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기행<101>군동 하신마
마을기행<101>군동 하신마
  • 조기영 기자
  • 승인 2003.04.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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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쌀쌀하게 부는 바람은 아직 옷깃을 여미게 하지만 도로가에 활짝 핀 이름모를 들꽃들은 봄의 정취를 한껏 느끼게 한다. 제가 지닌 온갖 색들을 맘껏 뿜어내는 봄꽃들의 모습은 시선을 차창밖으로 잡아끄는 힘이 있는 듯하다.

강진읍에서 출발해 국도 23호선을 달리다 목리다리를 건너 군동으로 접어들면 도로가에 아늑하게 자리잡은 하신마을이 있다. 마을입구에는 장흥마씨 추모비가 여러개 세워져 있어 집성촌임을 미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른 아침 찾은 하신마을 주민들은 올해 농사를 준비하느라 바쁜 일과를 시작하고 있었다.

옛날 마을 주위에 비자나무가 많아 비자동이라 불리어 오다가 삼신리의 아래쪽이 된다고 하여 하신이라 불리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마을의 최초 입향성씨는 원주이씨가 터를 잡았다고 하나 자료나 후손이 없어 입향내력을 밝힐 수 없고 다음으로 장흥마씨가 작천면에서 이주해와 자자일촌을 이루어 생활해 오다 근대에 들어 일부 타 성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현재 하신마을에는 80여호 200여명의 주민들이 미맥위주의 농사를 짓고 있다.

마을에는 지형이 고리같이 생긴 들판으로 가뭄이 들어야 농사가 잘된다는 고리언, 마을 뒷산으로 말발굽처럼 생겼다 하여 굽봉, 합섬 뒤쪽에 있는 등성이인 불뭇등, 금사마을과 경계로 옛날 이곳에 비가 서있었다하여 부른 비석등, 합섬이라 했다. 또 800평 논이 사다리처럼 층층이 계단을 이루고 있어 부른 사다리골, 마을 동편 첫 번째 골목으로 옛날 한문을 가르치던 서당이 있어 불리우는 서당골목, 합섬에 있는 농경지로 수령논이 많다하여 수랑골, 수랑골 꼭대기에 있는 쌍둥이 바위로 옛날 돌을 던져 맞추면 낳을 자식의 성별을 알았다는 아들바위·딸바위, 골짜기가 길게 홈처럼 파였다고 부른 골목인 홈골등이 주민들에게 정겹게 불리우고 있다.

마을 입구 선돌이 서있는 텃밭에서 밭일을 하고 있던 마채율(70)씨를 만났다. 마씨는 “우리마을은 옛날 양반동네로 어른 잘 공경하고 자녀들 사랑하며 정답게 사는 마을이다”며 “마을주민들이 근면성실하며 모든 일을 대화와 타협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고 마을자랑을 했다. 또 마씨는 “예전에는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밭에 목화를 심어 길쌈으로 생계를 유지했다”며 “강남간척지가 만들어진 후 미맥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마을주민수가 늘어나고 마을이 크게 번성했다”고 덧붙였다.

마을이장일을 맡아보기도 했던 윤호경(58)씨는 “지금도 마을입구에 있는 100여평의 밭에 목화를 재배해 종자보존을 하고 있다”며 “재배한 목화를 수확해 청자문화제 기간에 베틀놀이 시연을 매년 해오고 있다”고 말했다.
베틀놀이는 목화씨를 뿌려 목화를 따고 목화에서 실을 뽑아 베를 짜고 난후 다듬이질하는데까지의 과정을 노래와 함께 엮은 것으로 하신마을의 큰 자랑이다.

놀이에는 씨앗이, 활, 물레, 그무레, 베틀을 사용하며 하신마을 베틀놀이 소리는 다른 지방보다 노랫가락이 익살스럽고 특이해 남도문화제 최고상,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장려상을 받았다. 또 전국 문화제에 초청돼 시연을 펼치고 있으며 매년 청자문화제에 베틀놀이를 선보이고 있다.

