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인 이종재 옹
국악인 이종재 옹
  • 주희춘 기자
  • 승인 2003.07.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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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단속에 흠뻑취해 보낸 인생...강진민요의 산증인 우뚝

아주 오래전부터 노래와 장단이 있었다. 사람들은 힘들때나 즐거울때나 장단을 치며 노래를 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일이니 정형화된 이론이 있는 것도 아니였다. 말그대로 노동과 생활속에 스며들어 흥얼대고 목놓아 외치는 생활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모를 심으며 농요를 하는 사람은 없다. 흥겨운 자리에서 민요를 듣는 일은 이제 끝자락에 있는듯 하다.

 

신전면 이종재(80)옹은 강진의 토종 국악인이다. 젊었을 적에 유명한 선생님으로부터 판소리를 체계적으로 배우지도, 민요를 전수받은 것도 아니다. 국가에서 발급하는 무슨 전수 자격증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단지 노래가 좋아 노래를 불렀고 북이 좋아 북을 두드렸다. 이옹의 가락은 아주오래전부터 강진의 주민들이 힘들때나 즐거울때나 흥얼대며 목놓아 외쳤던 바로 그 소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래서 인지 그의 노래는 어떤 정형화된 것보다 자연스럽고, 강진사람들의 애환이 스며있는 그 무엇이 있는듯 하다. 이름없이, 명성없이 요셋말로 이옹은 언더그라운드 가수로 평생을 산 셈이지만 덕분에 그는 노년이 되어 강진민요의 산증인으로 우뚝 서 있다.

 

신전면 소재지 완산슈퍼는 이옹과 이옹의 아내 안복순(74)씨가 살고 있는 곳이다. 장소가 삼거리여서 제법 장사가 된다고 이옹은 자랑했다. 이옹의 작은 방에는 오래된 소파가 있고 한구석에 작은 북이 놓여있었다. 옆에 북채가 두개 보였다. 슈퍼를 지키면서 언제든지 북을 칠 수 있는 분위기였다.

“내가 노래 한 이유를 알고 싶다고?.....”

 

노래를 하게된 이유를 알고 싶다는 첫물음에 이옹은 기자를 쳐다보며 신기해 했다. 그것은 왜 사소한 질문을 하느냐는 뜻도되고 이제는 그런 애기도 누구에게 하고 싶었다는 의미도 있었다.

 

이옹은 ‘외입’ 나간 날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16살 되던 1940년 음력 초파일(부처님 오신날)전날 고향(신전 논정리)집에서 잠을 자며 묘한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살다 깔담사리(남의집 머슴살이)가서 나이나 먹으면 무엇하나하는 생각이었다. 이옹은 ‘애라 모르겠다’고 마음먹고 어머니가 만들어 놓은 면포 한필을 훔쳐 다음날 새벽 집을 나섰다. 마을 선배가 사는 평양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당시 이옹이 들고 나왔던 면포는 열두세라고 해서 고급 두르마기를 만드는 최고급 무명베였다.

 

목포에서 무명베를 팔아 돈을 만든 다음 기차를 타고 서울을 거쳐 평양에 도착한 이옹은 그릇만드는 공장에 취직을 했다. 이옹의 일은 매일 새벽 2시에 쇳물을 녹이기 위해 풀무질을 하는 것이었다. 어린나이에 졸립고 심심했다. 그래서 밀량아리랑을 불렀다. 평양 수심가도 불렀다. 양산도, 아리랑타령도 단골 메뉴였다.

 

새벽에 잔잔히 울러펴진 10대 소년의 얘띤 노래소리가 오죽했을까. 소문이 퍼졌고, 이어 사람들이 찾아와 손이라도 잡고 싶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평양에서 제일 큰 야시장을 하는 사장이 찾아와 한번 놀러오라고 연락처도 적어 주었다.

 

이옹은 야시장에서 느꼈던 화려함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야시장 사장의 부탁으로 무대에 올라 양산도를 불렀을 때 모여있던 사람들이 박수를 힘껏치며 함성을 질러댔다. 강진의 소년이 평양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이다.

 

이옹은 이 분위기에 푹 빠져 버렸다. 그후 1년 7개월 동안 그릇공장과 야시장을 오가며 노래를 불렀다. 꿈같은 세월이었다.

 

이옹은 그후 북만주 목단강으로 넘어가 자전차포에서 일을 했다. 당시 목단강 주변에는 조선사람, 중국사람, 일본사람등이 운영하는 자전차포가 100여개가 넘었다. 기자는 요즘에도 자주쓰는  ‘만주에서 말타고 자전거장수 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전혀 근거없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해방이 되던 해에 22살에 되어 고향으로 내려온 이옹은 강진읍 보전마을 출신 안복순씨와 결혼을 했다. 두사람의 만남도 예사롭지 않다. 안씨도 처녀때 노래를 좋아했다. 최근에는 처녀때 들었던 ‘춘양이 놀이‘와 ‘둥당이 타령‘을 복원해 마을주민들과 공연도하고 있다.

