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작가 한 명이 그리스를 알리고 마을을 살린다"
[특집] "작가 한 명이 그리스를 알리고 마을을 살린다"
  • 김응곤 기자
  • 승인 2016.11.11 16: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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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문화 관광의 현재와 미래 <2> '카잔자키스'를 품에 안은 크레타 사람들

그리스는 천개의 얼굴을 지닌 나라로 불린다. 1만6천km를 훌쩍 뛰어 넘는 해안선과 6천여 개(유인도는 220여개)에 이르는 섬은 다양한 지형과 자연의 미를 만끽할 수 있는 천혜의 보고다.

깎아지른 절벽 사이로 스며드는 코발트빛 바다는 마치 이 세상의 풍경이 아닌 것처럼 신비롭기까지 하다. 기후에 따라 각 섬마다 다양한 역사 모습과 풍경을 자랑하고 있는 것도 매력이라면 매력이다. 때문에 그리스를 즐기는 방법도 각양각색이다. 역사와 문화, 생태, 음식 등의 다양한 테마는 물론 비행기나 기차 혹은 크루즈 등 교통수단에 따라서도 다양한 색깔의 여행이 가능하다.

▣글 싣는 순서 
1. 에코 아일랜드를 설계하다...통영 연대도 
2. '카잔자키스'를 품에 안은 크레타 사람들 
3. 파란지붕의 특별함...산토리니 섬 
4. 가장 멋진 어촌마을...'미코노스'로 떠나다 
5. 강진 생태관광을 찾아서

그리스 최대 섬 크레타 그 속에 녹아든 '카잔차키스'
지자체 지원 없이도 박물관 운영...마을 주민이 '든든한 후원자'

그중 에게해의 남단 동서로 길게 뻗은 크레타(Crete)섬은 그리스에서 가장 큰 섬이자 지중해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섬이다. 면적은 8천336㎢로 제주도의 약 4.5배 크기다. 서구 문명의 근간이라 여겨지는 미노아 문명의 탄생지이자 신들의 아버지 제우스가 태어난 곳이며 그리스의 대문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고향이기도 하다.

지금도 이곳에는 베네티안 성벽으로 둘러싸인 마르티네고 요새 제일 높은 곳에 그의 무덤이 있다. 헤라클리온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좋은 자리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무덤 또한 많은 사람이 찾는 관광명소 중 한 곳이다. 관광객이 아니더라도 벤치에 앉아 책을 읽거나 산책을 나온 동네 사람들도 많다. 소박하면서도 자연의 멋스러움을 한껏 품은 묘비에는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라는 그의 유명한 문구가 새겨져 보는 이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어릴 적엔 '희랍의 조르바'라고도 불렸다. 유산으로 크레타 섬의 광산을 물려받은 버질이 자유분방한 그리스 노인 조르바를 만나 경험하는 인생의 변화가 줄거리다. 조르바의 지극히 현실적이고 자유로운 사상과 가치관은 책의 또 다른 매력이다.
 
카잔차키스는 실제로 크레타에서 광산사업을 하다가 파산한 적이 있는데, 소설은 그때 만났던 실존 인물 조르바와의 추억을 뼈대로 쓴 것이다. 그의 대표작 '그리스인 조르바'는 세계 50개 언어로 번역돼 출간됐고 이 책은 그리스를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크레타 주도 이라클리오 시내에서 남쪽으로 30여분 거리에 있는 미르티야(Myrtia)마을에는 카잔차키스 박물관이 있다. 200여 가구 600여명이 살고 있는 조그만 마을이다.
 
마을은 카잔차키스의 아버지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며 박물관은 카잔차키스의 아버지가 자란 곳에 건립됐다. 건립 당시인 1983년에는 소규모로 시작했지만 2009년에 리모델링해 현재는 2층 규모로 탈바꿈했다.

미르티야 마을 내에 자리한 카잔차키스 박물관의 모습.

 
이곳에는 카잔차키스 일생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수많은 책과 그의 각종 서류와 사진, 부인의 흔적이 남아있다. 전시실 또 다른 공간에는 카잔차키스가 쓰던 서재와 응접실 겸 집필실을 옮겨 재현해 놨다.

