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대추귀고동이 들려주는 이야기
<기자칼럼>대추귀고동이 들려주는 이야기
  • 주희춘
  • 승인 2003.05.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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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오후 군청소회의실에서는 해역복원사업에서 발생하는 준설토의 투기장 위치를 놓고 해양수산청과 강진군, 환경단체간에 열띤 토론회가 벌어졌다. 대형 토목공사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놓고 지역내에서 이렇게 격론을 벌인 것은 이례적이였다.    

이날 토론회가 열린 계기를 제공한 것은 이름없는 고동이었다. 환경부가 희귀고동으로 지정한 대추귀고동이라는 고동류가 준설토 투기장 일대에서 발견되면서 투기장 장소를 옮겨야 한다는 목소리가 갑자기 대두됐다. 

그런데 이 대추귀고동을 발견한 곳은 사업을 주관하는 해양수산청도, 강진의 바다를 관리한다는 강진군도, 지역의 환경을 감시한다는 강진의 환경단체도 아니었다.

대추귀고동의 존재사실을 알린 사람들은 전국의 갯벌을 탐사하던 한?일 공동 갯벌 탐사단이였다.

지난 10일 탐사단에 참여한 한 일본인 학자는 칠량 구로앞바다 갈대밭을 뒤지다 세계적 희귀종인 대추귀고동이 집단으로 서식하는 것을 발견하고 탄성을 질렀다.

해역복원사업이 확정(2001년 11월) 된지 17개월, 준설토투기장 위치가 정해진지 6개월만의 일이였다.

해역복원사업이 확정된 후 많은 일들이 있었다. 해양수산청은 전문가들을 참석시켜 사업보고를 수차례 개최했었고, 강진군도 사업을 추진하면서 관련법을 수십차례 떠들추어 왔다. 준설토투기장이 칠량 구로일대에 만들어진다는 것은 지난해 10월부터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었다.

해양수산청이나 강진군, 환경단체등이 이 문제에 대한 사전대책을 세 울수 있는 기회가 없지 않았다는 것이다.

20일 토론회에 참석한 목포해양대의 한 교수는 해양수산청 보고회 당시 수많은 문제점이 발견됐으나 논의되지 않고 대충 넘어가 버렸다고 폭로했다. 보고서 내용중 단위가 틀린 것도 여러곳 발견됐다는 말도 했다. 목포해양청이 강진만 해역복원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먹구구식이었다는 것을 설명해 주는 대목이다.

해역복원사업이 사업초기에 철저한 절차를 밟지않고 진행됐다는 이 교수의 주장은 여러 방향으로 적용된다.

강진군도 해역복원사업이라는 거대한 갯뻘준설 공사를 추진하면서 사업초기에 환경과 관련된 절차를 밟는데는 신경쓰지 않았다. 사업자체가 워낙복잡하고 어려웠다는 특수성도 있지만, 요즘같은 시대에 환경문제에 대한 적절한 대처없이는 어떠한 공익사업도 공격받는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대처했어야 했다.  강진군과 정치권은 사업 확정 당시 100억원의 국비를 따왔다는 실적에 도취해 있었다.

강진의 환경단체도 칠량구로앞 갯뻘이 투기장으로 사용되지 못하도록 사업초기에 관여할 수 있는 기회가 충분히 있었다. 강진만 일대의 간척지 폐허를 모든 주민들이 절감하고 있는 현실에서 더 이상 갯뻘을 막으면 안된다는 주장은 어떤 요구보다 힘을 얻었을 것이다. 강진만갯뻘을 지키기 위해 투기장을 옮겨야 야한다는 지금의 주장은 결국 뒷북치는 모양세가 되어 버렸다.

오늘 이 단계에서 강진주민의 숙원사업인 해역복원사업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투기장논란은 이렇듯 각 집단이 사업초기에 철저한 대응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온 필연적인 결과다. 각 집단에는 물론 지역언론도 예외일 수는 없다.

이번 논란으로 가장 어리둥절해 하는 사람들은 누구보다 어민들이다. 어민들은 사업기간 동안 어장권을 포기한다는 각서를 써주며 이 사업을 지지했었다. 생업을 희생하면서 이 사업을 지지한 어민들 입장에서 이번 논란은 새벽에 봉창을 두드리는 소리 정도로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어민들도 준설토 투기장을 놓고 느즈막하게 벌어지고 있는 이번 논란을 해역복원사업을 방해하는 일 정도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갯벌을 보존하자는 주장은 바로 어민들의 삶터를 지키자는 일이고, 단지 논란의 시기가 늦었을 뿐이다. 환경단체에서도 해역복원사업에 대한 찬성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논란은 해양수산청과 강진군, 환경단체, 지역어민들이 활발한 논의를 거쳐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한다면  하나의 좋은 선례를 남길 수가 있다. 가장 좋은 모델은 역시 지난 20일 열린 토론회와 같은 일이 사업초기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탐진강 하구부터 마량앞까지 지금 거대한 공사판이 벌어지고 있으나 사업전에 각 집단이 토론을 벌여 본 적이 한번도 없다.

이번 일이 그같은 길을 열어준다면 대추귀고동은 강진에게 참으로 고마운 존재가 될 것이다./주희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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