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대구면 정수사, 고려시대 도공들 혼이 깃들다
[특집] 대구면 정수사, 고려시대 도공들 혼이 깃들다
  • 김영미 기자
  • 승인 2016.08.15 1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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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무명 도공 추모 기원제 및 제44회 청자축제 성공 기원제

청자를 굽던 도공들의 정신적 참선 귀의처
1961년부터 무명도공 추모제, 강진청자축제 성공 발원


대구면 용운리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정수사. 제44회 강진청자축제가 개최되는 청자촌에서 약 6㎞정도 떨어진 천태산 자락에 위치한 정수사는 오늘날 천년의 역사를 잇게 한 고려 도공들이 참선하는 정신적 귀의처 역할이 되어 주었던 사찰이었다. 이곳에는 고려 도공들이 쪽빛 하늘, 구름, 학 등의 문양을 상감으로 그려 천년을 이어온 세월이 간직돼 있다.

축제를 하루 앞둔 지난 29일 고려시대 선조 무명 도공들의 안식과 넋을 추모하기 위해 정수사 도조사에서 무명도공 추모제 및 제44회 강진청자축제 성공 기원제가 봉행되었다.

추모제 및 기원제에는 자신의 혼까지 불살라 한평생 도자로 삶을 살다간 이들의 넋을 위로하는 천혼문이 읊어져 축원됐다. 이어 무명도공들의 영원한 안식을 비는 지전춤이 봉행됐다.

찬불가가 불려지는 가운데 정수자 수현 스님이 도조사 경내에 고려 무명 도공들의 넋을 위로하고자 세워진 혼불등에 불을 밝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고려청자를 만들며 인고의 시간을 보냈던 도공들의 숭고한 삶을 기렸다. 또한 지역의 자랑이자 최대축제인 강진청자축제 행사 성공개최를 축원하였다.

추모제에는 강진원 군수, 황주홍 국회의원, 김상윤 군의장, 윤부현 청자축제추진위원장, 각 사찰 주지스님, 도예작가들이 참석해 무명도공 위패 앞에 차를 올리고 헌다해 추모했다.

추모제 및 기원제에는 윤부현 청자축제추진위원장, 이막동 강진청자협동조합이사장, 칠량초 5학년 임자인 학생이 대표로 차를 헌다하고, 술잔을 올렸다. 추모제에는 고려국 무명 도공의 신위께 제44회 강진청자축제를 맞아 그동안 베풀어 주신 은덕에 감사하고, 행사의 무사와 성공적 개최를 기원하면서 정성을 다하여 뜻을 이어가겠다는 다짐이 있었다. 또 대구면 출신 윤형순 향우가 자작시 '산사의 소식'을 추모시로 무명도공 위패 앞에 바쳤다.

정수사는 구군지(舊君誌)에 의하면 805년(애장왕 6)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창건 당시에는 이곳의 계곡을 중심으로 양쪽 언덕에 묘적사와 쌍계사 두 사찰이 건립되었고 묘적사에는 천불상을 봉안하였으나 중세에 이르러 왜구의 침략으로 모두 불에 타 소실되었다. 폐허가 되었던 것을 만력 2년 갑술년(1574)에 산인 사민이 옛 절 그대로 중수하면서 정수사라 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01호로 지정된 대웅전 등이 있다. 정수사에서 3㎞ 떨어진 곳에는 도자기를 만들던 사람들이 살던 고려청자 도요지인 당전리가 있다. 정수사가 소재한 천태산 기슭 10리골 수백기의 가마에서는 도공들이 도자기를 굽기 위한 불타는 연기가 하늘을 가리웠다고 전해진다. 고려 도공들은 자아를 버리고 혼까지 불살라 상감청자를 만들어 도자문화의 성지를 이루어 나가 오늘의 역사를 있게 한 것.

이에 고려 무명도공들에게 500년간이나 안식과 지식을 전하던 정수사에는 조선후기인 1562년에는 내암이 26동, 외암이 25동이나 되었다. 강진고려청자와 땔래야 뗄수 없는 정수사는 도공들이 작품을 구상하거나 가마에 불을 지필 때면 찾아와 기도하고 참선으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 후 고려청자를 만들던 정신적 귀의처 역할이 되어 주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정수사에는 자체적으로 지난 1961년부터 50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름 없이 스러져간 고려 무명도공들의 장인정인과 넋을 달래기 위해 도공 추모제를 봉행해 왔다.

이후 지역에서 강진청자축제가 개최되면서 군 축제팀과 군민이 함께 청자축제 하루 전날에 고려무명도공제를 봉행해 성공을 기원하면서 그들을 추모해 온다. 이와함께 정수사에서는 지난 97년 경내 도조사에 높이 80㎝ 넓이 35㎝의 무명도공 위패를 모셨다. 지난 2006년에는 도조사 앞에 연중 도공들의 청자에 대한 열정을 밝힌다는 의미를 담은 청자로 제작한 석등 높이 2m의 혼불등을 세웠다. 이 혼불등에는 매년 청자축제를 하루 앞둔 날 불을 밝혀 축제성공을 축원하고 이름 없이 살다간 고려 무명도공들의 넋을 위로해 온다.

고려도공무명도공제가 봉행된 정수사 도조사를 오르는 길목에 소담스럽게 피어났다 낙화한 상사화가 붉은 빛으로 수를 놓았다. 절에서 상사화를 심는 이유는 스님들이 탱화를 그릴 때 상사화 꽃은 말려 물감을 만들고 뿌리는 즙을 내어 칠을 하면 좀이 슬지 않고 색도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공들이 상감청자에 들어간 붉은 진사를 상사화에서 떠올리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상사화는 서로를 그리워 하지만 만날 수 없는 숨바꼭질 같은 사랑이다. 고려시대 도공들이 자신의 혼까지 불살라 한평생 도자로 살다간 삶이 상사화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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