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강진 화재진압능력 무엇이 문제인가
[심층취재]강진 화재진압능력 무엇이 문제인가
  • 조기영 기자
  • 승인 2003.10.2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동주택 화재 속수무책, 주민들 "전남도 소관...도의원들이 나서야"

■소방력 부재 현실

최근 강진읍 서성리 건우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를 계기로 관내 고층아파트에서 거주하는 주민들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17일 저녁 6시40분께 건우1차 나동 502호에서 가스폭발로 보이는 화재가 발생해 집주인 안모(57)씨가 숨지고 아파트 내부가 전소된 후 1시간 30여분만에 진화됐다. 이날 불은 옆집과 아래층 주민들이 신속하게 대피해 다른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강진의 고층아파트 화재대처능력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현장에서 불길이 치솟고 진화되기까지 과정을 지켜본 주민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우왕좌왕하는 소방대원들의 모습이 마치 한편의 코메디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고가사다리차가 오지 않자 소방대원들이 한전의 바가지차(전기수리를 위해 쓰는 소규모 사다리차)를 타고 올라가 물을 뿌리는 모습은 이날 코메디의 극치였습니다”

주민들은 웃지도, 그렇다고 울지도 못할 당시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주민들은 5층 아파트 화재에 대한 소방서의 대처능력을 보며 소방서에 대한 비난을 쏟아부었다.

“만약 불이 10층에나 발생했다면 어떻게 될 뻔 했겠느냐는 것이에요. 그 안에 일가족이나 살고 있고, 불길이 주변으로 번졌다면....상상하기도 싫습니다”

군의 집계에 따르면 관내에는 5층 이상 고층아파트 21개동에 1천100여세대 4천60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중 상당수는 10~15층 아파트에서 살고 있어 이들은 사실상 화재진압 사정거리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다.

그럼 당시 화재진압이 늦어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건우1차아파트와 종합운동장 입구에 있는 강진소방파출소의 거리는 차량으로 5~10분 거리이다. 소방서측은 당시 건우1차아파트 화재현장에 출동한 소방차 수가 19대였다고 공식 확인했다. 이는 대형 공장화재에서나 볼 수 있는 소방차 출동 규모로 군단위 화재에 보기드문 메머드급 출동이었다.

그러나 이 차량들이 어디에서 왔느냐고 따져 들어가 보면 말이 달라진다. 강진소방파출소에배치되어 있는 소방차는 모두 4대(소형 포함). 이번에 출동한 19대의 출동소방차중 15대는 강진에서 30㎞ 떨어진 영암 대불공단에서 달려와야 했다. 

신고를 받고 영암 대불공단에서 달려온 차량들은 강진에 화재신고가 접수된지 40여분 후에야 도착했다. 고층아파트 화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해야하는 사다리차도 이때야 도착했다.

큰 불길은 이미 잡혀 있었고, 영암에서 도착한 차량들은 뒤늦게 물을 뿌리며 남아 있는 불씨를 확인 진화를 하는 정도에 그쳤다.

“사람은 죽어있는데 그때야 사다리차가 도착하면 무얼 합니까. 불길은 잡히지 않고, 시간은 지나고 주민들이 발을 동동구를 동안 사다리차는 코뻬기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럼 강진소방파출소에는 고가사다리차가 없었던 것일까. 있었다. 강진소방파출소에는 지난 8월 27m까지 올라갈 수 있는 굴절사다리차가 배치돼 출동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불이 났던 당시 파출소 뒷뜰에서 꼼짝 못하고 있었다. 사다리차를 조작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영암소방서 산하의 소방파출소로 운영되고 있는 강진의 소방조직은 고층아파트 화재에 대처할 수 있는 주요장비를 운용할 수 있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파출소에는 현재 15명의 소방대원이 격일제 근무를 하고 있어 화재가 발생하면 모든 차량을 동원할수 없는 형편이다. 소방력 기준상 강진소방파출소에 배치된 전 차량을 운용하기 위해서는 20명의 인력이 필요하지만 부족한 인원으로 이를 운영하다 보니 결정적인 장비를 제때에 출동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강진소방파출소 관계자는 “고가사다리차를 운용할 수 있는 소방력이 부족해 아파트 화재발생시 1차 출동은 어려운 상태”라고 말했다.

■고층아파트들 화재예방 상태

강진에서의 소방서 화재 대응력이 이 정도의 현실이라면 각 아파트들의 화재 대처능력은 어느 정도일까.

한마디로 말해 깜깜한 현실이다. 현재 소방법에는 자동식 스프링클러소화설비를 16층 이상의 아파트층에만 설치하도록 하고 있어 관내 고층아파트는 화재에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다. 또한 소화기도 각 세대별로 설치하도록 하는 의무규정이 없어 초기에 불을 끌 수 있는 대응력이 상대적으로 미약한 실정이다.

항상 열려있어야 하는 옥상문도 보안등을 이유로 잠겨있는 곳이 대부분이며 비상계단에 쌓아놓은 각종 물품들도 화재등 긴급상황에서 주민들의 대피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

관내 A아파트는 화재발생시 고층에서 주민들이 안전하게 지상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인명구조장비인 공기안전매트를 비치하고 있지만 이를 설치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B아파트는 폭 5m의 진입로 양쪽에 평상시에도 다수의 차량이 주차돼 있어 화재발생시 소방차의 진입을 어렵게 하고 있다. 또 비상시 주민들이 대비할 수 있는 3개의 옥상문도 잠겨 있으며 최상층 주민들이 원할 경우 열쇠를 지급하고 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아파트 옥상문은 항상 열려있어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사고 발생 등의 이유로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며 “소방법에 따라 완강기나 구출선 같은 것은 설치돼 있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주민 안모(강진읍 서성리)씨는 “고층아파트에 화재가 발생할 경우 아파트 내에 설치된 자체 소방설비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며 “옥내 소화전 사용법등 아파트 화재시 주민대처방법에 대한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주민들 요구
주민들은 이번 화재사건과 같은 처리미숙이 재연되지 않기 위해서는 철저한 원인분석과 대응책이 나와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특히 전남도를 감시하는 지역 도의원들의 역할에 주민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화재사건에 대한 철저한 원인분석 및 대응조치도 도의원들이 조사해 지역민들에게 공개해야 한다는게 주민들의 중론이다.

주민들은 “소방파출소는 전남도 관할소관이고 이번 화재의 경우 전남도의 화재진압 헛점이 여실히 드러났는데 도의원들이 현장에서 조사하고 대책을 세우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며 “현장을 조사해 전남도에 대해 조치를 했다면 주민들에게 공개하고 아직 역할을 못했다면 행동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