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동마을로 전해진 다산의 흔적을 만나다
귤동마을로 전해진 다산의 흔적을 만나다
  • 김철 기자
  • 승인 2016.08.15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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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유물특별전] 30여점 유물 9월 25일까지 공개... 다산금속 윤영상 회장 소장 유물 특별전

도암면에 위치한 다산기념관에서는 제44회 청자축제를 맞아 지난달 28일부터 9월25일까지 59일간'다산금속 윤영상 회장 회장 소장유물 특별전-다산과 강진, 다산을 품은 귤동'이라는 주제로 특별전을 개최했다.
 
이번 전시는 다산기념관에서 개최하는 11번째 특별전으로 전시유물은 도암출신의 향우인 다산금속 윤영상 회장의 소장유물로 구성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윤영상 회장은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유물 76점을 제공했고 보물1683-1호인 '다산사경첩'을 비롯한 공개된 15점의 서첩들과 61점의 미공개 간찰들도 포함되어 있다.

그동안 다산기념관에서는 특별전을 위해 미공개 간찰 61점에 대해 번역을 작업을 추진했고 이번 특별전에서는 이들 유물 중 30점을 공개했다. 전시 유물의 대부분이 귤동마을의 해남윤씨 집안 특히, 다산의 제자 윤종진과 관련된 자료이다. 유물을 제공한 윤영상 회장은 윤종진의 6대손이다.
 
이번 전시회는 귤동마을을 바탕으로 한다. 도암면 만덕리에 소재한 귤동마을은 다산이 강진 유배시설 지내고 수많은 저술을 남긴 다산초당이 자리 잡고 있는 곳이다. 1914년 이전까지 유자동, 유자리 등 단일 행정마을로 규모를 유지하다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으로 귤동마을 인근이 덕산리, 보동리, 마점리와 병합해 만덕리가 된다.

마을이름이 유자동에서 귤동마을로 바뀐 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일제강점기에 개정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소장 간찰들의 피봉에 수신처가 귤동으로 표기가 되어있어 최소 1800년대에는 귤동으로 불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전시회는 크게 3부로 구성됐다. 1부에서는 '다산과 귤동마을의 인연'으로 다산이 귤동마을로 들어오게 된 과정과 해배 이후 다산의 후손들과 귤동마을 해남윤씨와의 지속적인 교류를 살펴보고 이 두 집안의 관계를 뒷받침할 수 있는 3대에 걸친 다산 집안 간찰을 관람할 수 있다.
 
이시기의 유물로는 품석정서와 다산 간찰을 볼 수가 있다. 품석정서는 다산초당의 주변 열두곳 경관을 다산선생이 직접 시로 정리한 자료이다. 이 내용에 따라 다산초당 주변을 그대로 복원할 수 있게 했던 소중한 자료이다.

다산간찰은 편지의 곁봉투가 없어 수신자가 없어 누구에게 쓴 편지인지 알 수가 없지만 윤규로에게 보낸 편지로 추정된다. 편지는 윤종진을 통해 받았다. 생전에 만나기 어려움을 아쉬워하고 과거에 낙방하고 있는 윤종진을 위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다산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도 편지를 통해 알수가 있다.
 
2부에서는 귤동마을의 입향조인 윤취서와 다산을 다산초당으로 모셔온 윤규로에 이르기까지 귤동마을의 해남윤씨 내력을 알아보고 윤규로가 선현의 글씨를 모으고 다산이 발문을 쓴 '군현유묵'을 비롯한 귤동 해남윤씨 집안 관련 유물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주제를 '귤동 해남윤씨가'라고 잡았다.
 
유물로는 귤동마을에서 처음 생활한 윤취서가 아들에게 보낸 간찰이 있다. 비오는 날씨에 아들이 느린말을 타고 잘 도착했는지를 묻고 여러가족의 병환을 염려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병이 잦은 장마철에 가족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따스한 마음이 그대로 담겨있는 편지이다.
 
3부는 '다산의 제자 순암 윤종진'으로 그동안 다산의 제자인 황상, 이청, 윤정기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언급이 적었던 윤종진에 대해 알리고 있다. 다산이 윤종진의 호를 지어준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 '순암호기'를 비롯하여 윤종진이 병인양요 때 의병을 모아 창의한 사실을 뒷받침할 수 있는 당시 어영대장의 간찰과 강진·해남·전라병마절도사들과 교유하였던 간찰 등을 통해 당시 강진 지역내에서 윤종진의 위상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윤종진은 윤규로의 넷째아들로 1803년 태어나 1879년 생을 마감할때까지 귤동마을에서 생활했다. 6세에 다산의 제자가 되었고 왜소한 체구에 큰뜻을 품지못했던 윤종진에게 맑고 순수한 사람이 되라는 의미에서 직접 순암(淳菴)이라고 호를 지어줬다.
 
유물로는 이현직 간찰이 보인다. 병인양요가 일어나자 윤종진이 의병을 일으켜 장흥에 이르렀지만 병인양요가 끝나버렸다. 이에 다시 어영대장 이현직이 직접 윤종진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며 훗날 변고가 있을 경우 의병을 일으켜달라고 부탁하는 내용의 간찰이다. 윤종진은 이후 광양에서 민란이 일어나자 이현직의 부탁대로 의병을 일으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번 전시회는 도암면 귤동마을 역사와 그곳에서 생활했던 다산, 그리고 제자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는 특별전으로 충분하다.
 
최종열 다산기념관장은 "이번 전시는 다산과 귤동, 더 나아가 강진의 지역사회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로, 다산과 관련한 새로운 스토리 및 강진의 문화콘텐츠 개발의 기초가 될 수 있는 특별전이다"고 밝혔다. 

왼쪽부터 이현직 간찰, 순암호기, 품석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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