가정이 파탄 나고 흉악한 패륜은 모두 술 때문이다(皆由酒出). 너에게 빌고 비노니(乞汝乞汝) (술은) 절대 입에 대지 마라(絶口勿飮)" 다산의 편지는 냉혹하면서도 간절하다. 비록 폐족이지만 품위만큼은 지키고 살기를 바랐던 다산의 마음으로 보니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尊 높다, 높이다 존

존경(尊敬)의 첫 글자 '높을 존(尊)'의 고대문자는 '술 단지'와 '두 손'이 그려진 그림에서 출발했다. 그런데 尊(존)의 현재 글꼴은 '유(酉)'가 아니라 '우두머리 추(酋)'와 '마디 촌(寸)'이다. 촌(寸)은 뭔가를 받들고 있는 두 손에서 왔기에 '높이다'라는 뜻을 유추하는데 손색이 없다. 그러면 추(酋)는 무엇이기에 여기에 동원된 것일까? 추(酋)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추장(酋長)하면 아프리카가 떠오르듯 추(酋)는 한 부족의 '우두머리'를 뜻한다. 그래서 존(尊)이 '높다', '높이다'라는 뜻이 됐겠구나. 이렇게 판단했다면 조금은 성급했다. 왜냐하면 고대의 추(酋)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추(酋)는 '묵은 술'을 의미한다. 술은 시간을 머금을수록 풍미를 더하는 법. 바로 그 술을 상제(上帝)나 조상(祖上)에게 바치고 있는 모습이 바로 '높을 존(尊)'의 모티브가 된 듯 싶다. 그러면 어떻게 오래 묵힌 술임을 알 수 있는가. '술 단지' 위로 눈길을 돌려보자. 팔자(八)모양의 '두선'이 말을 한다. 코를 자극하는 그윽한 술 향기가 올라오지 않는가.

 

奠 제사지낼 전

공자를 모신 사당인 문묘에서 지내는 큰 제사를 석전대제(釋奠大祭)라 한다. '제사지낼 전(奠)'자의 구성요소는 '추(酋)와 대(大)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추(酋)는 '오래 묵혀 풍미 그윽한 귀한 술'이다. 대(大)는 그림에서 보듯이 그 '술 단지'를 올려놓은 받침대(丌)였다. 갑골문자를 최초로 만들어 썼던 은나라(본래는 상나라이다)는 전 세계 대부분의 원시 부족들이 그랬듯이 하늘 신, 땅 신, 곡식 신 등의 여러 신들에게 제사를 지냈다. 특이한 점은 조상신에 대한 제사를 어떤 제사보다도 신성시했다고 한다. 아마도 이것이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조상에 대한 제사문화의 원형이 되었지 않나 싶다. 제사는 신의 강림을 믿는 제례(祭禮)이다. 강림을 기원하면서 신에게 올리는 음식가운데 하나가 바로 술이었던 것이다. 술은 영계와 인간계의 문을 열고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를 하나로 연결하는 신비의 제물(祭物)이었던 셈이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인간사에서도 술은 사람과 사람 사이 마음의 문을 여는 묘약 같은 것이기도 했다.

 

缶 장군 부

'장군 부(缶)'의 현재글꼴은 '낮 오(午)'와 '입 벌릴 감(凵)'의 결합이다. '장군'의 고고학적 정의는 '배가 볼록하고 목이 좁은 아가리가 있는 그릇으로써 보통 질그릇으로 만들어진 것은 소형(대형은 나무로 만들고 오줌 등을 담았다)으로 간장이나 물, 술 따위를 담아두는데 이용했다'고 전한다. 주로 가정용 생필품을 보관했던 그릇이었으니 지근거리에서 사람의 손때를 가장 많이 탔을 것이다. 부(缶)의 갑골문으로 눈길을 돌려보자. 질그릇을 만드는데 쓰는 두 가지의 도구와 만날 수 있다. 윗부분은 흙을 다지는 '공이'이며 아랫부분은 '거푸집' 또는 '큰 용기'로 추정된다. 바로 질그릇을 만들 때  쓰는 도구를 그려 부(缶)라는 글자의 원형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이지러질 결(缺)'과 '보배 보(寶)'자는 모두 부(缶)를 품고 있는데 나름 해석해 보면 재미있다. 질그릇의 한쪽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것을 두고 '이지러졌다' 한다. 결함(缺陷)있는 질그릇인 셈이다. 도공의 눈썰미를 통과한 질그릇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귀함을 탄다. 보물(寶物)이 되지 않을 수 없다.

 

陶 질그릇/도공/굽다 도

독자들 가운데 십중팔구는 이 그림을 보는 순간, 아하! 그 장면을 그려서 '도(陶)'라는 문자로 썼구나,  아마도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더구나 우리는 10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청자의 고장 강진에서 살고 있으니 어쩌면 우리의 공동기억 속에 늘 친근하게 자리 잡고 있는 장면인지도 모른다. 토기의 기원은 신석기 시대인 BC 70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질그릇인 도기 또한 토기에서 발달되어 나왔는데 갑골문의 시대 은나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토기는 보통 500~1000℃ 이하에서 구워지지만 그 이상에서 구워진 것은 도기(陶器)라 부르고, 유약을 바른 것을 자기(磁器)라 부르는데 청자는 9세기경에 시작되었으니 천년을 훌쩍 뛰어넘은 셈이다. 강진에서 매년 열리는 청자축제는 도공의 천년의 혼(魂)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사실 우리가 걸작이라 칭송하는 청자들은 흙과 불에 쏟아 부은 보이지 않는 혼(魂)의 산물일 뿐이다. '심신(心身)을 닦아 기르는 것'을 도야(陶冶)라고 한다. 흙과 불에서 그 개념을 빚고 구워냈다. 새길수록 의미심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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