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병에 담긴 역사 이야기
매병에 담긴 역사 이야기
  • 김철 기자
  • 승인 2017.08.14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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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매병 특별전

박물관 개관 20주년 특별전... 고려청자 대표하는 매병 유물 모아 특별전 마련


고려청자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기억하는 이미지가 간송미술관 소장의 구름과 학이 빽빽하게 표현된 국보 제68호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이다. 가장 많이 알려진데다 대표적인 문양인 구름과 학이 정교하게 상감기법으로 묘사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려청자를 대표하는 유물로 많이 알려진 매병 유물을 모아 고려청자박물관에서는 특별전을 마련했다. 박물관 개관 20주년을 맞아 기획한 전시로 오는 10월8일까지 고려청자박물관 1층 기획전시시실에서 열린다. 충남 태안지역 바다에서 발견된 보물 제1783호 청자상감국화모란유로죽문매병, 국립전주박물관 소장의 청자상감용문매병을 비롯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청자송하탄금문매병, '보원고(寶源庫)', '을유사온서(乙酉司溫署)'명 매병, 백자와 도기 매병, 중국 용천요, 자주요 매병 등 쉽게 볼 수 없는 다양한 유물이 전시된다.

매병은 '선화봉사고려도경'의 기록에서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무덤벽화, 회화를 통해서도 술과 관련된 용기, 즉 주병(酒甁)으로 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연회장면에서 부엌과 같이 식탁 옆이나 상차림을 위해 음식 준비를 하는 공간에서 매병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때 매병 입구는 흰색의 뚜껑으로 덮혀 있는데 녹색으로 칠해진 매병과는 다른 흰색이어서 뚜껑은 도자기가 아닌 다른 재질로 만들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림을 통해서 매병은 주자나 병에 술을 옮겨 담기 전에 술을 대량으로 담아두는 술통, 또는 술단지의 용도였던 것을 알 수 있다.

매병은 중국에서 당대부터 제작되었지만 가장 성행한 시기는 송(宋), 요(遼), 금(金), 원(代)에 이르는 10~14세기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중기 청자의 발달기부터 절정기, 변화기에 걸쳐 기형과 문양의 변천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매병은 고려시대 11세기 후반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해 조선시대 15세기 말까지 지속적으로 생산되었다. 청자는 물론 백자, 도기로 제작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시간이 흐름에 따라 형태가 바뀌고, 문양의 종류와 구성이 달라지며, 문양을 표현하는 시문기법도 변화를 보인다.

고려 12세기 이후 중국의 매병과는 다른 고려청자만의 특징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한다. 중국의 매병은 주로 문양이 없거나 문양이 있는 경우 용, 모란, 매화 등이 음각, 박지(剝地), 첩화(貼花), 청화(靑花)기법으로 시문되었다. 그러나 고려시대의 매병은 용, 모란, 매화이외에 연화, 황촉규, 국화, 갈대, 대나무 등과 운학(雲鶴), 포도동자(葡萄童子), 포류수금(蒲柳水禽) 등 문양이 매우 다양하다. 고려시대에 이미 겨울의 추위를 견디는 송(松), 죽(竹), 매(梅)를 고결한 선비의 절개에 비유한 세한삼우(歲寒三友)의 개념이 있었다.

또한 고려 문인들의 시에서는 모란은 봄, 연꽃은 여름, 국화는 가을, 매화는 겨울을 상징하는 의미로 쓰인 것을 볼 수 있다. 하나의 그릇에 사계절을 담아 표현하기도 하고, 매화는 대나무와 같이 시문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청자의 형태와 문양은 자연의 동·식물을 가능한 사실 그대로 표현하고자 하는 자연주의적 세계관에서 비롯되었고, 이 문양들은 각각 당시 사회문화적인 상징성을 담고 있다는 점이 중국청자와 다른 고려청자만의 특징이기도 하다.

용은 대표적으로 왕권을 상징하는 문양이지만 모란도 마찬가지이다. 당시 중국 송대에는 물론 고려사회에서도 모란은 귀족들의 품종개량 왕요황은 중국 송대에 '瑞牡丹'이라고 하여 '상서로운 모란'은 하늘이 내리는 위정자(爲政者)의 선정(善政)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실제로 모란의 수많은 품종 가운데 '요황(姚黃)'은 모란꽃 중에서도 가장 진귀한 품종으로, 요황은 황제에, 위자(魏紫)라는 품종은 황후에 비유될 정도로 유명했다. 실제로 요황은 북송대 황제에게 올리는 진상품이었다. 요황과 관련된 내용은 이규보(李奎報), 이색(李穡) 등의 고려 문인의 모란 시에서도 많이 인용되었다. 또한 여름철에 피면서 노란색의 엷은 꽃잎이 특징인 황촉규도 모란처럼 왕권을 상징하는 의미가 확인된다.

청자 매병에 묘사된 구름, 학, 소나무, 거문고 등의 도상을 구성하는 요소는 당시 고려 문인들의 시에서도 신선과 관련된 소재로 언급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운학문(雲鶴文)이다. 운학문은 12세기부터 14세기까지 오랜 기간 동안 다양한 기법으로 청자에 시문되었는데, 고려 사회의 도교적 성향을 나타낸 대표적인 문양이다.

 

◈국화모란버들갈대 대나무무늬 매병
국화모란버들갈대 대나무무늬 매병은 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 마도馬島에서 마도2호선이라 명명된 고려시대 선박에서 출수되었다. 참외 모양처럼 몸체를 6개의 면으로 음각하여 분할하였다. 상하 종속문양으로 번개무늬와 연꽃잎蓮瓣文무늬를 상감하고, 몸체 중심의 주문양은 능화형菱花形 창 안에 모란, 국화, 황촉규, 갈대, 버들, 대나무 등 여섯 가지의 문양을 표현하였다. 각각의 문양은 유사한 구성으로 조합되어 있다. 수생식물이 아닌 문양에도 모두 아래쪽에는 서로 마주보며 헤엄치고 있는 오리 2마리를 배치했고, 꽃 종류는 위쪽에 나비, 버들은 새를 한 마리씩 배치하는 정형화된 문양구성을 보여준다.

매병과 함께 출수된 죽찰에는 앞뒷면에 "중방도장교오문부(重房都將校吳文富)", "택상진성준봉(宅上眞盛樽封)"이라고 쓰여 있어 매병의 이름과 매병에 담긴 내용물의 종류, 내용물을 받는 수취인의 이름까지 확인할 수 있다. 고려중기에 당시 매병을 '樽(준)'이라고 했고, 이 매병에 참기름(眞油)을 담아 보낸 것이다. 이 준을 받는 사람은 무신정권기의 최고 권력기관인 중방(重房)에서 도장교(都將校)라는 무관직에 있었던 오문부(吳文富)라는 사람이었다.
 

◈용무늬 매병
용무늬 매병은 높이가 52.5㎝에 달하는 대형의 매병이다. 구연의 지름이 상대적으로 넓은 편이며 목이 짧고, 몸체 하단이 길어진 형태이다. 어깨의 여의두如意頭무늬와 몸체 하단의 이중으로 된 연꽃잎무늬가 상하 문양대를 구성하고 있으며, 중앙에 용과 구름을 전체 면에 가득 차도록 배치하였다. 용은 위풍당당하게 여의주를 오른쪽 앞발에 쥐고 몸을 비틀어 서 있는 자세이다. 용의 비늘은 흑백의 상감 선을 교대로 빽빽하게 장식해 화려함을 배가시켰다. 주변으로 구름무늬가 상감되어 있는데, 외곽선은 흑상감으로, 내부의 세부표현은 백상감으로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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