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강진사랑, 강진교육을 더욱 빛내다"
"영원한 강진사랑, 강진교육을 더욱 빛내다"
  • 김철 기자
  • 승인 2013.11.08 1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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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인물상(아름다운 강진인 상)강진정미주식회사 김유홍 회장

34년간 강진고 장학금 총 1억5천여만원 기탁
다산동상, 영랑동상 건립...근면 성실한 생활 귀감

항상 근면 성실한 생활과 지역 학교에 수십 년째 장학금을 내놓으면서 지역사회의 귀감이 되고 있는 어르신이 있다. 바로 강진정미회사를 운영하는 김유홍(98)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김 회장은 1916년 1월 6일 강진읍 교촌리에서 아버지 김경문씨와 어머니 송경일씨 사이의 4남1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가정 형편이 넉넉한 편이 아니었던 당시 김 회장은 중앙보통학교(현재 중앙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집안일을 돕다가 일본으로 건너간다.

일본 잡화점에서 8년간 근무했던 김 회장은 야간에 상업학교를 다니면서 공부의 끈을 놓지 않았다. 당시 항상 근면성실한 생활로 인정을 받으면서 생활했다고 가족들은 전하고 있다.
 
이때 김 회장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것을 배운 것으로 보인다. 일본인들의 철저한 시간관념과 절약하는 생활을 몸소 체험한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생활이 몸에 밴 김 회장은 강진으로 다시 돌아와서도 항상 검소한 생활을 이어가게 된다.
 
1940년 강진으로 돌아온 김 회장은 강진읍 남성리 59번지에 터전을 잡게 된다.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조그만 가게를 운영했던 김회장은 이듬해 부인 김차임씨와 결혼해 가정을 꾸리게 된다.
 
이후 금천양조장을 인수해 화학소주와 막걸리를 판매하면서 사업은 크게 번창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터미널앞 강진정미소를 운영하고 군동면 해창앞에서 정부양곡물량을 도정하는 사업을 통해 정미회사까지 운영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도 김 회장은 변함이 없었다. 김 회장은 당시 새벽 4시 싸이렌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한다. 새벽4시가 되면 일어나 군동면에 위치한 정미회사까지 걸어서 출근을 했다고 했다.

매일 정확한 시간에 일어나 회사에 출근하는 김 회장을 보고 새벽4시 싸이렌이라는 별명이 붙여진 것이다. 사업의 성공으로 상당한 부를 축척했지만 항상 근면성실한 김 회장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단면이다.
 
또 하나는 사업의 성공으로 타지역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오직 지역에 투자하고 지역주민들에게 돌려주는 형태만을 고집했다. 당시 사업으로 성공한 사람이 흔히 하는 서울지역에 땅투기를 하거나 아파트를 구입할 여력은 충분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오직 지역에 대한 투자만을 이어갔다. 이런 내용은 김 회장이 한번도 주소를 옮기지 않고 강진읍 남성리 주소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 설명해주고 있다.
 
번돈도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지 않았던 김 회장이다. 김 회장 건물에 세들어 살면 수십 년간 세를 올리지 않는다는 일화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사업이 아닌 지역주민들과 함께 강진을 만들어가는 김 회장의 고집이기도 하다.
 
김 회장은 지역사회를 위한 활동도 귀감이 되고 있다. 지역발전을 위해 군번영회의 창립해 힘을 실었고 회장을 역임하면서 강진군의 발전에 앞장서 왔다.

사회단체인 강진라이온스클럽에서도 활동을 하면서 전국 부총재의 소임을 다했고 이를 통해 국제클럽 회장 감사패를 받을 정도로 활발하게 일해왔던 김 회장이다.
 
김 회장의 지역내 가장 큰 업적은 교육에 대한 투자라고 말할수 있다. 남몰래 어려운 학생들을 도와오던 김 회장은 관내에 인문계고등학교 설립에 적극 나서게 된다.

지난 74년 강진고 설립추진위원장을 맡았던 김 회장은 사비를 들여 강진고 부지를 구입해 희사했고 5천여만원의 거금을 학교건물을 짓는데 내놓았다. 현재 명문고로 발돋움하고 있는 강진고는 김 회장이 뿌린 씨앗이 서서히 열매를 맺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마침내 강진고가 지난 80년 개교하자 김 회장은 장학금 기탁을 시작했다. 처음 300만원으로 시작해 나중에는 금액을 올려 500만원씩 매년 입학식 행사에서 장학금을 전달했다.

김 회장은 항상 장학금을 신문지에 돌돌 말아서 현금으로 준비해 학교 측에 전달하고 있다. 강진의 미래에 대한 김회장의 투자는 34년째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김 회장은 지역을 대표하는 다산, 영랑선생 동상제작을 위한 추진위원회를 만들어 동상을 제작하는데 앞장섰다. 강진을 대표하는 다산선생과 영랑선생을 기리고 지역의 대표 상징물로 만들어야 한다는 김 회장의 생각은 지금도 남아있는 동상들을 통해 엿볼수 있다.
 
또 김 회장은 지역발전을 위해 자신의 땅을 과감하게 기부하기도 했다. 강진군 도서관을 짓기위해 땅을 기증하고 원호청 기관을 유치하기 위해 부지를 기부하기도 했다. 여기에 공용터미널 인근 예전 택시부 등 김 회장이 지역사회를 위해 기부한 규모는 적지 않다.

이런 활동들은 지역에 대한 강한 애착심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가족들에 따르면 이런 통큰 기부에도 김 회장은 한번도 미련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지역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 뿐이라는 말이 유일한 답변이었다.
 
여기에 가족들이 전하는 또 하나의 일화가 있다. 김 회장은 세금 등에 대해 항상 성실히 납부하는 주민중에 하나였다고 말한다. 흔히 세금이 부과되면 조금이라도 세금을  줄이고 싶은 것이 회사원이나 일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생각일것이다.

하지만 김 회장은 한번도 세금을 날짜를 지나서 납부하거나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다고 한다. 항상 정직하게 사업을 하고 이에 대한 세금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김 회장의 사업철학이기도 했던것이다.
 
투철하기까지 했던 지역사링에 대한 김 회장의 공로는 지난 2007년 강진군민의 상 등을 통해 지역주민들이 인정하고 있다. 항상 부지런하고 검소하면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김 회장의 활동은 지역의 큰 어르신이라는 칭송을 받아도 아깝지 않다는 주민들의 평가이다.

▶ 김유홍 회장 약력
●1916년 1월 6일 강진읍 교촌리 출생
●1932년 일본 상점 점원 생활
●1940년 강진 귀향, 생활용품점 운영
●1941년 부인 김차임씨와 결혼
●1955년 강진양조장 운영
●1961년 강진정미회사 운영
●1965년 강진극장 운영
●1974년 강진고건립추진위원장
●1980년 강진고 건립, 장학금 기탁 시작
●2007년 강진군민의 상 수상

김유홍 회장과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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