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진강은 흐른다
탐진강은 흐른다
  • 강진신문 기자
  • 승인 2003.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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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철 선생(강진군 강진읍 남성리 136번지)

강진읍 장터에서 목리로 내려가는 길에 한전 옆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다 길 왼쪽 가게 흔적에서 가물거리는 친구의 모습을 그려본다. 모자이크 화면 같은 흐릿한 기억을 더듬다가 본능적으로 당도한 곳 목리다리.

소년기에 느꼈던 다리의 이미지는 두 가지였다. 작은 눈으로 보는 거대한 양감(量感)과 완만하게 펼쳐지는 강줄기의 포근함이 그것이다. 숱한 화제를 안고 이 강둑에서 저 강둑을 이은 목리다리는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소통의 가치 이상의 정신적 가치를 안겨줬다. 게다가, 아래로 흐르는 탐진강은 강이라는 ‘흐름’의 정서에 ‘생명’이라는 바다의 정서를 수용해버린 강 이상의 강이었다. 소년기에는 그 강물에 강파리한 알몸을 넣고 허기지도록 자맥질도 했었다. 때론 살보다 빠르게 뛰는 짱뚱어를 잡는다고 갯펄 위로 시커멓게 나딩굴던 동심이 있었다.

다리 위에서 보는 탐진강의 아름다움은 근경과 원경의 조화로움에서 비롯된다. 소리 없이 흐르는 강물에 신발이 접하는 순간까지 내려가 본다. 소꿉장난 같은 장어잡이 어선 몇 척이 다정하게 어깨를 맞대고 떠있는 모습은 다리 밑에서 보는 근경의 압권이다. 장어배는 우람하지 않아서 욕심부리지 않고, 홀로이지 않아서 외롭지 않다. 곧 다정한 형제들의 우애로움이다. 거기에 좌우로 펼쳐진 갈대밭은 ‘다정함’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포근함’이다.

강물은 흐른다.
골 깊은 산 속 풀잎에 맺힌 이슬방울들이 작은 전설로 모여 쉼 없는 흐름으로 시내가 되고, 드디어는 고고(孤高)히 흐르는 역사가 된다. 지금 강가에 서서 ‘호안등’이 부드럽게 좌우로 원을 그려 나가는 탐진강을 본다. ‘등’은 높낮이의 진폭이 없다. 그저 ‘등’은 ‘등’대로 강은 강대로 화가의 감각으로 원근감을 그려낸다. 곧, 평화롭고 포근한 어머니의 젖줄이다. 구로에서 강으로 흐르던 산 능선이 만덕산과 마주보며 서로를 격려하는 사이로 유유히, 그리고 여유롭게 흐르는 포근하고 넉넉한 강심(江心). 시간의 흐름처럼 변하지 않은 것이 없는데 탐진강 그 물빛 그 흐름은 시간을 역류한 그 옛날 그 모습이다.

탐진강은 흐른다.
강은 한결같은 모습인데 변하는 것은 세월이고 사람이다. 20여 년 전만 해도 12만 강진 군민이라던 구호가 지금은 4만을 윗자리로 수직 하강을 염려하는 상황이다. 쇠락해 가는 군세를 걱정하는 애향심은 한결같지만 번영으로 이끌 묘안은 아직 빈자리다.
“강진은 들이 넓어서 오곡이 풍성하고, 갯펄 기름진 바다를 안고 있어서 어물이 다양하지요!”
차창 밖을 바라보던 연륜 만면한 어느 노 교장선생님의 부러움 찬 독백이 되살아난다.

강에는 역사가 있다.
탐진강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성(盛)과 쇠(衰)의 역사를 안고 변함없이 흐르고 있다. 곧, ‘역사의 순환’이 사실이라면 지금 체감하고 있는 시대적 냉기류는 돌아올 풍요의 역사에 대한 반증이리라. 강을 가로질러 내빼는 국도 2호선의 쾌속 질주처럼, 동한(冬寒)의 한기가 걷히면 따스한 남풍을 타고 사람 내음 넘실대는 번영의 새 세상이 도래하리라.
역사는 흐른다. 그리고 지금, 탐진강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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