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대나무와 동고동락, 죽공예품 외길 인생을 걷다
60년 대나무와 동고동락, 죽공예품 외길 인생을 걷다
  • 김영미 기자
  • 승인 2017.05.26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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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포커스] 한평생 대나무와 함께한 강진읍 신풍마을 김오천 씨

손가락이 성한 곳이 없다. 고향을 지키며 허름한 농가주택에 머무르면서 칠순을 넘긴 현재도 그는 대나무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15살 때 대나무를 만졌으니 올해로 60년째 대나무를 떠나지 못하고 외길 인생을 걷고 있는 것. 그는 강진읍 신풍마을 김오천(75)씨다.

그의 손에는 훈장 같은 상처들이 손마디 등에 새겨져 있고, 오른쪽 중지손가락은 휘어져 있다. 60년간 최고의 대나무 제품을 만들고자 대나무와 씨름한 탓이다. 고향을 떠나지 않고 대나무에 매달리며 한 눈 팔지 않는 그가 처음 대나무로 제품을 만들겠다고 뛰어든 것은 열다섯 살이 되던 1957년. 어린시절 생활이 어려웠던 그는 8살 때 넘어져 오른쪽 다리가 부러졌지만 치료받지 못한 후유증으로 지팡이에 의지해 집안일을 돕고 남의 집 일과 품팔이 생활을 했다.

당시 마을주민 성채곤 씨가 담양에서 대나무공예기술을 배워왔다. 이에 김 씨는 직업으로 삶고자 배우러 성채곤 씨를 찾아갔고 인연이 돼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15살 김 씨는 집안 잡일부터 도우면서 어깨 너머로 하나씩 익히며 기술을 전수 받았다. 하지만 대나무를 수없이 쪼개고 표면을 곱게 다듬으면서 손을 베어 피가 나는 고된 작업은 어린 김 씨를 좌절하게 만들었다.

시간이 갈수록 손바닥과 손마디는 굳은살이 박히고, 손가락 지문은 닳아 없어졌다. 또 대나무 껍질을 벗기는 과정에 이빨을 사용해 잇몸이 퉁퉁 부어 음식물을 씹는 것도 힘들었다. 또한 작업은 오랜시간 앉아서 해야 해 장애를 가진 오른쪽 다리에 마비 증상까지 찾아왔다. 대나무 제품을 배우는 현실이 녹녹치 않았지만 포기는 없었다.

그런 고생을 10여년 동안이나 하고 독립을 해 나왔다. 당시는 각 가정에서 각종 대나무제품을 생활 그릇으로 사용하던 시기였다. 밤새도록 만든 솜씨 좋은 그의 대바구니 제품은 오일장에 내다팔았고 금세 동이 났다. 점차 자신이 만드는 제품은 소문이 났고 전남을 비롯해 멀리 경상도에서까지 찾아왔다. 주문도 늘었고 장인정신으로 버텨온 자신이 뿌듯했다.

김 씨는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새 기술을 더 배우고자 대나무공예품을 만드는 벌교 등 지역을 찾아가 배웠다. 대나무 제품 만들기를 배우려는 10명에게 전수도 해주었다. 이와함께 그가 내놓은 제품의 인기는 더 많아졌다. 안심하던 그때 생활고가 그의 생활을 덮쳐 왔다.

경기도 제품 대량 구매자에게 거금 1천만원을 떼인 것. 이를 시작으로 제품을 주고 돈을 못 받는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급기야 제품을 만들 밑천이 없어 위기가 닥쳤다. 외상으로 대나무를 구입해 제품을 만들어 팔면서 갚아 나가며 신용으로 꿋꿋이 버텨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70년대에 플라스틱제품이 나오면서 점차 대나무 생활제품이 외면 받기 시작했다. 만든 제품을 들고 시장에 나갔지만 되가져오는 날이 많았다. 그만 둬야 할까 고민을 하다 살아남고자 다른 지역으로 새로운 기술을 배우러 갔다. 고흥녹동을 찾아가 김 채취 발을 만드는 법을 배웠고, 진주에서 인삼밭에 납품하는 대나무 기술도 익혔다.

이러한 기술을 총 동원해 제품을 만들면서 사라져 가는 대나무공예를 잇고 있다. 인내심으로 버텨온 김씨의 외길 인생은 앞으로도 살아 있는 동안은 내내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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