카잔차키스가 쓰던 원목 책상에서 그의 온기가 느껴질 정도다. 에피 케팔나키 박물관장은 "이곳에는 카잔차키스와 카잔차키스의 작품을 흠모하는 사람들이 전 세계에서 찾아오고 있다"며 "한국인 관광객도 제법 많이 찾고 있고 기부나 기념품 구입을 통한 후원도 많이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물관에 따르면 연간 1만명 안팎의 관광객이 카잔차키스 박물관을 관람하기 위해 미르티야 마을을 찾는다. 말 그대로 작가 한 사람이 책 한 권으로 그리스를 세계에 알렸고 한 마을을 살리고 있는 셈이다. 갈수록 고령화되어 가고 있는 작은 마을에 작가 한 사람이 숨을 불어 넣고 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니다.
 
에피 케팔나키 관장은 "주민들은 카잔차키스의 뿌리가 이 마을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고 카잔차키스와 박물관에 대한 자부심도 매우 크다"며 "마을 전체를 카잔차키스 박물관으로 조성하는 게 바람이자 목표다"고 설명했다.

박물관 입장료는 2유로다. 개인이 운영하는 박물관이라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은 일체 없다. 때문에 후원과 기념품 판매로 운영비를 보태고 있는데 누구보다 든든한 후원자는 바로 마을사람들이다. 이곳 주민들은 후원금을 기부하기도 하고 책을 정리하는 데 도움을 주는 식으로 박물관 운영의 이런저런 일들을 돕는다. 때로는 박물관을 찾는 관광객들을 안내해주기도 하고 직접 수확한 과일을 서슴없이 건네기도 한다.
 
이에 대해 현지 가이드는 "크레다 사람들은 모두를 다 같은 둥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여긴다. 주민이든 관광객이든, 서양 사람이든 동양 사람이든 마찬가지다"면서 "그만큼 공동체정신을 중요시하는 공간이 크레타이고 그러한 정신을 소중히 여기는 이들이 미르티야 사람들이다"고 설명했다.
 
실례로 공동기획취재단이 동네를 한 바퀴 둘러보는 동안에도 문밖에 앉아 휴식을 취하던 노인들은 이런저런 안부를 물으며 관광객의 발걸음을 환대했다. 또 다른 이는 자신의 아들이 직접 따온 석류를 통째 건네며 마을을 찾아준데 대해 오히려 감사의 인사까지 전할 정도다.
 
에피 케팔라키 박물관장은 "올해 여름에 큰 축제를 열었는데 마을사람들 도움이 없었더라면 아마 치를 수 없었을 것"이라면서 "주민들은 관광객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벽화도 그리고 청소도 하는 등 마을을 더 아름답게 꾸미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계속> 

미르티야 마을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벽화를 그리거나 주변 환경을 꾸며가며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 인터뷰 - 스타브로스 아르나우타키스 크레타 주지사
"주민 스스로가 손님접대에 온 힘"
 
크레타는 섬은 해안도로만 1천km가 넘고 해발 고도 2천m가 넘는 산과 유럽에서 가장 긴 계곡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무한한 자연과 생태의 보고를 자랑한다. 크레타에서만 볼 수 있는 꽃의 종류만 해도 150종이 넘을 정도다.
 
아르나우타키스 주지사는 "이곳은 찬란한 역사문화 유적에 천혜의 자연경관까지 갖추면서 섬 전체가 열린 박물관으로 평가받고 있다"면서 "오늘날 연간 4~500만 명의 관광객이 크레타를 찾고 있으며 그 수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고 설명했다.
 
크레타주는 요즘 들어 관광객이 오면 유적지만 아니라 시골 마을이나 자연경관을 찾아갈 수 있게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의 관광협회에 홍보하고 있다. 크레타도 시골 소득 감소와 고령화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시골마을의 지속적 활성화 방안으로 생태관광을 적극 도입키로 한 것이다.
 
아르나우타키스 주지사는 관광객 증가에 따른 주민들과의 마찰문제에 대해서는 '고민'이나 '과제'의 대상은 아니라는 반응이다. 관광객 증가로 인한 주민들의 불편사항도 드물다고 덧붙였다.
 
아르나오타키스 주지사는 "크레타에선 관광산업(30%)이 농업(50%)다음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손님 접대를 잘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 그리스 사람들의 의식"이라며 "결국에는 공동체의식의 문제고 이를 어떻게 만들고 풀어가는 것 또한 주민들 스스로가 주도해 이끌어 나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아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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