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감동의 대한민국
아, 감동의 대한민국
  • 강진신문 기자
  • 승인 2002.09.0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용복 (서울)영동농장 회장
2002년의 6월은 정말 위대했다. 나이를 생각해서 애써 억제하려 해도 어디선가 솟아나는 나도 모를 신명에 속절없이 나를 내맡겨야 했던 달이었다.

그럴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흐드러진 잔치 마당이 이땅에서 벌어진 것이다. 코흘리개 손자와 허연 머리에 침침한 눈을 연신 문질러야 하는 칠순 팔순의 할아버지가 완전히 한 마음으로 하나가 되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한 덩어리로 얼싸안고 한 목소리로 ‘대~한민국’ ‘오~필승 코리아’를 소리높이 외칠 때엔 세대차도 지역 감정도 끼여들 틈이 없었다.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우리에게도 이런 날이 있을 줄이야 차마 짐작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한 조각 그늘도 없이 온 겨레가 그저 즐겁고 오직 신나기만 한 그런 잔치판이 언제 있었던가? 어떤 일에든 빛과 그늘이 있다지만 월드컵 기간 동안, 우리 선수들의 뛰는 모습에 열광하고 응원하는 그 순간에는 조금도 그늘이 없었다.

다소 과장한다면 온 겨레가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던 광복의 기쁨 다음에 처음 맞이하는 환희가 아니었을까?

이제 월드컵이 끝난 지도 두 달이 지났다. 여름 장마와 태풍도 거의 지나고 이제 들판에는 수확을 기다리는 곡식이 익어가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 월드컵도 지난 88년의 서울올림픽처럼 이제 우리의 추억 속에, 그리고 역사속에 묻히는 듯하다.

거리로, 광장으로 몰려나와 한 덩어리가 되어 얼싸안고 소리지르던 수많은 군중도 이제 제 자리로 돌아가 각자의 일상에 몰두하고 있다.

정말이지 겉으로는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 듯하다. 월드컵 4강 신화를 앞에서 이끌었던 히딩크 감독은 자기 조국 네덜란드로 돌아가 간간이 매스컴으로 소식을 전해 올 뿐이다.

녹색 잔디밭을 야생마처럼 내달리며 온 국민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젊은 선수들도 제각기 소속팀으로 돌아가 자기역할에 충실하고 있고, 거리에서 경기장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나부끼던 크고 작은 태극기의 물결도 모두 제 주인을 따라 어딘가에 다소곳이 보관되어 있으리라.

하지만 아무 것도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이는 것은 다만 겉모습일 뿐이다.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6월 하늘에 메아리치던 함성이 우리에게 어떤의미였는지를 우리는 어떻게 하나가 되었고 그 하나 된 힘이 아무 것도 달라진 것 없는 듯한 일상 속에서 어떻게 꿈틀거리고 있는지를 그 힘이 우리에게 어떤 보이지 않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를.

무엇보다도 월드컵 이후 나는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젊은이들을 보게 되었다. 서울에서도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강남 로데오 거리로 아침마다 출근하는 덕에 보고 싶지 않아도 현란한 차림의 젊은이들을 수시로 보게 되는 것이 나의 일상이다.

월드컵이 끝난 이후 ‘히딩크식 훈련’, ‘히딩크식 경영’이라는 말이 널리 퍼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기초를 튼튼하게 만드는 일에는 다소 소흘했던 것이 사실이다. 오랜 시간과 정성을 필요로 하는 그 일에 마음을 주기에는 우리가 처한 현실이 너무나 척박했던 것도 사실이다. 긴 시각에서 여유를 갖고 실수한 사람을 다독여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고 기다리기에는 우리 앞에 도사린 장애가 너무 다급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어느 새 사회생활을 함께 해나갈 수 있는 기초를 터득하고 있었음을 월드컵 기간에 여실히 보여 주었다. 함께 하기 위해서 나를 조금 양보하는 공동체 의식, 지는 것도 게임의 일부라는 깨끗한 승부 의식, 무엇인가를 자기 것으로 누리기 위해 기꺼이 땀 흘리고 준비하는 자발적 참여의식을 그 아이들은 보여주었다.

어느 사이엔가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기 위한 기초를 건실하게 체득하고 있는 저 젊은이들이 바로 우리의 꿈이고 미래가 아닌가?

하지만 기초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기초만으로 되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기초는 말 그대로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한 밑천일 뿐 그것이 곧 일의 완성이나 성취를 말하는 건 아니다. 그 기초 위에 생활인으로서의 다양한 지식과 교양과 기능을 쌓아야만 꿈과 목표를 이룰 수 있다.

월드컵 기간에 축구를 향해 내뿜었던 힘과 열정을 이제 자신의 성장을 위해 쏟아야 할 때다.

아마 6월의 하늘을 달구었던 우리의 젊은이들도 지금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미래를 위해 비지땀을 흘리고 있으리라. 그저 철없고 경박해 보이기만 하던 젊은이들의 내면에 잠재해 있는 거대한 열정을 보았기에 나는 그들의 미래를 한 점 의심 없이 믿을 수 있다. 거리 응원을 나가도 당당하기 위해 학교 수업 시간에 더 열중했다는 어린 여중생의 말을 기억하기에 더욱 ale음직스럽다.

오늘도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를 지나는 젊은이들의 얼굴을 나는 관심있게 바라본다. 저들, 저 싱싱한 젊은 얼굴들이 어느 날에는 또 다른 분야의 홍명보가 되고 안정환이 되고 김남일이 되어 우리 앞에 우뚝 설지도 모른다는 가슴 설레는 기대를 안고.
누가 어떤 분야에서 무엇을 이루든 최고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설 때 나는 다시 한번 아낌없이 환호를 보낼 것이다. ‘대~한민국!’

우리의 아들딸이 다시 한번 심장이 터지도록 이 함성을 지르게 해줄날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가다듬고 있으리라. 나는 기꺼이 그들의 서포터스가 되고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