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로에서]디지털 치매
[다산로에서]디지털 치매
  • 강진신문
  • 승인 2011.01.28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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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석<공군사관학교 교수>

요즘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하게 되는 건망증과 치매를 구별하는 좀 색다른 우스갯소리가 있다.

내용인 즉, 우리가 외출을 하기 위하여 아파트를 나서면서 문을 잠그려고 할 때, 열쇠를 손에 쥐고도 계속 그 열쇠가 어디 있는지 찾아 헤매는 것은 건망증이고, 열쇠를 손에 들고 한참을 쳐다보면서 이것을 어디에 사용하는 물건인지 모를 때를 치매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그 둘의 행동에 따른 건망증과 치매의 증상인지를 구별하자는 논지는 아니고 그냥 한번 웃자고 하는 얘기일 터이다.

우리가 잘 알듯이 건망증과 치매는 그 증상이 확연히 구별된다. 문자 그대로 건망증은 '일정 시기 동안 또는 경험한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거나, 드문드문 기억하기도 하는 '기억 장애' 정도로 정의되고, 치매는 '대뇌 신경 세포의 손상 따위로 말미암아 지능, 의지, 기억 따위가 지속적 또는 본질적으로 상실된 경우'를 의미 한다.

따라서 치매는 정신능력의 부분적인 상실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건망증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질환임을 알 수 있다.

실생활의 단면에서도 쉽게 접하게 되는 치매적 성격은 음정과 박자를 무시하고 가사만 줄기차게 따라 부르는 음치(音癡)를 들 수 있다.

음치라는 말도 따지고 보면 음을 다스리는데 있어서 치매의 한 증상으로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음치는 소리 '음(音)'과 어리석을 '치(癡)'로 이루어진 말로서 '소리에 대한 음악적 감각이 매우 무디어 음을 바르게 인식하거나 발성하지 못하는 사람'을 일컬음으로써 소위 치매에서 사용하는 동일한 '치(癡)'자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음치와 같은 류로서 '몸치' 또는 '길치'라는 것도 음치에 빗대어 만들어진 말들인걸 보면, 요즘 우리 사회에는 치매에 빗대어 만들어진 말들이 꽤 많은 듯하다.

그 중에서도 요즘의 정보화 시대에 특별히 회자되는 '디지털 치매' 라는 것이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디지털의 의미는 개인용 컴퓨터를 비롯하여 휴대폰, 내비게이션 등과 같은 디지털 기기가 이해하고 해독하기 쉽도록 만든 '0'과 '1'의 2진수에 전기적 신호를 대응시켜 부르는 개념이지만, 요즘의 디지털 개념을 사용하는 정보화 기기를 통칭하는 개념이 된지 오래다.

즉 디지털 치매라는 말은 이와 같은 우리 실생활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디지털 기기에 의해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치매현상이라는 의미다.

디지털 기기는 우리사회가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정보화 사회로 이미 진입해 있어서 날이 갈수록 그 발전 속도는 더욱 더 빨라지고 있고, 우리의 실생활에서 편리함과 신속함, 정확성에 대한 매력으로 인해 디지털 기기의 사용은 더욱더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디지털 기기가 우리 인간에게 주는 수많은 혜택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기기의 사용에 따른 부작용으로서의 치매현상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또한 디지털 치매는 그 속성상 노인성 치매와는 달리 남녀노소 가리지 않을 뿐 아니라, 특별히 10~30대의 젊은 세대들에게 주로 찾아오는 치매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선진국의 연구결과에도 보고되었듯이 운전자의 '내비게이션 의존증'이 노인성 치매를 앞당길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는데, 이는 뇌 속에서 '천연 위성항법장치(GPS)'역할을 하는 해마(海馬)가 할 일을 잃어 빨리 퇴화하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또한 캐나다의 연구진의 '운전자의 길 찾기 방식이 뇌에 미치는 영향'이란 보고서에는 운전 중 내비게이션을 이용하는 자와 이용하지 않는 자의 뇌를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으로 촬영한 결과 비이용자의 해마부가 훨씬 더 활성화되어 있었다고 밝히면서 내비게이션에 의존할수록 치매증세가 일찍 찾아올 가능성이 있다고 확인한 바 있다.

그렇기에 연구진들은 디지털 기기가 만연한 이 세상에 소위 '디지털 치매'의 예방을 위하여 한결 같은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뇌의 빠른 노화를 막고 싶다면 지금 당장 내비게이션을 꺼라"라고.

그래서 우리는 이 시점에 다음과 같은 특별한 절박함으로 다가오는 외침이 굳이 남의 일이 아님을 다시 한 번 되새겨 볼 일이다. "내비게이션만 따라가는 당신 치매병원도 빨리 갈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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