 

아뭍튼 안씨는 당시 중매쟁이가 ‘신랑될 사람이 노래는 잘하는 사람이다’라고 하는 말에 귀가 솔깃해 논정마을로 시집을 왔다. 시집온지 얼마안돼 한번은 안씨가 물레를 돌리며 삼베를 짜고 있을 때였다. 남편 이씨가 옆에서 북을 치며 심청전중 한 대목을 부르기 시작했다. 심봉사의 아내가 심청이를 낳고 죽었으나 앞을 보지 못하는 심봉사는 그것도 모르고 약을 먹으라고 권하는 대목이었다. 그 목소리가 하도 구성지고 슬퍼 안씨는 펑펑 울고 말았다. 안씨는 노래잘하는 남편이 그렇게 자랑스러웠다. 7남매의 자녀들도 어버지가 노래잘하는 것을 좋아하며 컸다.

 

끼 많은 이옹과 사는 일이 항상 좋을리는 없었다. 이옹은 잔치집이나 모심는 집이 있으면 만사를 제쳐놓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북치고 꾕가리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였다. 한번은 이씨집 모를 심는 날이었는데, 그것도 팽게치고 남의집 모심는 논으로 달려갔다. 덕분에 집안일은 항상 부인 안씨 몫이었다. 안씨는 “매미처럼 응강에 앉자 노래만 불렀다”고 남편의 흉을 슬쩍 봤다.

 

그렇다고 돈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 당시만 해도 잔치집에도 놀아주면 기생들의 경우 적지 않은 경비를 챙기곤 했다. 이옹은 예나 지금이나 ‘공연’을 하고 나서 일체 돈을 받지 않고 있다.

“젊었을 때 저와 약속했습니다. 돈을 받으면 가치가 떨어지니 노래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자구요” 부인 안씨는 남편 이옹이 돈을 받지 않은 것에 대해 큰 자부심 가지고 있었다. 이 때문에 이옹은 잔치집만 있으면 항상 찾아가서 공짜로 노래를 불러주고, 축의금은 따로 챙겨주는 이중지출을 하곤했다.

 

이옹은 이렇듯 신전일대 잔치집을 ‘평정’하며 50대를 맞았다. 당시 주변에서 전문 선생님에게 소리를 배워보라는 권유도 많이 받았으나 전문 소리꾼으로 나설 생각은 없었다. 강진읍으로 나와 소리를 해본적도 없었다. 집안 어른들이 “양반인 전주이씨가 어딜 소리꾼이 되느냐”고 반대했던 영향도 있었다.

 

그러다가 57세된 1983년에 강진향교의 장의(전교 바로아래 직급)를 맡아 활동한 이후 다른 활동에 자심감을 갖기 시작했다. ‘장의’ 정도의 신의를 받았으니 양반집안 사람도 소리를 해도 될 것이라는 자신감이었다.

 

이옹은 59세때부터 강진노인대학을 출입하기 시작했다. 신전 논정마을에서 강진읍까지 오기까지 30여년이 걸린 셈이다. 강사를 불러울 재정여건이 되지 못했던 노인대학에서 이옹은 전문강사 이상의 역할을 해냈다. 강진노인대학에서 이옹에게 북을 배우는 제자는 50여명에 이른다. 여기에 평생을 갈고 닦아온 노래실력도 있으니 노인학교 학생들에게는 이보다 더 훌륭한 선생님이 없다. 전남권 각종 대회에서 상도 휩쓸었다. 이옹의 집에는 여기저기서 받은 상장이 30여종이 넘게 보관되어 있다.   

 

이옹이 어렷을때부터 불렀던 ‘강진들노래’도 노인대학에서 빛을 보게됐다. 노인대학에서 우연히 이옹의 노래를 들은 전남국악협회 간부가 경연대회 출전을 권유했다. ‘오리지널’ 모심기 노래라는 것이었다. 강진들노래는 98년 제 39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나가 민요부분 우수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올렸다. 집 근처에 자신의 약력이 들어간 강진들노래 기념비도 세웠다.

 

이옹은 젊었을 때 적잖은 잔병치레를 했지만 80세의 노인치곤 건강한 편이다. 얼굴에는 아직도 혈색이 돈다. 부인 안씨의 북장단에 맞춰 부르는 판소리는 마디마디가 힘차다.

 

전문소리꾼이 되지 않은게 후회스럽지 않느냐는 물음에 “절대 후회는 없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여전히 소리와 장단에 취해 있었다.


이종재옹 주요약력


1924년 신전 논정리 벌정마을 출생

1940년 평양에서 서도민요 전파

1983년 강진향교 장의역임    

1995년 국악협회 강진지부 부회장 역임

1992년 제20회 금릉문화제 토속민속놀이 기능상

1996년 제18회 남도국악제 명고수부분 우수상

1998년 제20회 남도국악제 토속민요부분 우수상

1998년 제39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민요부분 우수상 ‘강진들노래’

2001년 여수 진남제 명창대회 특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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