또 하신마을에는 효자, 효부가 유명하다. 조선시대 부모에게 효를 다하여 조정에서 효자상을 내린 장흥마씨 23세손 헌징의 아들 3형제는 가난한 살림에 부친이 병을 얻자 돌을 운반해 발을 막아 고기를 잡아 공양하고 모친이 병중에 조개를 원하므로 추운 겨울 눈속에서 조개를 잡아 봉양하였다. 산수골 입구에는 이들을 추모하는 장흥마씨삼효비가 서있다. 또 효부로 알려진 김이례씨는 일찍 남편을 잃고 평생을 수절하며 시부모를 정성으로 모셔 강진군수, 강진향교, 전남도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

마을 안길을 따라가다 한 채의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건물을 관리하고 있는 마민원(68)씨 말에 따르면 전에 마을회관으로 사용하던 건물로 광복직후 마을주민들이 조금씩 돈을 거출해 지은 건물이라 한다.

구마을회관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새회관을 지으려 했으나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자는 마을주민들의 의견이 많아 현재는 베틀놀이 용품을 전열해 보관하는 건물로 사용하고 있다. 옛것보단 새것을 좋아하는 때 뜻깊은 마을회관을 아끼고 보존하는 하신마을 주민들의 속깊은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신마을 출신으로는 남양건설회장을 맡고 있는 마형렬씨, 광주문화방송 사장과 금호문화출판사 사장을 역임한 마삼렬씨, 문화체육부에 근무하는 마성배씨, 건도건설 사장으로 있는 윤정현씨, 순창경찰서 형사계장으로 근무하는 마영칠씨, 전북경찰청에서 경사로 있는 윤사숙씨, 군청 환경정화계장으로 재직중인 신상식씨, 서울에서 경찰로 근무하는 마정식씨, 마현재씨, 신영길씨, 용인에서 경찰로 있는 신상남씨, 인천에서 경찰로 근무중인 마승환씨, 경기도에서 초등학교 교감으로 재직중인 마재후씨, 광주에서 안과전문의로 있는 마양래씨, 초등학교 교감을 역임하고 있는 마윤옥씨가 이마을 출신이다.

 

<인터뷰> 마남열씨
아침 일찍 텃밭에서 땅을 고르고 있던 마남열(73)씨를 만났다. 텃밭에 고추를 심을 예정이라는 마씨는 “밭이 따로 있으나 일손이 부족해 논일을 하다보면 밭작물을 따로 신경쓰지 못한다”며 “우리 가족 먹을 요량으로 텃밭에 고추, 깨, 마늘등을 조금씩 심고 있다”고 말했다.
도암 안태가 고향이라는 마씨는 “조부때 하신마을에서 도암으로 옮겨 생활하다가 40여년 전에 다시 하신마을로 돌아왔다”며 “그 당시에는 주민수가 800여명 되는 큰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주민수가 많이 감소했다”고 덧붙였다.
마씨는 “17마지기 정도 농사를 짓고 있으며 지난해 벼 70여 가마를 수확했다”며 “외지에서 생활하는 자식들에게 절반가량을 보내주고 나머지로 생활하는데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마씨는 “한번씩 시간을 내서 자식들 집을 찾아가면 필요할 때 쓰라고 용돈을 줘 받아두었다가 차가 출발하면 창문밖으로 던져 자식들에게 돌려준다”며 “자식들이 건강하고 잘 살면 그 이상 바랄 것이 뭐 있냐”고 덧붙였다.
얼마전 생일을 맞았다는 마씨는 “광주, 서울에서 살고 있는 자식들이 모두 내려와 집안이 시끌한게 사람사는 것 같더라”며 “부모가 늙으면 자식 힘으로 사는 것 아니겠냐”며 밝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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