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향 화백님 영전에
완향 화백님 영전에
  • 특집부 기자
  • 승인 2003.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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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아, 김영렬 화백님.
  이제 스스로 목숨보다도 종교보다도 더 사랑하시던 고향 산천을 두고, 어느 수려한 천상으로 그리도 바삐 소풍길을 가신 것입니까.
 

올 여름 무덥던 날, 북산 밑 높은 언덕 선생님의 금서당(琴書堂) 화실을 방문 했을때, 지난 날 원기왕성 울울창창하던 육신과 음성은 다 어디로 가고, 뼈 마디가 앙상한 손길로 내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으면서, 목울음의 쉰 목소리로 나 보고 빨리 고향에 오라면서 울먹이시던 선생님의 처절한 모습이 서언합니다.

 사실 천민자본주의 세태에서 깽판이 판 치는 삭막하고 황폐한 세상에서, 당신같은 바보스럽고(?) 순박하고 단순한 노화백이 한 분 쯤은 노송처럼 고향을 버티고 있어야, 갈수록 퇴락해 가는 우리 고장이 그나마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인데, 혈육이 떠난 것처럼 너무도 허전하고 그립고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이제 그 누가 상업주의를 떠나서, 모란이 피고 지는 내 고향 비취빛 청자골 산천을 눈물나게 보듬고 당신처럼 사실주의 수법으로 그리는 화가가 다시 있겠습니까.

 비가 오면 수련대는 집울타리 대나무, 눈꽃 속에도 불타는 동백꽃, 아침이 오면 「소낭구」에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까치 소리를 들으면서, 마당에 고목처럼 서서 강진 시가지를 내려다 보고, 성요셉 여학교 너머 만덕산과 은물결 반짝이는 강진만을 꿈꾸는 시선으로 눈빛을 빛내는 주인이 없으니, 뒷산 보은산 초목도 초겨울 비눈물과 함께 흔건히 울 것입니다.

 누가 뭐라하건 당신은 강진에서 만은 영원한 예술계의 장자이고 대부입니다.  생존시에는 화가로서 큰 명성을 떨치지 못했지만, 언제인가는 「고성」의 김수근 화백처럼 강진에 「완향 미술기념관」이 세워질 날이 꼭 있을 걸 믿습니다.

 이제 가시는 길에 한과 원을 접으시고, 이승에서의 아픈 기억이야, 아픈 사연이야, 아픈 작별이야, 울음타는 꽃상여야 모두 잊으시고, 천상에서는 추웁지 않고 따숩고 푸짐하게 편히 사시기 바랍니다.
 

가평땅에서 영면의 소식을 듣고 통곡하는 심정으로 엎드려 조사를 올립니다.

 삼가 명복을 빕니다.
                                      정 문 석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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