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호)작천 죽산마을
(237호)작천 죽산마을
  • 조기영 기자
  • 승인 2003.06.1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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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을 방불케 하는 더위가 연일 계속 되면서 신록은 어느덧 제빛깔을 더해가고 모내기가 한창인 들녘에 물을 대는 양수기는 콸콸콸 소리를 내며 시원한 물줄기를 연신 뿜어내고 있다. 차장너머 보이는 풍경은 한가롭기만 한데 바쁜 농사일로 하루를 보내는 농부들의 모습은 더없이 분주하다.

강진읍에서 출발해 까치내재의 가파른 고갯길을 넘어 찾아간 곳은 작천면 죽산마을. 백련으로 유명한 용동저수지를 돌아 들어가니 마을 이정표를 찾아볼 수 있었다. 예전에는 마을 곳곳에 죽림이 우거져 죽산이란 마을이름이 붙었으나 지금은 경지정리사업으로 대부분 사라져 마을 뒤편에서만 간간이 대나무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마을에 언제부터 사람이 거주했는지 정확한 자료는 없으나 청동기 시대의 유적인 고인돌이 마을앞 논에 10여기 분포되어 있었던 것으로 미뤄 일찍부터 주민들이 정착해 왔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죽산마을은 60여가구 120여명이 미맥농사를 위주로 생활하고 있으며 10여년 전부터 소득작목으로 배를 재배해 부수입을 올리고 있다. 배작목반은 12농가가 참여하고 있으며 8천여평의 농지에서 청자골강진배을 생산해 전국으로 판매하고 있다.  

소가 누워있는 형국을 하고 있는 죽산마을에는 옴천으로 넘어가는 길목인 땅제, 땅제에 있는 3m 높이의 폭포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물을 먹고 곱추가 나았다고 전해지는 새기골, 천봉산 정상으로 옴천과 작천의 경계지점으로 기우제을 지냈던 천봉골, 천봉골 성산 밑에 있는 골짜기로 소가 들어가는 골인 우골, 일제때 옹기를 구워 내다 팔기도 했다고 전해지는 점등, 마을 뒷산에 있는 평야로 초군들이 짱치기를 하고 놀았던 짱밭등, 마을 동북쪽 바레등 밑에 있었던 솔대 등 정겨운 이름들이 불리우고 있다.

미리 연락을 하고 찾아간 마을 회관 앞에서 마상배(46)이장과 마을주민들을 만날 수 있었다. 농번기에 시간을 내준 주민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자 주민들은 반가운 모습으로 반겨주었다. 마이장은 “마을주민들이 결속이 잘되고 순박해 범죄없는 마을로 유명하다”며 “마을에 다툼이 없어 고소·고발 사건이 일어나지 않고 도난사건등 대형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조용한 마을”이라고 마을 자랑을 했다. 또 마이장은 “마을앞 용동저수지에 피는 백련이 유명해 지난해 방송국에서 촬영해 방영되기도 했다”며 “병영의 홍련과 연계해 관광지로 조성하면 지역을 알리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을에 대한 얘기를 나누던 중 예전 주민들이 즐겨했던 놀이인 짱치기에 대해 묻자 송호준(74)씨는 “나무를 깎아 탁구공 크기의 공을 만들어 1m 길이의 나무막대기로 공을 쳐 상대편 골대에 먼저 넣으면 이기는 놀이”라며 “지금으로 말하면 골프와 비슷한 놀이로 농사가 끝난 들녘에서 많이 하고 놀았지만 지금은 기억하는 주민들이 별로 없다”고 답했다.

죽산마을에는 오래전부터 내려온 전통이 있다. 음력 정월2일날 주민들이 마을회관에서 모여 함께 해온 합동세배가 100여년이 넘게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상을 당한 집에서 음식을 장만하고 주민들과 출향인들이 함께 하는 합동세배는 일정한 순서에 따라 진행된다. 먼저 음식을 장만한 상주에게 절을 하고 다음으로 마을 어르신들에게 세배를 올린 후 주민 상호간에 맞절을 한다. 주민들은 명절날 타지에서 찾아오는 자식들에게 합동세배만은 꼭 참여하도록 당부해 죽산마을의 오랜 전통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마을에 들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회관 앞에 서 있는 느티나무였다. 면보호수로 지정돼 있는 이 나무는 수령이 400여년 된 것으로 죽산마을 자랑 가운데 하나이다. 지금도 대보름이면 나무 앞에서 당산제를 지내며 풍물놀이와 줄다리기를 계속하고 있다. 마서황(64)씨는 “옛날부터 마을터가 세 줄다리기를 해야 좋다는 말이 전해져 대보름날 줄다리기를 매년 해오고 있다”며 “전통을 지킨다는 의미도 있지만 마을주민들의 단합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마을 안길을 따라 올라가다 배수로를 고치기 위해 모래를 바가지에 담아 나오던 최순자(72)씨를 만났다. 최씨는 “주민들간에 사이가 좋아 이제까지 살면서 이웃과 속상한 일이 별로 없었다”며 “손아랫사람은 윗사람 공경할 줄 알고 어른들은 아랫사람들 자애롭게 대하는 우리 마을이 가장 살기 좋은 곳이제”라며 마을 자랑을 했다.

이곳저곳을 둘러본 후 마을회관에 모여 있는 주민들에게 사진촬영을 부탁하자 주민들은 “이쁘게 나오게 화장이라도 하고 올 것을”이라고 한바탕 웃으며 밝은 모습으로 촬영에 응해 주었다.  

한점의 욕심도 없이 서로의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주민들을 통해 우리네 고향의 참다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힘들어져 가는 농촌현실 속에서도 고향을 지키며 살아가는 우리의 어머니, 아버지들의 밝은 미소는 영원히 가슴속에 새겨야 할 아름다움이다.

죽산마을 출신으로는 작천면장을 역임했던 조삼원씨, 목포동초등학교 교장을 지낸 신우섭씨, 나주군 농협지부장으로 근무했던 신안섭씨, 전남대 교수를 지낸 신방섭씨, 농수산부 감사과장을 역임한 정두표씨, 강진군청에서 근무했던 정춘국씨, 전주우체국장을 맡고 있는 김광호씨, 목포세관장을 역임하고 있는 윤동화씨, 작천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마희씨, 서울에서 대신증권 지점장으로 있는 송영재씨가 이마을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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