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아직 어리기만 한 딸이 대학생이 되어 떨어져 지내니, 도모할 것이라곤 끼니 챙겨먹고 밤길 조심하고 문단속하라는 동어 반복이 전부인 것이 아쉽다. 기침을 살필 수 없으니 무슨 생각이 자라고 있는지, 더불어 위험해보이기 짝이 없는 그 세대를 함께 가늠해 볼 겸 딸에게 요즘 무슨 책을 읽고 싶은가 물었다.
 
<<Mansplain: Man+explain>>- 제목을 이해하는 순간 남편이 먼저 떠올랐다. 70년대 대학을 다닌 남편은 결혼 초 만해도 '여자들은 다 새 대○리' 라는 진심어린 취중농담으로 온순한 나를 격동해서 몇 번의 젠더 논쟁을 했던 기억이 있다. 과연 내 남편의 마음에만 박혀있는 화석이겠는가?
 
저자 리베카 솔닛(Rebecca Solnit)은 예술평론과 문화비평을 비롯한 다양한 저술로 주목받는 작가이자 역사가이며, 1980년대부터 환경·반핵·인권운동에 열렬한 현장운동가다. 2010년 미국의 대안잡지 『유튼 리더』가 꼽은 '당신의 세계를 바꿀 25인의 선지자' 중 한명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이 책은 좀 특별하다. 책은 작고 가볍지만 9개의 에세이로 이어진 주제는 작가의 이력이 말해주듯 결코 편하지 않다. 그 첫 이야기가 '여자를 가르치려 드는' 우월한 족속 맨스플레인의 일화에서 시작된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특히 남성이 여성에게 거들먹거리거나 잘난 체하는 태도로 설명하는 것'을 가리키는 합성어로 당시 지구촌 여성들이 열렬히 호응했던 신조어 '맨스플레인'의 발단이 된 글이다.
 
이어지는 8편도 세상을 남과 여, 빈부, 인종, 권력의 양분된 형태로 인식하고, 특히 그 모든 것을 개별적 일화로만 보고 젠더에 주목하지 않는 점을 지적하는 등 작가의 다양한 편력 중 페미니즘 요소가 충만한 글을 엄선한 것이다. 모든 강한 것들이 약한 대상에 가하는 억압과 폭력이 난무하는 세계 - 지구촌 곳곳의 낯선 슬픔과 절망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이런 어둠들은 지식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는 본질적인 미스터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고 토로한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_ 리베카 솔닛 지음

 
대부분 사건사고의 피해자가 여자라는 관점에서, 약자=여자, 강자=남자라는 논리의 비약이 이루어지는데 작가 특유의 소요하듯 움직이는 생각을 따라가다 보면 전혀 지나치지 않은 편견임을 알게 된다. IMF기금을 통해 빈국을 장악하려는 IMF나 전쟁을 위협하는 무기를 비롯하여 선진부국들이 경제적 지원이라는 명분 아래 약소국을 통제하는 것을 일련의 폭력으로 규정하는 목소리에는, 우리가 일상에서 늘 마주하는 작은 폭력이 실은 이 양분된 세계의 거대한 구조적 폭력과 닮아있음을 문득 발견하도록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황혼녘을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한다. 이 세 어절이 주는 야만적, 신화적 상상!! 자유민주주의의 표본 국가 미국에서조차 오늘도 5초마다 한명의 여성이 폭력을 당하고 있는 현실에서 페미니즘이 가야 할 험난한 먼 여정을 두고 맞이하는 시간의 이미지와 중첩된다. 도태되든지, 공존하든지, 변신하든지!
 
성(性)차별 문제가 아닌, 약자 편에 놓인 한 인간으로서의 고유한 권리 회복을 위해 우리 모두 남성성이 주는 위협에 대해 한 번쯤 성찰해 봄직하다. 특히 책표지이자 제5편 <거미할머니> 첫 장을 장식한 아나 테레사 페르난데스의 사진을 꼭 보시라, 여성을 사라지게 하는, 어머니를 말소하고, 누이를 지우고, 아내를 삭제하는 장막.......의 충격만으로 일독의 효과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