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의 연표<1>
강진의 연표<1>
  • 특집부 기자
  • 승인 2003.05.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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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광식

강진은 1417년 1월 20일부터 불러오고 있으며 년표라고 붙이고저 하는 이유는 국가에 관한 사실들은 많았지만 한 고을에다 년표라 한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 강진 고을은 다양한 문화를 소유한 즉 복합된 문화의 고장이다. 그래서 최초의 사용자를 알아보았더니 중국의 역사책을 저술한 사마담(BC 110)과 그의 아들 사마천(BC 145-86)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강진에 기록은 300여년 경부터 나타나 그 시대부터 시작해 보고 그 이전은 훗날을 기약해둔다./필자 주

▶4335년, 강진의 옛「벽랑국」의 세 신녀가 제주에 가서 고씨, 량씨, 부씨의 아내가 되다(탐라후기)
▶BC3-2세기에서 서력기원 전후의 청동기유적들이 칠량 영복리와 군동 화산에서 출토되다.
▶369, 백제가 전남지방을 장악하다.
▶383, 량탕 (良탕)이 부계량(夫繼良)과 함께 신라에 입조하다.
▶박지원(1737-1801)이 말하기를 「동국의 방언에 도(島)를 섬(剡)이라하고 국(國)을 나라(羅)라)라 하다. 탐(探), 섭(涉), 당()의 세음은 모두다 섬과 같은 종류이니 대체로 도(島)라 하는 것은 국(國)이다」 고하다.
▶옛 기록에 「최초로 탐진에 배를 대어 신라에 조공했다하여 탐라(探라)라 함은 억지로 끌어대어 이치에 맞추려한 학설이다」고 하다.
▶386, 백제가 국경의 방비를 설치하다.
▶397, 고구려가 탐라에 사신을 보내 산호(珊瑚)를 구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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