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의 옛날이야기가 '관광 상품'
강진의 옛날이야기가 '관광 상품'
  • 김응곤 기자
  • 승인 2015.04.26 14: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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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에 '청자유물' 부산에 '거북이' 눈길

강진의 역사이야기가 관광 상품 소재로 등장하면서 눈길을 끌고 있다. 여수 아쿠아플라넷은 청자를 소재로 한 테마관을 선보였고 부산 국립수산과학원은 '강진거북이'를 전면에 내세웠다. 지역민과 출향민들에게는 적잖이 반가운 이벤트다.

여수시 여수신항 인근에 위치한 '한화 아쿠아플라넷 여수'는 63씨월드(약 1천톤)의 6배에 달하는 규모의 아쿠아리움이다. 축구장 두 개 반 정도의 크기다. 4층 규모의 공간에는 각각의 테마에 따라 전시관들을 꾸며 놓아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좋아할 볼거리를 자랑하고 있는 곳이다.

요즘 이곳 3층을 둘러보면 강진 군민으로서는 꽤나 반가운 전시관이 눈에 띈다. 다양한 수중생물이 바다 속 풍경과 어우러져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는데 바닥을 보면 크고 작은 항아리부터 주전자까지 여러 종류의 청자 수십 점이 눈에 띈다.

청자상감운학문매병부터 청자상감모란문호, 청자어룡형주자 등 모두가 강진청자를 대표하는 것들이다. 대략 그 수가 40~50점은 될 정도로 제법 많은 양이다. 바로 옆으로는 '청자문화가 찬란하게 꽃 피우는 강진'이라는 제목과 함께 강진청자박물관의 사진과 관련 내용을 담은 배너가 보였다.

강진에서의 청자 제작시기와 발달배경, 태토와 기후 등의 제작여건과 환경을 소개하는 것을 시작으로 청자박물관의 역사와 기능, 역할 등에 대해서도 제법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보 및 보물로 지정된 청자의 80%이상이 강진에서 생산됐다는 사실을 알리며 다양한 체험시설로 관광객의 발길을 강진으로 유도하는 문구는 전시관과 어울려 근사함까지 묻어났다. 관광객도 관심을 보이며 발걸음을 멈추기를 계속했다.

이곳은 올해로 '신안 해저 유물'을 발견한지 40주년을 맞아 아쿠아플라넷 여수가 해저 유물을 재현해 지난 3월부터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테마명은 '다시 찾은 비색(翡色)의 꿈'이라는 게 아쿠아플라넷측의 설명이다. 등장한 청자는 전부 강진청자박물관에서 빌린 것들이다.

강진청자박물관 관계자는 "신안 해저 유물을 테마로 했다는 것에 아쉬움은 있었으나 당시의 해저상황을 재현하는 데 목적을 뒀던 만큼 청자 52점을 대여해줬다"며 "강진청자를 알리고 강진지역을 홍보하는 데 특별한 홍보기법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다만 아쿠아플라넷측은 강진청자를 소재로 한 전시관을 계획상 오는 5월말까지만 선보일 예정이라고 밝혀 사실상 다른 테마로의 변화를 예고했다.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에 있는 국립수산과학원에서도 강진의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챙길 수 있다. 지난 2011년부터 일반인들에게 공개된 바다거북 한 마리가 그 주인공. 거대한 유리전시관속에 박제표본으로 보관된 바다거북은 지난 1949년 도암면 송학마을 앞바다에서 한 어민이 설치한 그물에 잡힌 후 이승만 대통령에게 선물로 보내진 거북이다.

전시관 왼쪽 상단에는 '이승만 전대통령이 사랑한 거북이'라는 제목과 함께 강진군 도암면 학위리(지금의 송학마을 일대)에서 포획했고 일시는 1949년 3월24일로 표기하고 있다. 갑장은 110㎝, 무게는 173㎏다.

전시된 거북은 거북목 바다거북과에 속하는 붉은바다거북(학명 Caretta caretta)으로 당시 어민이 설치해 놓은 그물에 잡혔는데 정문기 박사에 의해 서구(瑞龜)로 이름 지어 졌다. 정 박사는 근대 어류학의 최고 권위자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서구(瑞龜)라는 이름은 '상서로운 거북이'라는 뜻이다. 당시에는 서귀라고도 불렀는데 경향신문 1956년 8월 7일자에는 '이 거북이가 잡히자 국내에 굉장한 경사가 있으리라고 하여 서귀라고 명명된 것은 다 아는 일이다'라고 전했다. 

거북에 관심이 많았던 이 전 대통령은 이 거북을 당시 부산 영도에 있던 부산수산시험장(현 국립수산과학원)으로 옮겨 기르도록 했으나 한국전쟁 후 병이 들어 결국 죽게 된다. 이에 상심한 이 전 대통령은 거북을 박제로 만들도록 한 뒤 경무대에 한동안 보관했다. 이후 박제거북은 1960년 이 전 대통령이 하야해 경무대를 떠나면서 부산수산시험장에 다시 보내져 보관되다 50년 만에 일반인들에게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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