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농업정책과 농민대회
사설-농업정책과 농민대회
  • 특집부 기자
  • 승인 2003.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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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농업정책을 발표해도 농민들이 믿지 못한다. 지난 수십년간 농정에 대한 불신만 쌓여왔기 때문이다. 최근 노무현대통령이 앞으로 10년 동안 농업 지원에 119조원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어제 서울에서는 `우리농업사수·쌀지키기 농민생존권 쟁취 농민대회'가 열렸다. 전국 농민들이 모인 이 대회에 강진농민들도 400여명이 참가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노대통령이 약속한 119조원은 가히 천문학적인 액수다. 그러나 정작 농민들은 희망보다는 회의적인 반응이다. 재원 조달 방법도 의문시 되며 설사 재원을 마련한다 해도 농민들에게 돌아올 혜택이 과연 얼마나 되겠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YS정권 때 정부가 42조원을 지원하겠다고 한 뒤 13조원만 지원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차기 정권이 계속 이 약속을 지킬지에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10여년 전(92년) 우루과이라운드(UR) 때도 정부는 화려하고 거창한 청사진을 내놓고 62조원이란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지만 결과는 이렇다 할 성과없이 실패로 끝났다. 그로 인해 농촌은 25조원이란 엄청난 농가부채만 떠안은 채 점점 황폐해졌고 농민은 마침내 파산의 빈사상태에 이르고 말았다. 이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정부로서는 획기적인 농촌대책을 내놓지 않을 수가 없다. 더욱이 이번에 발표한 농촌지원대책은 FTA(자유무역협정), DDA(도하개발 아젠다) 협상, 쌀 재협상 등 농업개방 임박에 따른 농민들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나온 것이라고도 볼 수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정부는 이번 대책이 농업의 경쟁력을 살려 줄 것으로 믿어 적잖이 기대하는 모양이나 전문가들의 견해는 사뭇 달라 62조원이란 엄청난 예산을 퍼붓고도 실패로 끝난 92년도의 UR 농업지원의 재판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그런데다 이번에 내놓은 농업·농촌지원계획은 전업용 육성, 농가 수입원 다량화, 농촌관광산업 활성화, 농산물 수출산업 육성 등 10년 전에 나온 계획과 겹쳐 그게 그거라는 평을 받고 있다. 그리고 한국 농업이 자생력을 잃고 표류하는 것은 정부의 근시안적 정책과 경영 마인드를 갖추지 못한 농업계의 한계가 중복된 결과라는 중론이다.

94년 정부는 ‘10개년 계획’에서 2004년까지 벼농사, 축산업 등 경쟁력을 갖춘 ‘프로 전업농’ 15만 가구를 키우겠다 약속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구두선으로 끝나 현재 전업농은 128만 농가 중 9만 8600가구에 불과하다. 이러니 농민이 어떻게 허언과 식언을 밥먹듯 하는 정부를 믿을 것이며 그 정책을 지지 하겠는가.

정부의 농업 지원 예산이 대부분 기반 조성 사업에 투입될 경우 일부 건설업체들만 배 불리고 만다. 농민들의 부채 탕감도 금융권만 구제했을 뿐 농민들은 다시 또 빚더미에 올라앉게 만드는 악순환만 되풀이 된다. 농민들은 실질적인 지원책이 되도록 보다 믿을 수 있는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또 한·칠레자유무역협정(FTA)의 국회 비준 거부 등 정부와 농민들의 견해 차이가 너무 크다.

하지만 이번만은 정부가 책임지고 농촌과 농민을 위한 정책이 되도록 해주기 바란다. 그래서 ‘떠나는 농촌에서 돌아오는 농촌’이 되게 해야 할 것이다. 농촌이 살기 좋아지면 농촌을 떠났던 사람들은 다시 돌아온다. 농촌은 우리의 뿌리요 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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